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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자, 그 누구인가

작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 복지법 일부개정안에 따라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지금까지의 장애인등급제도는 등록 장애인에게 의학적 상태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세분화된 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각종 서비스의 절대적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때문에 개인의 서비스 필요도와 서비스의 목적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개정안에 따라 '장애등급'이 '장애정도'로 변경되며, 기존 등록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종전 1~3급)’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아니한 장애인(4~6급)’으로 단순화된다.
 
또한, 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교부,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 서비스 필요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종합조사’를 통해 수급자격과 급여량이 결정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7월에는 활동지원 등 일상생활지원 분야 4개 서비스에 대해 종합조사를 우선 적용하고, 이동지원, 소득‧고용지원 분야 서비스에 대해서도 적합한 평가도구를 마련하여 2020년, 2022년에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더불어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 맞춤형 전달체계 구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8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장애유형별 물리적·심리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8곳을 선정하여 지정했다. 건강검진은 질병 조기발견뿐만 아니라 질병예방 및 질병관리를 통한 합병증 예방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간 장애인은 전문 의료서비스와 더불어 예방 의료서비스인 국가건강검진에서도 어려움을 겪어 왔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수검률(61.7%)은 전체 인구(78.5%) 대비 16.8%p 낮았고(2017년), 장애인 1인당 만성질환 보유개수(2.2개)는 전체인구(0.8개)의 약 3배 수준(2015년), 장애인 만성질환 유병률은 6년간(2011~2017) 9.7%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애인 연간 진료비(439만원)는 전체 국민 평균(133만원)의 3.3배로,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건강권법을 근거로 하여 이러한 물리적·심리적·비용적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을 추진한 것이다.


지정된 의료기관은 서울권의 '서울의료원', 대전권의 '대청병원', 경기권의 '경기도의료원수원병원', 강원권의 '원주의료원', 경북권의 '안동의료원', 경남권의 '마산의료원' 및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제주권의 '제주중앙병원'이며, 이 의료기관에는 1~3급 중증장애인 검진비용 장애인안전편의관리비 추가 지원 및 장애특화 장비비 및 탈의실 등 시설개보수비가 지원된다.


보건복지부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따라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을 2021년까지 100개소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로 그간 장애판정 기준이나 장애등급, 장애인들의 복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어 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장애판정 기준 또한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에 너무 치우쳐져 있다는 비판이 있으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판정하기에는 현행 15종으로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라는 지적 또한 계속되고 있다.


장애등급제 역시 장애인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필요한 맞춤 지원을 위한 분류라기보다는 한정된 장애인 복지 예산으로 지원 범위를 제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오히려 장애인 안에서 차별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어 왔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그간 논란이 많았던 장애인 등급제는 폐지 수순에 들어갔고, 장애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맞춤 서비스 강화와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지역 커뮤니티 케어의 도입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장애인 등급제 폐지에 대해서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가령 ‘종합조사’를 통해 서비스 필요도를 평가하고 수급자격과 급여량이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준이나 방안이 무엇인지 객관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나온 게 없기 떄문이다.


현재 장애인 등급제 폐지안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상태로, 확정된 개정안을 만드는 작업 중이다.


장애인들은 과연 개정안에 따른 '종합조사'가 자신들의 필요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지, 그마저 받았던 지원마저 배제되는 일을 겪지는 않을지 전전긍긍이다. 내년 장애인 복지 예산이 약 5천억 정도가 증원된다고는 하지만 OECD 국가들 중 꼴찌 수준에 미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으로는 누군가의 혜택이 곧 누군가의 지원 축소로 이어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정책은 특히나 사회적인 인식을 높이는 작업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선천적인 장애도 있지만,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장애에 대한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던 사람이 사고 인해 장애를 입고 하루아침에 가족의 짐이 되어 버리는 현실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단지 두 발로 걸을 수 없을 뿐 예전과 같은 업무 능력이 있음에도 계단이나 문턱, 화장실과 같은 휠체어 편의시설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사회 복귀를 못하는 상황은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일정한 평수 이상의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휠체어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게 하는 등의 움직임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정부의 지원 또한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장애인 복지 예산의 증원이 필요하다.


때문에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를 높이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장애인들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는 데 마땅히 쓰여야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장애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