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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적십자사 회장님, '유감'이라고요?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등을 대상으로 열린 22일 국정감사에는 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이하 박 회장)이 참석하여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의 신문에 대해 기관증인 신분으로 발언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 등에 따르면, 박 회장은 회장 취임에 맞춰 마련된 의전 차량을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고가 차량으로 교체했고, 활동비 명목으로 지원받은 720만 원이 820만 원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연간 2,900만 원 상당의 업무추진비도 지급받았다. 적십자사 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임에도 박 회장이 취임한 뒤에는 전에 없던 비서실 직제도 생겼다.

채용 비리도 드러났다. 적십자사 감사실장 공모 전에 적십자사 기획조정실장 · 인사팀장은 감사원 현직인사를 추천받기 위해 감사원을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감사원 감사청구조사국 과장 출신인 A씨가 내정되어 A씨 퇴직 일자에 맞춰 공모가 시작됐다. 총 12명이 지원한 공모에서는 예상을 빗겨나가는 일 없이 A씨가 채용됐다. 

이 외 적십자사 내부에 산적한 여러 문제가 지적됐으나 금년 6월 9일 발생한 박 회장의 성희롱 발언에 대한 박 회장의 해명 아닌 해명이 단연 화제가 됐다. 취임 후 첫 팀장급 간담회에서 박 회장은 '여성 3명이 모인 것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라고 여성 가슴을 비유하는 농담을 했고, 해당 발언이 내부직원 제보로 언론에 보도돼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결국 대국민 사과문을 적십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런데 성희롱 발언 해명을 위한 자리에서는 '분위기 전환용 발언이 성희롱 발언으로 둔갑해 어이없다'고 하여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동 발언이 국정감사장에서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면서 박 회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사과 · 해명에는 단서를 계속 달았다. 심지어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부고발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공익신고자 등의 비밀보장 의무)에서는 누구든지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임을 미뤄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회장의 내부고발자 대면 요구에 대해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피감기관의 수장으로 나온 박 회장이 내부 공익신고자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은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고,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 등을 비롯해 여러 의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 상관 않고 박 회장은 내부고발자를 알아야겠다며 만나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는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다. 박 회장은 이에 더하여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유감'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기도 했다.

서던 오리건 대학의 에드윈 L. 바티스텔라 교수는 그의 저서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유감'이라는 말이 가해자의 감정 상태에 집중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즉, 스스로는 잘못을 느끼지만 문제 되는 사건에 대한 책임 · 처분은 부재한 수준으로, '유감'이라는 표현을 선택하여 사과하면 단어 그대로 단순한 자기반성이 돼 버린다. 실제 유감(有感)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느끼는 바가 있다'로 풀이되는데, 일부에서는 '잘못은 없지만 안타깝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박 회장의 사과와 관련하여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박 회장은 우리나라 초대 인권대사를 지냈다. 인권은 가해자 의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 입장에서 다뤄야 한다. 그런데 박 회장은 '의도와 상관없이'라고 계속 얘기했다. 이 같은 단서를 달았기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품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과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핵심 내용은 빠져 있어 진정한 사과로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그간 보건복지부 및 복지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기관장들의 태도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으나 박 회장의 태도는 과연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회장을 향한 의원들의 사퇴 주문은 단순히 사과로 끝날 게 아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자기감정 · 안위를 우선시한다면 우려하건대 사퇴 이상의 올가미가 결국 박 회장을 옭아맬 것이다. 부디 인권대사에서 공공기관장으로 국민 앞에 선 박 회장이 이제라도 형식적으로나마 피해자 감정을 헤아리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충분히 짊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