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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괜찮아?

대구의료원 정명희 소아청소년과 과장

맑은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설레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어떤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볼까?


진료 대기실에 들어서니 교복을 입은 아이가 가방을 둘러멘 채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자리 어머니의 얼굴엔 오만가지 걱정이 서려 있다. 시험이 코앞인데 힘들더라고 좀 참고 묵묵히 달려주면 좋으련만. 전력으로 질주해도 경쟁에서 이길까 말까 한 이때, 왜 또 아프다고 하냐는 표정이다.


“저 괜찮을까요?”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묻는다. 공부할 때가 되면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아이는 힘든 낯빛이 영력하다. 어머니는 ‘더는 듣고 싶지 않은 언사를 늘어놓는다’면서 아픈 자식을 원망한다. 책상엔 잠시도 앉아 있지 않으면서 머리 아프다고 하다가도, 놀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짱한 얼굴로 기분이 좋아지니 꾀병이 분명하지 않느냐며 아이에게 눈을 흘겨댄다. 배불리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고생도 끝이 날 것인데, 그것이 무에 그리 힘들어서 저리도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르겠단다.


진찰대 위에 누워 있는 아이가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 속 레퍼토리를 다 내어 보이는 어머니, 하소연하다가 설움이 복받쳐 눈물까지 보인다. 참으로 난감하다. 아픈 아이보다 어깨를 들썩이는 어머니를 먼저 토닥여줄 수밖에 없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우선이죠. 진짜, 건강이 최우선이지요. 한 박자 쉬어가는 셈 치고, 아픈 아이 말에 한 번만 귀 기울여 봅시다.” 


두통은 복통과 더불어 꾀병으로 치부되기 좋은 단골 메뉴이지 않던가.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의 두통은 이따금 심각한 병의 신호이기도 하니 그냥 지나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언젠가 친구의 아이가 길을 건너다가 차와 접촉하는 사고가 났다.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아스팔트에 부딪혔다는데 괜찮을까 하는 친구의 문의 전화가 왔다. 머리가 가끔 아프다고는 하지만 심하지는 않은 것 같고 시험이 목전이라 마음이 무척 바쁘다고 했다. 나는 혹시 모르니 정밀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하필이면 이때, 아들 녀석에게 중요한 시험이 있어 일분일초가 부족한 때에, 저런 일을 당해 속상해 죽겠다며 전화기를 붙들고 하소연을 해댔다. 공부가 뒷전이니 별사건이 다 끼어든다며 불만이다. 그래도 아픈 몸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이니 꼭 정밀 영상촬영을 해보라고 했다.


그 결과, 오마나 세상에! 머릿속에 엄청난 것이 들어 있었다.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라가듯 혈관이 마구 꼬여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질환, 바로 모야모야병이었다.


친구 아이의 성격은 어릴 때부터 좀 고약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데서나 구르기 일쑤였고,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나면 어지럽다며 돌보는 이를 힘들게 했다. 풍선 부는 조그마한 일에도 조금 하기 싫다 싶으면 엄마더러 불어달라고 하는 등 끈기도, 인내심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사내아이라서 좀 강하게 키워야 하지 않나 싶어 부부는 그 아이를 심하게 닦달했었다. 그저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머릿속에 그런 것이 들어 있을 줄이야.


울거나, 떼를 쓰느라 소리를 지를 때, 뇌압은 상승한다. 혈관이 수축하면서 머리로 가는 혈류가 떨어진다. 허혈 증세가 머리에 오면 경련이나 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다. 되돌아보면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심하게 꾸중을 들은 날엔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에 힘이 없다고 한 적도 있었다니 말이다.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 꾀병을 부린 것으로 생각했던 그 아이의 머릿속에 그런 엄청난 시한폭탄이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이야.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두통은 늘 불안하다. 아픈 자신은 두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지켜보는 사람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혹시나 큰 병이 아닐까 싶어서다. 아이들의 두통은 더욱 그렇다. 심한 통증이 아니어도, 사소한 두통이나 불편함, 졸리는 느낌조차도 두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의 증상은 잘 가늠하기 힘들다. 어린아이가 두통을 호소하는 것이 간혹 어려운 상황을 면해 보려거나, 부모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니 더욱 분간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간혹 뇌출혈이나 뇌종양의 증상이 심한 두통으로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할 때, 얼굴이나 사지의 감각이 이상하다거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면, 절대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특히 밤에 자다가 깰 정도의 두통, 아침에 심해지는 두통, 무엇인가 박동하는 느낌과 구토를 동반하는 심한 편두통일 경우는 꼭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학동기 아이들이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크면 없어질 것이라며 꾀병으로 여기고, 아이에게 참으라고만 하는 이들도 가끔 있다.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일 게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내부에 심각한 병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심정이 들겠는가. 아이를 강인하게 단련하며 키운다는 말은 아이의 머릿속에 시한폭탄이 들어있지 않을 때나 가능하리라.


나의 아들이 했던 말이 귓전을 울린다.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괜찮아?”란다. 그것도 진심으로 걱정하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단다. 진료시간 중에 전화가 오면 밀린 환아 진찰로 인해, 정작 내 아들의 말은 건성건성 듣고 넘기기 일쑤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000 찾아서 먹어라”, 배가 아프다고 하면 “화장실에 가서 대변 누라”, 설사가 난다고 하면 “000 챙겨서 먹고” 등 자세히 병력을 청취하지도 않고 간단하게 성의 없는 처방만 내린다고 불만이다.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진찰하고 처방받아야 하지 않아요? 왜 나는 병원에 가서 진료 받도록 해주지 않아요?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 하지 않아요? 내가 무의촌에 사는 것도 아닌데…”


아들이 읊어대던 볼멘소리가 울려온다. 막내 녀석은 자기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머리가 조금만 아프다고 해도, 열이 38도만 되어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손을 잡아끌며 걱정하신다고 한다. 근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고 진심으로 자식을 염려하는 것 같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나?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이 그 집에선 매일 일어난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아들이 강조하는 ‘기적’이 따로 있으랴. 바로 아픈 이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진심으로 “괜찮아?”라고 걱정하며 물어봐 주는 것 아니겠는가.


평소에 떼쟁이라며 놀림 받았던 친구의 아이는 수술을 받았다. 힘든 과정을 다 이겨내고 밝은 얼굴이 되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제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다는 그 아이에게 퇴원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집에 가서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이 그 아이에겐 이젠 절실하게 다가오나 보다. 아이가 떼를 쓸 때,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면 강하게 키운다며 그냥 내버려두기 전에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잘 살펴보아야 하리라.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모든 것이 세분되었다. 의학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환자를 담당하는 진료과는 세부 전문 과목으로 쪼개고 나뉘었다. 이제 환자들은 몸이 아프면 어떤 과를 찾아가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생겼다. 모두 자기의 전문 영역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세분화된 영역의 환자만을 보면서도 의사들은 발전하는 의학 정보와 기술을 따라가기에 숨이 가쁘다. 그러고 보니 수련의 시절 들었던 은사님 말씀이 떠오른다.


“몸이 아파서 내 앞에 앉아 있는 이를, 질병을 가진 환자로 보지 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따뜻한 피가 쉴 새 없이 온몸에 도는,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가진 한 인간으로 대해야 그를 잘 치료할 수 있다.”


참 쉬운 말 같지만, 현장에 있다 보면 그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현실에서는 곧잘 무슨 병인지부터 찾아 헤매고, 머릿속에선 처방전부터 그린다. 검사실 소견으로 치료를 가늠하고, 그에 따라 약 용량을 올리고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환자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환자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다면 검사실 소견이 설사 조금 오르락내리락하더라고 그다지 심각하게 진행하지 않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내게 찾아온 환자들에게는 언제나 바른 진단을 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떻든 조금이라도 불편을 해결해준다는 각오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하고 싶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그들의 아픈 마음을 잘 이해하려고 애쓴다. 흔들리는 이빨을 내보이며 뽑아달라고 하면 내 손으로 뽑아 주기도 했고, 배꼽에 육아종이 생겨서 찾아오면 직접 실로 묶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00과로 가서 진료 받아 보세요”를 외친다. 그 한 마디로 나의 소임을 깔끔하게 타 과로 넘기게 되니 좁디좁게 나의 영역만 보면서 선을 긋는 것 같아 아쉽다.
 
언젠가 읽은 ‘이목구비를 배치한 하느님의 섭리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떠오른다.


“눈이 얼굴의 위쪽에 놓인 이유는 모든 일을 근시안으로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라는 뜻이요. 머리의 앞쪽에 위치한 이유는 앞을 향하여 바른 방향으로 꿋꿋이 나아가란 뜻이다.”


현빈 주연의 영화 ‘역린’은 우리에게 또 귀한 말을 전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며,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하게 하며, 남을 감동하게 하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이 성사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으랴. 한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말의 반복은 옆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니 늘 정성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리라. 힘들고 지칠 때일수록 늘 긍정하면서.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늘 나지막이 읊조리자. 그러다 보면 우리네 삶도 어느새 진짜 괜찮아져 화려한 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오늘 의사로서 품었던 초심을 상기한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첫 환자를 맞으면서 설레던 그 첫 마음으로 늘 진료한다면 나의 환자들도 모두 괜찮아지고 행복해지지 않으랴.



정명희 과장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병원 소아과학교실 외래교수, 대구의료원 진료처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대구광역시 교육청 아동폭력예방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의사수필가 협회 홍보이사, 안행 수필 총무, 수필문예회 부회장,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회원, 영남수필, 대구문학, 청람수필 회원으로 『진료실에서 바라본 풍경』, 『 꼭 붙어있어라』 등 오랫동안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며 바라본 진료실 풍경을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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