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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난 12월 31일 발생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여당 TF 활동의 결과물로서 1월 25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을 대표발의했다. 

동 법안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입원을 사법 행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비자의입원 시 환자 가족 ·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웠던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사회적 낙인 · 차별로 인해 입원을 꺼리는 사람이 좀 더 원활하게 입원할 수 있도록 하는 비공식 입원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나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조항은 제43조(보호입원) 제2항으로, 해당 조항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입원 필요 여부를 판단 · 결정할 동의 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박약하고 입원 치료를 하지 않으면 정신질환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돼 입원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이를 진단하여 비자의 입원을 가능하게 했다. 

정신질환자 범위도 확대됐다. 개정안에서는 정신질환자를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일부 단체에서는 정신과 진료만 받아도 누구나 비자의 치료 대상이 돼 각종 자격 취득이 이전처럼 제한되며, '날 보러와요'라는 영화에서 일어난 사건이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의힉회)는 이를 '모든 중증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 단체의 의혹이라고 일축했다. 의학회는 "개정안은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거나 방치된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를 강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즉, 지금부터는 치료를 위한 목적이어도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인신구속적 상황에 대해 사법체계 판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의학회는 인권 친화적인 치유 환경 · 프로그램 구축 및 주거 · 복지서비스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이는 치료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신구속에 대한 객관적 판단 장치를 사법입원제로 강화하고, 치료받지 않는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강화하여 환자 · 지역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하는 이번 개정안이 반대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보호자 · 전문의 1인의 동의만으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비자의입원이 가능하여 재산 다툼 · 가족 간 갈등 등으로 인한 강제입원 사례가 종종 발생했고, 장례지도사 등 정신질환자의 자격 취득도 제한돼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2017년 개정된 현 정신건강복지법은 억울한 강제입원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절차를 개선 · 강화하여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차별을 보다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문의 2인 진단 등 비자의입원 조건은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치료를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는 대개 치료가 중단된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故 임 교수 사건의 피의자는 30일가량을 입원하고 1년 후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을 다시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회 말을 빌리자면, 급성기 자 · 타해 위험이 높거나 치료 후 약물 복용을 안 하고 재발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현재 잘 구축돼 있다고 볼 수 없기에 개선책이 필요하며, 그 대안 중 하나가 이번 개정안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3월 수원시에서는 6곳으로 나뉜 정신건강센터를 하나로 통합한 센터를 팔달구 매산로 일대에 건립하기로 했으나, 모초등학교 학부모와 주변 상인 등은 정신질환자가 학교에 난입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우려하여 센터 설립을 거세게 반대했다. 결국 지난달 수원지방법원은 매산동 주민이 수원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주민 의견 청취 절차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립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 낙인과 지역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정신질환자의 탈원화는 요원한 일로만 들릴 뿐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안전한 치료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 · 차별 없이 쉽게 치료 ·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임 교수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는 아직 사회에 충분치 않다. 그러나 당장 막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이 예상될 사고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지속 가능한 치료를 위한 사회적 합의점을 조속히 도출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의 대책은 편견 · 차별의 해소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새여도 이 또한 온전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논의 · 합의의 과정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인내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 등으로 미미하게나마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입맛에 맞는 해답을 찾게 될 것은 분명하며,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신뢰가 현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아울러 윤일규 의원의 이번 개정안이 설 연휴가 끝난 8일에 열리는 입법 공청회를 앞두고 있다. 논의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가닥이 잡힐지 아직 미지수지만, 차후 진행될 여러 번의 회의에도 관심을 두고 그 귀추를 지켜볼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