[기고] 102년째 이어져 온 인색한 어린이 의료정책

2024-05-02 09:50:45

오는 5월 5일은 102번째 어린이날이다. 
 
어른으로부터 '아이들, 애, 애들, 계집애' 등으로 불리던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하고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자고 정한 날이다.

우리나라의 힘있는 어른들은 어린이 건강, 복지, 저출산 대책으로 어린이 이름 팔아 돈 걷고 정책 광고한는 데는 열심을 넘어 광기조차 피웠다. 

정작 어린이를 위해 직접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더 나아가 그 돈을 싹 훑어 흔적없이 날려보내는 데는 여·야가 한 몸이다. 뻔뻔스러움을 넘어 파렴치함에 치를 떨 지경이다. 

380조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 아이들을 위해서 쓴다며 어마어마한 건물들만 지어댔다. 

부모가 될 사람들, 혹은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물어는 봤는가?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뜨거운 경쟁사회에서 아이 때문에 생기는 경력단절을 피할 방법이다. 

아이를 낳고 아파서 병원을 가고 입원시킬 때 부모들이 겪는 좌절은 둘째 출산 의욕을 사라지게 한다. 병원비? 스스로 낼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거 감당할 수 없다. 380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바를 일이 아니다. 

그렇게 써대야 한다면 과연 이 사회는 유지가 되겠는가? 

대한아동병원협회는 2년 동안 소아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정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소아인구가 계속 줄면서 수요가 줄어든 소아과의사 및 소아의약품 제조회사들은 재무적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정상적인 시장경제가 작동했다면 공급이 줄어들면서 서비스당 비용이나 소아시럽제의 가격이 올라갔을 것이다. 

어린이용 시럽제가 사라지고 있다. 약국에 가보면 OTC라 불리는 비급여 일반의약품은 다양하게 나와 있다. 

급여의약품은 수시로 품절된다. 소아에 관한한 보험체계, 필수의료체계는 작동불능이다. 식약처에 이 문제를 이야기 하면 성인약을 갈아서 먹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럽이 아니면 안되는 아이들이 있다. 제형이 다른 약들이 존재하는 건 다 의학적 이유가 있다. 

OECD 10대 강국이라는 한국의 힘 있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대표적인 만행이자, 소아필수약을 생산하면 수익이 나지 못하게 하고 소아과 의사들이 생업으로 소아과를 하면 감옥에 가거나 망하게 하는 일이다. 

사용량 연동 약가 인하제와 진료수가의 국가통제는 소아필수의약품와 소아필수의료 공급 실패를 낳았다.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2년이 흘렀고, 그 과정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더 발생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복지부가 도입한 산부인과 포괄수가제의 영향으로 고위험 임신을 보는 산부인과가 소멸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에는 산부인과 의사 8명이 근무하는 30년 된 성남시 분만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서울과 성남의 분만병원이 이제 하나도 없게 됐다. 

아동병원도 살인적인 초저수가 때문에 생존을 위한 해결책 3가지를 제시했다. 

병상비율조정, 역차등수가제, 비수기유휴병상 손실보상제가 그것이다. 

정부의 답은 없다. 이렇게 또 2년, 3년 흘려보내면 소아과에 이어 아동병원마저 소멸될 것이다. 

투표권이 없는 어린 국민은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유력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소아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든다. 결과는 파괴를 넘어 재앙적이다. 

지방정부의 필수의료지원사업은 더욱 가관이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의료기관 제쳐두고 자기힘으로 배후진료나 최종진료를 할 수 없는 의료기관에게 새로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20억이 넘는 거액의 예산지원을 서슴치 않는다. 

그 돈이면 아동병원은 아기들 여럿 살릴 수 있다. 아동병원은 전공의 대신 전문의들이 전공의 역할을 하는 가성비 병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앙정부는 소아응급의료센터 만든다며 아동병원이 경쟁할 수 없는 거액을 아무것도 없는 시설에 지원하고 의사마저 빼간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로 시장을 교란한다. 

놀라운 일은 그런 정책을 시행하도록하는 정책 설계 과정에 의사공무원들도 끼어있다는 점이다. 

결국 어른 환자를 돌보는 관점에서 생산된 정책이 이 나라의 투표권이 없는 어린 국민들을 깔아뭉개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에게 맞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성인의료정책에 맞춘 어린이 의료제도가 강제되는 촌극은 이렇게 해서 계속되고 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의 결단이 필요함을 강조해 본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 보건복지부내에 소아청소년 의료과를 신설하고 대한민국 어린이 건강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복지부내 소아청소년 의료과를 신설해 어린이 의료 정책을 전문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실행한다면 소아 필수의약품 약가 정책에서부터 소아과 필수의료 공급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제도 설계와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에는 어린이 건강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 없다. 

아동복지법 등 단편적으로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법들을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어린이 건강을 돌볼수 있도록 한다면 저출산 예산 380조를 쓰지 않아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게 할 수 있다. 

102번째 어린이날을 맞았다. 부디 이 나라의 힘 있는 어른들이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만들어 젊은 부모들과 투표권 없는 어린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내일을 열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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