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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가의 에이즈 방기는 성 소수자 혐오의 단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의 매년 단골 소재는 에이즈이다. 금년도에는 연세의대 감염내과 김준명 명예교수가 참고인으로 참석해 국내의 가장 빈번한 에이즈 전파 경로가 '(남성)동성 간 성 접촉'임을 밝혔다. 

김 교수가 12년간 전국 21개 대학병원 에이즈연구소 ·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 국립보건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에이즈 환자의 65%가 동성 간 성 접촉으로 감염된 가운데 △10 · 20대 에이즈 환자는 75% △10대는 무려 93%가 동성 간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질의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제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의 '생존하는 에이즈 환자의 91.7%가 남자이며, 에이즈는 99%가 성접촉을 통해 감염! 남성 동성애는 에이즈 감염의 주요 확산 경로' 문구를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질본 정은경 본부장(이하 정 본부장)에게 따라 읽으라고 지시했고, 정 본부장은 실제 동 문구를 따라 읽었다. 보다 못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이를 저지하자 여야 간 반말 · 고성이 오가는 등 대립이 지속돼 결국 회의가 두 시간가량 정회됐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예견된 상황이었다. 매년 같은 문제가 지적되지만 개선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는 원인으로 남성 간 성 접촉을 지목하며, 질본의 에이즈 예방 · 관리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 당일 참고인으로 참석한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은 "질본 홈페이지에는 에이즈 정보가 전혀 없다. 정 본부장은 이성 · 동성을 구분하여 질본 홈페이지에 에이즈 감염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고 했지만, 에이즈 정보 자체가 질본 홈페이지에 없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에이즈 주 감염 경로가 남성 간 성 접촉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 일본 질본과는 달리, 그간 우리나라 질본에서는 에이즈 주 감염경로를 동성 간 성 접촉이 아닌 '이성 간' 혹은 '성 접촉' 등 애매모호한 말로 발표하며, 문진에 의한 통계 자료가 신뢰성이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2009년부터 질본은 남성 동성애자 콘돔 사용률로 성병 · 에이즈 관리 사업 성과를 관리하는 등 내부적으로는 남성 동성애자를 에이즈 · 성 매개 감염병 확산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정작 질본 홈페이지에는 에이즈의 주된 전파 경로인 '남성 간 성 접촉'이 명확히 게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인지 전 세계적으로 감소 추세인 에이즈 감염자는 우리나라 10 · 20대 남성층에서 유독 증가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성 소수자 ·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에이즈 감염자 조기 진단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고, 안전하지 않은 성 접촉이 모두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이성 간 · 동성 간 접촉을 구분해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는 마치 성 소수자 인권을 위시하는 듯 보이지만, 명백한 에이즈 방기라고 할 수 있다. 

타깃을 동성 간 성 접촉을 하는 젊은 층으로 잡고 적극적인 에이즈 예방 · 관리 정책을 펴는 것은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는 가짜뉴스의 맥락과는 다른 얘기이다. 감염 전까지는 방관하다가 감염 후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다름없다. 에이즈는 의학 발달로 현대 사회에서 만성질환화 됐으나 고통 · 죽음의 가능성은 현저하며, 콘돔을 사용해 예방하자는 홍보는 실패했다. 에이즈 감염자가 도리어 증가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편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실을 덮어놓고 숨기면 결국 피해는 에이즈 감염자 ·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하게 된다.

김준명 명예교수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동성 간 성 접촉이 에이즈 감염에서 그다지 위험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 · 20대 젊은 층은 동성 간 성 접촉 행위를 방심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에이즈에 걸리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일례로 폐암의 주원인이 흡연이라는 사실은 국민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다. 이에 담뱃값을 인상하고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부착하는 등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금연 정책을 펴는 것 이상으로, 에이즈도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