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1 (토)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인터뷰

"회원과 의협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

김형수 실장, 연구원들이 강건해야 의협에 도움 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에 김형수 건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지난 7월 6일자로 임명됐다.

이진석 전 연구조정실장은 앞서 일신상의 이유로 실장직에서 사퇴하면서, 김형수 교수를 후임으로 천거했고, 이를 수용한 추무진 회장이 지난 7월6일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형수 실장은 “의협과 의료정책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전임자인 이진석 연구조정실장이 좌 편향적이라는 오해로 취임 당시에 곤혹을 치룬 반면, 김형수 실장은 문난하게 연구조정실장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실장은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1995년)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석사(1999년), 고려대학교 의학과 의학박사(2002년) 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2002년부터 현재까지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메디포뉴스가 지난 19일 김형수 연구조정실장을 만났다.  

- 연구조정실장을 맡게 된 계기는?

연구조정실장 직을 맡기 전에 의료정책연구소 위원으로 2년 정도 기회가 되어서 활동을 했다. 그때는 주로 소위원회 내지는 편집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그때그때 계간지 만들거나 인사소위할 때에 의협이라고 하는 큰 조직 내에 의료정책연구소가 이런 일을 하는 구나라는 감 정도만 있었는데 그러다 기회가 됐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전임자 이진석 실장이 권유해서 왔다. 사실 올 때 부담이 됐었다. 이진석 실장 정도로 의료정책에 많이 관여한 것은 아니었고 만성질환관리 사업을 많이 했다. 의협 일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진석 실장이 낯선 사람보다는 낫지 않겠냐 했고, 그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오케이 한 것이다. 

그냥 원 포인트로 일하는 것 보다는 실장이라는 직을 가지고 일하는 게 부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의협이라는 조직을 접해볼 기회이고 죽어도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또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응했다.

- 연구조정실장이 된지 한 달 가량 지났다. 소감은?

한 달 반 지나면서 보니 의협에 계신 소장님이 연구소에 15분의 연구원들과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연구지원 인원 5명을 포함해서 20명이다. 내가 혼자 의료정책을 연구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의협이 회원과 국민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연구소에서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위원으로 그때그때 왔을 때는 조금 고민해보고 끝났는데 이제는 매주 수요일, 격주 금요일로 오는데 선생님들과 어울리고 고민하면서 내가 괜한 고민을 했구나, 내가 다 알 필요가 없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밖에서 봤을 때 내가 뭘 기여해야하나 고민만 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 연구원들이 있기 때문에 같이 고민하면 된다. 나의 의견, 그분들의 의견을 같이 들으면서 그러한 고민들이 조금 더 열매를 맺을 수 있게끔 같이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제 막 고민을 시작한 친구들도 있다. 어떤 분은 의사가 아니지만 더 의사보다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의사라고 하지만 주로 대학에서 활동했고 의료정책보다는 만성질환사업관리 분야 쪽에서 많이 활동했다. 그런 한계 속에서 나 혼자의 두려움 보다는 여기 선생님들과 뭔가를 더 발전적으로 일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 연구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민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의사 개개인이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있고, 단체로서 의협이 이런 걸 한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는 양면성을 띈다. 의사 회원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도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겠지만 살면서 보면 의도치 않게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연구소의 역할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데 같이 한다는데 감사하고 그런 게 내 역할이 아닌가 싶다.

- 현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석사, 고려대학교 의학과 의학박사를 거쳤다. 보드 따고 간 게 2000년이다. 병원에서 펠로우 2년을 하고 2002년 발령을 받았다. 

예방의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전공이 직업환경의학 전문이라고 옛날 산업의학과다. 나는 사실은 전공의시절엔 팩토리 닥터가 하고 싶었다. 내가 의사될 때 의사고시 합격률이 67%였다. 95년도 2월 끝나고 여학생들이 울면서 나왔다. 8월에 의사고시 재시가 있었다. 

산업의학과가 그때 처음 생긴 과였다. 그거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땐 별로 그런 생각 안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예방의학은 싫었다. 너무 부담스럽고 잘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의사가 되는 게 좋을까라고 고민한 게 매스컴을 상대하는 것,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대중을 상대하는데 환자 한 명 한명을 보는 것보단 전체를 상대하는 것이다. 

사실 예방의학이 맞긴 하는데 나한테는 기회였다. 그때 마침 공장 검진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게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런 공장에서 내가 건강관리를 해주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 이유로 산업의학과 선택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왜 하냐고 했었다. 큰 욕심은 없었고 한 10년 정도 지나니까 선배들이 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드 따고 간 곳이 충주였는데 충주가 공장이 많은 동네가 아니다.
 
공장이 크지 않다보니까 일주일에 2,3일이면 할 일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할 일이 없었다. 그때 교실에 계시는 이건세 선생님이 충주 막 갔을 때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셨다. 충주 인근의 보건소, 충주 제천 단양 등 보건소 사업에 참여하고 관여하고 그러면서 그때가 2000년대인데 보건소에 건강증진사업이 막 커질 때였다. 그게 보건소와 인연이 됐었다.

- 사실 보건소 만성질환관리가 동네의원이 하는 만성질환관리와 경쟁 관계이다. 

사실은 내가 만성질환사업을 했지만 주로 파트너는 보건소였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떠나서 보건소와 민간이 있으면 처음에 커버리지를 말했지만 보건소한테 한 이야기가 그래봐야 1%다. 보건소가 잘한다고 해봐야 1% 아니냐는 말을 한다. 보건소가 커버하는 게 지역주민 1%인데 나머지 99% 이야기는 의문이다. 좀 더 보면 보건소가 커버하는 어르신들이 있으니까. 5% 내외일까? 나머지 99%는 다 어디로 가느냐? 민간으로 가느냐? 아니다. 안가는 사람도 있다. 

-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관리 정책에 대한 생각은?

이전에 전화상담이 아닌 만성질환관리도 있었고, 지역사회 1차 의료 시범사업도 있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뭔가 잘 안되고 마음에 안 드는 거니까 전화상담을 하는 것이다. 만성질환관리를 하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방법이 여러 가지이고, 툭툭 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안 해 봤던 사업이니까 이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조금은 아쉽다라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민간이 들어와야 하는 건 맞다. 투약 면에서 보면 99%는 민간에서 하는 거다. 

만성질환관리가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약을 잘 먹는 게 있다. 궁극적으로는 약을 잘 먹어서 정상 범위 내에 있게 하는 거다. 그거 말고 하는 게 상태개선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잘 안되니까 알려주려고 교육을 한다. 지역사회 1차의료 시범사업을 하는 것도 환자들에게 전달해줄 것이 있고 교육시켜주는 건데 의사들이 보건소를 부담스러워하니까 협조가 안 된다. 투약, 상태개선을 민간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것이냐? 이게 앞으로 숙제인 거다. 

- 연구조정실장으로서 업무파악은?

아직 다 끝나진 않았다. 연구원들이 하는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크게 보면 우리가 연구소에서 연구용역이 나가는데 파트너로 나가는 것. 외부연구용역의 진행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있다. 또 하나는 이전 소장이 시행한 내용인데 연구원들이 페이퍼를 써야한다. 1년에 2편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 3가지 일이 보면 앞에 2개는 의협과 관련된 건데 논문도 의협과 관련된 것이면 이런 걸 할 때 내가 내 경험적으로 자료 확보 등 어떤 걸 도와줄 수 있는지 보는 그런 단계에 있다.

- 연구실장으로 오기 전에 조금씩 관여했을 때와 지금과 가장 큰 차이점. 아쉬운 점은?

아쉬운 점은 없다. 요새 느끼는 게 천천히 가자이다. 연구소 실적이 없다고 해서 실적이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 싸움이다. 외부에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연구소가 생긴지 14년이 됐으니까 그만큼 못한다고 하는 건 둘 중 하나다. 기대치가 높거나 연구소가 일을 안했거나 이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눈높이를 낮추든가 역량을 높이는 건데 역량을 높이는 것에 얼마나 시간을 들일 것인가? 이런 게 필요한 거다.

- 이번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과 관련해서 연구소에 자료 조사나 연구조사는 있었나?

전화상담과 관련해 우리가 준비한 건 없었다. 내가 파악하는 수준에서는 원격에 대해 저항감이 있다. 원격이 아닌 상황에서 1차의료 하는 분들에게 크게 손해는 아니다.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건 좋아지는 것이다. 보상도 준다고 하기 때문에 의료계에 큰 손해는 아닌 거 같다.

- 연구결과의 객관성 담보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대국민을 위해서 바로잡는 연구결과는? 

그건 양면성인 거 같다. 하다보면 좋은 결과는 대국민에 공유한다. 그런데 속된 말로 까발리는 연구결과, 즉 나쁜 것은 의협 내부에서 공유하게 된다. 외부에 나가는 것은 좋은 연구결과가 나갔으면 좋겠다. 보여주는 모습은 숫자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역시 시간이 필요한 거다. 2가지 측면이 있다. 내 희망사항인데 의협 회비를 5년전부터 냈다. 회비를 낸 이유가 돈이 있어야 의협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의협이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생각에는 의사들은 개별적으로 잘한다고 본다. 의사 전체적으로 볼 때 예쁘게 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의사집단이 국민들에게 잘 보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사들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시선보다는 의사집단이 저런 주장을 하는 건 모두 국민을 위해서 그런다는 시선이 있어야한다. 그런 고민이 있다. 의사집단이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집단이 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거 같다.

- 소장과 실장의 소통은? 연구소 내의 의사결정 구조는?

결정은 소장이 한다. 결정을 할 때 내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고 말하기도 한다. 전화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하는 것 같다. 내부 네트워크가 있다. 조금 소장님에게 감사했던 것은, 내가 의협을 잘 모른다. 대학에만 있다 보니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의 입장을 잘 몰랐다. 그런 부분 이야기를 잘 알기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이 밖에서 1차 의료 내지는 개원의 선생님들의 고민을 가지고 일을 많이 하려고 하신다. 

그런 쪽의 일을 많이 만든다. 현실을 알기 때문에 소장님이 고민했던 부분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부분들. 그렇게 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잘 몰라서 말 꺼내기 어려운 부분인데 고민할 거리가 생긴 것. 연구원들이 나보다 먼저 앞서서 고민했던 것. 내부 연구, 외부연구, 논문 때문에 연구원이 고민하고 있는데 나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실장이라는 자리는 소장과 연구원의 중간 역할이다. 챙겨야하는 내용, 연구원 등 중간에서 해야할 일이 많다. 훗날 내가 연구소에서 나갈 때 연구원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좋아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연구소가 지금보다 조금 더 의협에 도움이 되는 연구소가 되도록 한 단계 더 올라간 연구소가 됐으면 좋겠다. 또 연구원들이 좀 더 강건해야 한다. 어느 소장, 실장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했으면 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좀 더 노력을 했으면 한다. 연구소에 기여하는 실장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