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있어도 못 쓴다”…희귀질환약제, 경제성평가 유연한 적용 필요

2024-08-23 06:00:24

전진숙 의원, 환자중심 희귀질환 치료제 사용 모색하는 토론회 개최


많은 희귀질환 치료제들이 고가인 가운데, 경제성평가 등 약가 제도를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이 희귀의약품 보장성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환자 중심의 희귀질환 치료제 사용을 위한 과제’ 토론회가 2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 날 발제를 맡은 환자접근성개선연구회 이원철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지연 방지와 신약 접근성 제고를 위해 2015년 5월 ‘경제성평가 면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원철 회장은 “제도 시행으로 2024년 7월까지 39개 의약품이 급여 적용돼 신약 접근성을 향상시켰으나 정작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적용 비율은 8%로 낮은 수준”이라면서 “삶의 질 개선 입증 약제가 대상 약제로 추가 개선되기는 했으나, 소아에만 해당돼 제도의 실효성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2022년 국정감사에서 항암제 2개의 비급여 가능성과 제도 개정방향이 ‘개악’라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이 회장은 “항암제에 비해서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제도 적용의 비율이 낮아 약제나 환자간 비형평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희귀질환이라는 치료제의 특성이 잘 반영돼 신약 접근성 제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방안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약제도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급여등재검토 시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검토될 수 있도록 균형있는 제도로 개정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희귀의약품 보장성 개선을 위해 △질환 특성을 고려한 경제성평가 유연적용 △경제성평가면제제도 적극 활용이 필요하다고도 제안했다.

경제성평가의 유연한 적용을 위해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의 특성을 감안하고, 사회적요구도나 비용, 영향과 같이 평가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항목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ICER 수용 범위 확대도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또 경제성평가 면제제도를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희귀질환 치료제를 성인 대상으로 확대하고, 대상 환자 수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 또 다른 발제자였던 ‘X염색체 우성 저인산혈증’ 환자 가족을 둔 보호자 A씨는 ”XLH 저인산혈증 구루병은 소아청소년기에 적절히 치료되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 기존 질병의 고통뿐만 아니라 장기복용했던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평생을 내분비질환에 대한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치료제 부작용으로 인해 부갑상선 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하며, 대증요법인 ‘인 보충치료’는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토로하며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환자는 급여 미적용으로 심리적, 신체적 고통이 심하다. 동등한 치료 기회가 주어지길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패널토론에서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신찬수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 중 임상시험을 끝내고 현재는 급여 조건이 맞지 않아 원래의 치료로 돌아온 환자가 있는데, 그 환자는 지옥에 있다가 2~3년은 천국으로, 지금은 다시 지옥에 온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기존 약제는 흡수도 안 되는 등 한계가 있었는데, 신약의 경우 2주~4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면 한 달을 편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로서는 좋은 약들이 개발되는 걸 알고 있더라도, 국내 도입이나 가격적 측면 등으로 인해 단계마다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하는 등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국격에 걸맞는 급여 정책이 필요하다. 보험 재정의 효율적 재분배가 이뤄져 극희귀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글로벌 블록버스터들이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낮은 가격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계약한만큼 가급적이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약제를 골고루 선택할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이종혁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지출 구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체 약품비 중 신약은 8.48%에 불과하며 희귀질환치료제, 경제성평가 면제 신약의 비율 및 품목당 지출 금액은 높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약약품비 중 희귀질환 치료제의 약품비는 17.6%로 전체 약품비의 1.5%였으며, 경제성평가 면제 신약의 경우 총 신약 약품비 대비 3.7%로 전체 약품비의 0.3%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종혁 교수의 설명이다.

이종혁 교수는 “희귀의약품의 특성상 환자가 매우 적고 경제성평가 면제를 통해 등재되는 경우 RSA를 통해 잘 관리되고 있어 재정 영향이 크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확대방안과 재원의 다양화,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최인화 전무는 “경제성평가 생략제도에도 불구하고 희귀질환 약제들은 제도적 한계로 인해 국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매우 낮다.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정책적‧제도적 혁신으로 혁신신약이 신속 급여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희귀질환 치료제 대상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 확대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 논의 시 경제성평가 제도 함께 검토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전무는 “현재 기준은 질환 유병률과 무관하게 국내 환자 200명 이상 또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더라도 획기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치료제는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를 신청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국의 경우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별도의 평가 기준을 적용해 급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 시스템 아래에서 경제성 평가의 진입장벽을 혁신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의 사후관리 강화는 신약 접근성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국내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게 하려면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제성평가 기준을 획기적,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한편허가평가급여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본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중 희귀질환 신약 지출은 3.25%에 불과하다며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로 등재된 신약을 위한 지출은 전체 약품비의 0.3% 내외다. 이는 국내 건보 재정에서 희귀질환 약제 지원에 대한 지원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전문가들의 제언이 반영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박희연 사무관은 “희귀질환 치료제의 재정이 적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재원의 효율적 활용은 어려운 문제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재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재정에서 자금을 빼서 희귀질환 치료제에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계를 전했다.

또 “약의 급여화를 할 때는 모든 약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전체 재정의 규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재정이 적다는 이유로 희귀질환 치료제를 우선적으로 급여화하는 것은 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재정의 일정 비율을 약제비로 할당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의약산업협회 등에서 국내에 약을 도입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코리아패싱’에 대한 말도 나오고 있으나 이는 환자들의 희망을 빼앗는 무서운 단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김국희 실장은 “비급여 평가와 관련해서, 평가가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으며, 원칙과 재원의 분배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면서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의 도입으로 급여율이 많이 좋아지는 등 순기능이 분명히 있었다. 희귀의약품, 희귀질환치료제에 대한 급여율이나 청구금액 비중도 많이 증가했다. 신약의 비중도 최근에는 13% 정도까지 증가했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약제비 증가율이 총 진료비 증가율보다 항상 낮았지만, 2023년에는 약제비가 훨씬 더 증가했으며, 항암제는 26%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재원의 분배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김 국장은 “희귀질환 치료제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경증 질환과 희귀 질환의 재원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성평가 생략이 만능은 아니지만, 외국은 대부분 경제성평가를 하고 있고, 특정 경우에는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초희귀질환의 경우 경제성평가 생략이 도입된 적이 없지만, 이런 약들이 경제성평가로 들어오면 충분히 논의될 것이다.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는 특정 상황에서 효과적일 수 있으며, 이는 지속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확대돼야 하며,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은 환영사에서 “아직 대체의약품이 없는 초고가 의약품이 많고, 치료제가 있더라도 돈이 없어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며 “토론회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꼼꼼히 검토해 의약품 접근성 개선부터 사후관리까지 환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 환경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영희 기자 nyh2152@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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