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벌중심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환자안전 중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등장했다.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화 비교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가 1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청회에서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어은경 교수는 환자안전사건 대응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
교수는 현재 의료분쟁 구조의 핵심 문제로 ‘소통 단절’을
지목했다.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다 상태가 안 좋아진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지만,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죄를 인정하는 자백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환자를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위로와 설명을 받지 못한 채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로 어 교수는 ‘사과 보호법’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
교수는 “외국에는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며 “사과와 설명만으로도 의료분쟁까지 가지 않았다는 많은 논문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이후에는 근본 원인 분석을 통해 재발 방지로 이어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어 교수는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시스템 문제”라며 “어떤 구멍이 있었는지를 찾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제도적 기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 교수는 “병원
내 위해 사건이 연간 3만건 정도로 추정된다”며 “코로나 누적 사망자 수와 비슷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환자안전청’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사고 조사와 소통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 도입, 의료기관뿐 아니라 이송·의약품·의료기기 등 전 과정이 포함된 조사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의된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서는 행정·재정 지원, 사과보호
장치 등 일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중과실 기준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어 교수는 “중과실의 범위가 너무 넓어 대부분의 환자안전사건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며 “반드시 추가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신현두 과장은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에 대해 설명했다.
신
과장은 “중과실 기준에 대해 의료계는 최대한 기준을 좁히자는 입장이었고, 환자 단체와 시민사회에서는 기준확대 요구가 있었다”며 “양 당사자의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판례 분석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수준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가령
투약 오류나 수혈 오류처럼 비교적 단순해 보일 수 있는 행위라도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사고 심의위원회’ 설치도 추진된다. 신 과장은 “현재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의료 과실과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전문 심의기구를 통해 중과실 여부와
필수의료 해당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수사 지연을 줄이고, 보다 일관된 판단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형사책임 완화 방안도 포함됐다.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사망 사고를 포함한 사건에서도
기소를 제한하는 특례가 핵심이다. 신 과장은 “기존에는 합의를
하더라도 사망 사고의 경우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며 “중과실이
없고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이며 손해배상이 이뤄진 경우에는 형사 부담을 줄여 의료진이 필수의료를 기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법안을 통해 의료진 보호와 환자 권익 사이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중과실 기준과 형사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인 만큼, 향후 제도 보완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대의원회 양동호 의장은 “과도한 사법리스크가
의사들을 필수의료 현장에서 떠밀어내고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예기치 못한 의료 사고의 책임을 의사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짐을 나눠지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때”라면서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의사는 응급상황에서 손익을 계산하거나
형사책임 가능성을 먼저 떠올려서는 안 된다”면서도 “현실은
매년 수백명의 의사가 형사피의자가 되고 있고, 이는 필수의료 현장을 위축시키는 강력한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진료현장을 위축시키는 사법 구조를 바로잡는 근본적인 개혁을
서둘러 실행해야 한다”며 “처벌 강화보다는 구조 교정의 방향으로, 국가의 재정적·제도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과 제도들을 정비∙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의료배상공제조합 박명하 이사장은 “최근 의료현장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개정 법률안들이 발의된 것은 무척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