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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성 없는 저출산 대책, 갈 길 먼 정부

지난해 개최된 제13차 인구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의 교육 · 소득 수준이 향상하면서 하향선택 결혼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 관습 · 규범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문화 콘텐츠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무해한 음모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의도가 무엇이든 원 연구위원의 제언은 대중에게 유해한 음모로 받아들여진 듯싶다. 

최근 연구원은 전국출산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상은 1968년부터 1998년생까지 여성으로, 미혼 여성 대상 설문지 내용을 살펴보면 ▲이성교제 및 결혼 ▲자녀 및 가족에 대한 가치 · 태도 ▲결혼 및 출산 관련 정책 등의 항목으로 나뉘며 △현재 이성교제를 하고 있는지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이상적인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 등을 묻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부가 여성을 인간이 아닌 출산하는 도구로 간주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연구원이 전국 출산력 조사 대상자라며 연락하라는 메모를 현관문에 남겼고, 이 때문에 여성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것이 알려져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우려했다. 연구원 측은 "범죄 노출 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부재중 스티커를 봉투에 담아 우편함에 넣는 것으로 변경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뿐만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낙태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 · 시행했다. 이는 의사가 낙태수술을 할 경우 1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고시이다. 

이번 복지부 고시에 대해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가 3천여 명의 여성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익명의 여성들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입을 모아 복지부에 요구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오롯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과 관련한 것이다. 연구원의 '출산력 조사를 활용한 한국의 출산력 변천 과정' 연구 보고서에서는 임신소모율 감소를 위해 인공임신중절을 예방 ·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출산율 저하 원인으로 낙태를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복지부의 비도덕적 의료행위 규정으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낙태 행위나 고소득 · 고학력 여성의 증가 때문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면 청년 취업난, 부양 부담, 가부장제 풍토, 페미니즘 등 수많은 사회 · 경제적 문제가 얽힌 상태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 고령화라는 심각한 난제에 직면하여 조급해진 것은 잘 알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 원인부터 제대로 고민해 저출산 대책을 진행해야 한다. 의사에게 낙태죄를 묻고 결혼 · 출산을 기피하는 인구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정책 등이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며, 단순히 덮어놓고 낳기에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다. 

그 전에 더욱 중요한 핵심이 있다. 정부는 여성을 저출산의 원인이나 해결 수단이 아닌 사회 절반을 이루는 구성원이자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타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의 완화된 낙태 규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여권 성장이 크게 일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여성을 단순히 겉시늉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합의 · 소통을 통해 이끌어낸 결과이다. 부디 일부 전문가를 토론 자리에 앉혀놓고 명목상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고 자신하지 말고, '실제' 여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소통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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