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간호사도 골막천자를 수행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환자들과 의료계가 일제히 골수검사 과정에서의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며, 법원의 판결에 대해 비판·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간호사의 골막천자는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해당 사례는 지난 2018년 4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소재 A병원에서 전문간호사들로 하여금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골막천자를 시행하게 하여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례다.
당시 2심은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간호사의 인체 침습적 의료행위를 무죄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 354명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및 환자경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많은 환자들은 숙련된 의사들로부터 골수검사를 받기를 희망함을 외쳤다.
해당 조사는 2024년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8일 동안 회원 중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 대상으로 설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골수검사가 의사가 지도·감독하면 전문간호사도 할 수 있는 진료보조행위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대해 절반이 넘는 수준인 354명 중 214명(60.5%)이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이어서 ‘골수검사 관련 교육과 수련을 받고, 의사의 지도·감독을 받으면 전문간호사도 골수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절반 수준인 354명 중 175명(49.4%)이 “반대한다”라고 표명했다.
또한, 골수검사 관련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은 저마다 ▲골수검사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검사가 아니므로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가 하는 것이 맞다 ▲의사 선생님이 아닌 전문간호사가 한다면 너무 무서워서 못 할 것 같다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걸린 질병을 들고 간호사에게 진료받으러 오는 게 아니며, 환자를 존중하는 환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사항에 해당한다 ▲2차 감염을 비롯해 검체 채취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있으므로 의사가 진행해야 된다 등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싶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다만, 기존 골수검사과 관련해 레지던트(전공의)들이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각각 ▲인턴 등 실습 목적으로 비숙련 의사보다 골수 채취를 전문으로 교육받아 숙련된 간호사가 더 신뢰된다 ▲매달 바뀌는 레지던트분들이 하시는 것보다 전문간호사분들이 하시는 게 좋다 ▲레지던트분이 바뀌는 시기에는 골수검사 안하게 해달라고 빈다 등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외에도 ▲의료사고의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건지 법적 책임에 대한 것과 환자가 안심할 수 있을 만한 교육 전반이 제시되는 게 가장 먼저의 일 같다 ▲환자의 편의와 실익을 지키지 못하는 법은 사라지거나 개정돼야 한다 ▲골수검사 시 다수의 인턴 의사들이 골수검사 현장을 관찰하는 방식은 수치스러우니 영상교육으로 대체됐으면 좋겠다 등 기존의 골수 검사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많았다.
의료계 역시 일제히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우려스러운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골막천자는 혈액·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바늘을 이용해 골막뼈의 겉면(골막)을 뚫고 골수를 흡인하거나 조직을 생검하는 등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의료행위로, 마땅히 면허된 의사만이 수행해야 안전이 보장되는 침습적 의료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간호사라 할지라도 한 분야에 특정된 ‘간호사’ 자격을 부여받았을 뿐,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본질적으로 ‘간호사’의 면허된 업무범위는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부위의 안정성과 단순 숙달 등을 이유로 면허된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복했다.
또한, 의협은 대법원이 지난 10월 동 사건의 변론기일에서 “골수 검사는 인체 내 동일하게 퍼져있는 골수라는 대상의 범용성과 주사 부위가 가지는 안정성 때문에 단순 반복이 가능한 독특한 영역이며, 매뉴얼과 프로토콜에 의해서 시행이 가능하며 숙달되는 것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간호사뿐만이 아닌 간호조무사와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 등이 의사의 지도·감독 없이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의료법 관련 판례 중, 간호조무사의 수술 부위 소독 및 드레싱에 대해 “소독 및 드레싱은 의학적 전문 지식이 있는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 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로 간호조무사가 할 수 있는 진료보조행위의 범위를 넘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판결과 모순됨을 비판했다.
더불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에 대해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정의한 그간의 대법원 판단 기조까지 무색하게 만드는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젊은의사 정책자문단도 “의사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를 진료지원인력에게 맡기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경시하고,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일부 병원들의 이익 창출을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의과대학에서 6년간의 방대한 교육과 체계적인 실습 과정을 거쳐야 의사 면허를 부여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습득한 전문 지식이 침습적 의료행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지금까지 골막천자라는 의료행위는 수술에 준하는 의료행위로 간주됐음을 강조하며, 골막천자가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인정된다면 현재 수술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수술도 반드시 의사가 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제도와 교육시스템이 다른 외국의 사례를 섣불리 국내에 적용하는 행위는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 수준이 비슷하거나 높은 국가들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인들의 업무 범위는 국가마다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의료 시스템과 제도가 판이한 외국의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여 무면허 의료행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에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의료인 수급 현황 ▲국민적 인식 ▲의료 제도·인프라와 관련 법령 등을 바탕으로 의료인간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명확한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수준에서 업무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병의협은 전문간호사 자격과 숙련도를 바탕으로 골막천자 의료행위 가능 여부를 평가하는 행위의 문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첫째로 전문간호사는 간호사가 모든 영역의 간호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호업무의 전문성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만들어진 제도이지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로 의료행위의 숙련도는 무면허 의료행위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번 사건에서 골막천자를 직접 수행했던 간호사가 숙련도가 높아 한 건의 의료사고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해당 행위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불법 대리수술 문제도 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면서 모순을 지목했다.
셋째로 비숙련기간 동안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고, 숙련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상태나 해부학적 기형 등의 문제로 언제든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