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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주일 전 가로등 없는 밤길을 걷다가 발목을 접질렸는데, 서 있는 것조차 힘든 통증이 지속돼 당일 응급실을 찾았다. 앞서 방문한 심정지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고, 대기실 벽면에는 응급환자 우선진료로 인해 대기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다. 결국 접수 후 두 시간가량을 기다려 진료를 받게 됐다. 문제는 엑스레이(X-ray, 이하 X선)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X선 사진을 짚어주면서 발목뼈에 금이 갔는지 판독이 어렵다며 정형외과에서 재판독할 것을 권유했다.

이틀 후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자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찾았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해당 의원에서 엑스레이를 한 번 더 찍었다. 결과는 골절이었다. 우려한 바대로 금이 간 것이다. 의사는 X선 사진이 담긴 CD를 건네주면서 정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나는 물끄러미 CD를 바라보았다. 이 CD가 없다면 엑스레이를 세 번 찍을 수도 있다. 실제로 찍을 것 같았다. 단일 의료기관 내 생성 · 활용되는 의료정보인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의 허점이 온몸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EMR은 종이에 기재하는 환자 정보를 전산화한 것으로, 진료 정보의 형태는 병원마다 다르다. 즉, 프로그램과 사용 · 운용 방식에 차이가 있고, 병원 간 정보 교류에는 개인정보 보호법도 얽힌다. X선 사진이 병원 문턱을 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EHR(Electronic Health Record) 개념이 등장했다. EHR은 환자 정보를 표준화하여 이를 여러 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때 발생하는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간에 전달하는 진료정보교류 시범사업을 2009년부터 시행 중으로, 오는 2022년까지 전국 모든 지역 및 주요 거점의료기관까지 동 사업을 확산할 계획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환자 중심의 PHR(Personal Health Record) 개념도 등장한다. PHR은 의료 공급자가 아닌, 환자가 개인 의료정보 주체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블루버튼 이니셔티브는 PHR 개념을 도입한 시스템으로, 환자가 병원마다 존재하는 블루버튼을 누르면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자기 진료 정보를 전송하도록 촉구한다. 내년에 시행 예정인 우리나라의 마이데이터 사업 역시도 환자가 의료기관으로부터 자기 정보를 직접 내려받아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후마니타스암병원 경영심포지엄에서 메디블록 이은솔 대표는 "A병원에 간 B환자가 C병원에 갔을 때 각 병원이 보유한 EMR을 통합한 의료데이터 EHR을 이용해 진료 편의를 도모하는 사업이 EHR 구축에 해당한다. PHR은 스마트폰, 가정용 의료기기 등으로 자기 의료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는 개념이다."라면서, "미래에는 EHR · PHR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한다. 환자가 의료데이터의 중심이 되어 환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환자 중심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보건복지부 오상윤 의료정보정책과장은 혜택을 준다는 보험사 오퍼에 따라서 환자가 자기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데, 어떤 이는 그로 인한 보험사 지배력 강화를 우려할 수 있다며 "어떤 사람은 민간보험금을 낮추는 데 자기 정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병원에 따라서는 개인 정보를 민간보험사나 다른 업체에 판매하는 문제도 상정된다. 희귀질환자는 연구가치가 높기 때문에 연구를 위해 개인 정보를 판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논의로 귀결된다. 논의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이 방대한 작업량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으며, 의료계 용어 표준화부터 시작하여 기술 개발, 법제 개선 등이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과연 단 한 번의 X선만으로도 충분한 미래가 올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는 도입 찬반 수준의 논의가 아닌 안전한 환자 중심 정보 교류를 어떻게 이룰 지를 고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