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정신질환의 부담과 책임이 오로지 환자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지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주도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7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협회와 함께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현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 2018년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2019년 진주 방화 살인사건, 그리고 지난 5일 남양주에서 발생한 20대 조현병 남성의 존속살해 사건 등을 거치면서 이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적 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경희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 영국, 대만 등 해외 정신건강관리시스템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의 정신건강관리시스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백 법제이사는 “외국의 경우 지역사회 정신건강관리팀이 매일 중증정신질환자의 집에 찾아가고, 정신과 전문의도 한 달에 한 번씩 치료를 유지한다”며 “만약 응급상황 발생하면 경찰과 정신건강관리팀이 현장에 출동하고, 환자들을 위한 병상을 항상 비워두고, 72시간 이상의 입원은 법원에서 판단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과 호주에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준 사법행정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을 둬 중증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며 “심판원에는 법조인, 정신과 의사, 공익위원 세 명으로 위원이 구성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출동할 수 있는 경찰을 즉시 연계해 100% 출동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심판원은 자·타해 위험이 있는 응급상황에서 전문 의료진이 입원 판단을 내리고, 비자의 입원 72시간 내 법원 또는 정신건강심판원 등 사법기관에서 개인의 신체적 자유에 대한 구속 지속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대만의 경우에 대해서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24시간 동안 대기해 전화를 받고, 필요하면 출동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6개 이상 응급병상을 항상 비워두고 있다”며 “정신보건법에 경찰의 출동과 이송을 명문화 하고 있고, 지자체의 책임 하에 검진을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 법제이사는 “반면 우리나라는 입원이 까다롭고 준비는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만 느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보호자 설득에만 의존하다 보니까 안전을 위한 단호한 조치가 이행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
또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출동한 결정이 결정하도록 하는 현 제도는 경찰이 부담해야 되는 책임이 클뿐더러, 경찰은 안전 전문가이지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라는 지적.
이와 함께, 입원 필요성이 있더라도 24시간 응급입원 환자를 위한 병상을 찾는 것이 어려우며, 야밤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되돌려 보내는 국립병원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그는 영국과 호주 사례와 같이 복지부 산하 정신건강심판원 설립을 제안하며 “이러한 변화에 법 개정도 필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면 최소한 응급시스템만이라도 개선해 지역사회에 환자가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백 법제이사는 “앞으로도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모든 부담을 당사자와 가족에게 맡겨야 될 것인지, 아니면 지역사회의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해서 본인 스스로가 치유할 수 있고 중증정신질환이 있어도 안전하게 입원을 보장하면서 그들을 우리의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사회의 시스템이 결정할 문제”라며 “이것이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본질”이라고 역설했다.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정신건강전문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김영희 정책위원은 “경찰이 출동해서 바디캠 등을 통해 현장의 상황을 전송하면 24시간 실시간으로 전문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공공정신건강전문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또 공공정신건강전문의의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환자의 과거 정신병력 정보들을 지체 없이 조회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원은 또 응급행정입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며 “24시간 응급행정입원을 전담할 의료기관의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