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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력 부족이 낳은 태움과 과로사

종일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던 16일 오후 간호사 1백여 명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광화문 인근을 가득 메웠다. 이날은 서울아산병원 6개월 차 신입 간호사 故 박선욱 씨가 태움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 1주년을 갓 넘긴 날이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를 의미하는 태움은 의료 인력의 부족이 야기하는 간호계의 악습과도 같은 문화다. 

이에 앞서 설 연휴를 앞둔 1일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당직 근무 중인 소아청소년과 2년차 신 모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4일에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크게 기여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근무 중 심정지 상태로 사망했다. 나흘을 간격으로 두 명의 의사가 과로 등의 사인으로 연이어 유명을 달리하자 의료계는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들의 사망을 보도할 때 대개 전자는 태움, 후자는 과로를 붙인다. 태움은 직장 내 괴롭힘과 의미가 상통하기 때문에 이를 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 않은 반면, 과로사는 보건 · 의료 직역 특성상 일생을 건강 · 생명을 위해 헌신한 이의 숭고한 죽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두 사인의 근본은 사실상 동일한 의료 인력 부족이며, 큰 틀에서는 왜곡된 의료체계 탓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 간호사 수는 각각 1.9명 · 3.5명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평균인 의사 3.4명 · 간호사 9.0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2016년 기준 19.5명으로, 일본 7명 · 미국 5.4명 등과 비교하여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해 7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거하여 주 52시간의 근무제가 본격 시행됐으나 보건업만은 제외하고 있어 의사 · 간호사 등은 부족한 인력과 맞물려 장시간의 근무가 여전히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공의의 경우 주 80시간의 수련 시간을 전공의법에서 규정하기 때문에 수련병원 대다수는 전공의의 근무 기록이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해당 전공의가 EMR(전자의무기록) 접속 시 사용하는 ID를 차단하는 등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 같은 셧다운(Shut Down) 정책으로 발생한 연장 근무는 무급 노동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최악의 결과를 야기한다. 정부 기관 주도로 시행되는 각종 평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의료기관인증평가의 경우 지난해 4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류 모 간호사는 "인증 기간에는 주 7일 근무한다. 새벽 6시에 출근하고 퇴근은 밤 10시에 한다. 주 7일 근무 기준으로 총 112시간을 일한다. 112시간 근무하는 노동자는 환자를 보지 못한다."며, "인증 기간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주 5일 내내 밥을 먹지 못한다. 의료진들은 김밥,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거나 거의 굶는다."고 성토했다.

간호사들은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언뜻 애매한 요구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밥을 먹게 해달라', '잠은 자게 해달라', '화장실은 가게 해달라' 등 밑바닥에 자리한 생리적인 욕구뿐이다. 삶을 애원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력 부족의 악순환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 

2월 19일 '제2차 환자경험 평가 설명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평가책임위원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건강해야만 환자가 더 나은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며, "미래 의료서비스의 관건은 치료가 아닌 보살핌으로, 보살핌의 주체가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양 위원이 소개한 폴 슈피겔만 · 브릿 베렛의 저서 '환자는 두번째다'에서는 △세 번째는 돈 △두 번째는 환자이며 △최우선은 의료기관 종사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정부 · 병원은 적정 의료 인력을 확보해야만 환자를 비롯한 모든 사망의 책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면피할 수 있다. 즉, 의료진을 최우선으로 두고 의료 정상화에 진정 총력을 다해야만 매년 반복되는 연초의 비극적인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여기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소한 밥은 먹고 잠은 잘 수 있는 사람다운 근무 환경이 빠른 시일 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