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대정원 확대 추진에 있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상 실태조사를 통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이를 기초로 한 종합계획의 수립,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력에 관한 정책 논의구조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
19일 의협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 ‘4대악 의료정책 문제점과 대안 정책협력자료’를 공개했다.
의협은 자료에서 ▲의사 수 부족에 대한 객관적 근거 부재 ▲의사 수 추계 관련 연구의 문제 ▲지역의사제도의 문제 ▲특수 전문분야 및 의과학자 양성의 문제 ▲미래환경 변화에 대한 고려 전무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의사 수 부족에 대한 객관적 근거 부재=2019년 10월 시행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보건의료인력의 양성 및 공급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조사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다만 지난해 보사연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나 해당 연구의 의사 응답자는 591명에 불과해 의사인력의 실태를 파악하기에 적절한 자료가 아니며, 또한 현재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우리나라 활동의사 수는 OECD에 제출되는 자료와 동일한데 최근 해당 자료의 정확성,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즉 연도별 국내 활동의사 수에 일부 설명 불가한 현상들이 발견돼 의사인력과 관련한 통계자료의 정확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2000년 이후 활동의사 수(한의사 포함) 현황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활동의사 증가 수, 실제 매년 의사, 한의사 국가시험 합격자 수를 비교해보면, 특정 연도(2004년)의 경우 4000명이 넘게 차이난다.
대개 의사 수의 증가분은 국가시험 합격과 동시에 발부되는 신규 면허자와 해외에서 유입된 의사, 일부 탈북 의사가 포함되고, 감소분은 의료기관의 폐업, 사망, 은퇴 등이 해당되는데 한해 4000명이 넘게 감소한 현상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편 정부는 OECD Health Data상 인구 천명당 활동의사수를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해당 자료는 국가별 자료의 범위, 산출방법이 상이하고, 국가마다 의사인력 수를 표시하는 방법이 달라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OECD 회원국이 제출하는 활동의사 수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거나, 이를 적정 의사 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론적으로 적정 의료인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전문가의 판단, 의료시장의 현상 관찰, 건강수준의 평가, 지역주민의 만족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
의사 수 추계 관련 연구의 문제=의사 수 추계 연구는 미래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자료인데, 기존 연구들은 단순수식 즉, 현장중심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현장중심접근법이란 현재 주어진 데이터 값에만 기초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현재의 데이터 값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제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error 반영)가 선행돼야 한다.
기존의 의사 추계 연구들은 각 단계별 의사결정 타당성 여부에 대해 평가되지 않았고, 이 가정을 미래에 적용하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확실성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역의사제도의 문제=정부는 지역 내 중증 및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적어도 3258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구분해 추계한 연구결과로 제시하고 있으나, 국토면적이 좁고, 교통이 발달했으며, 의료전달체계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환자들의 관외 의료이용이 쉽다는 특성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부적절한 수치다.
국내외를 막론해 의료 인력과 관련된 불균형 문제는 수적 불균형, 지역 간 불균형, 전문과목별 불균형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현재 정부는 지역 간 불균형 분포 문제를 의사 수 확대로 해결하고자 하나, 지역 간 불균형의 문제는 의사 수가 많은 국가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역 간 의사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원된 의사들을 ‘지역의사제’라는 제도로 묶어두겠다는 것 역시 인위적이고 이질적인 의사그룹이 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지역의사제도는 일본의 지역 틀 의사제도(9년 의무복부)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보도됐으나, 이는 이전에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중보건장학제도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일본의 지역의사 확보 정책도 실패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특수 전문분야 및 의과학자 양성의 문제=역학조사관, 중증외상 등 특수·전문분야 인재양성 역시 별도 제도나 양성 트랙의 부재로 해당 분야의 의사 부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해당 분야들은 정확한 현황 파악 후 해당 분야의 교육, 훈련, 향후 진로 유인 등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분야다. 특히 해당 분야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 내용과 과정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언급이 없다.
제약·바이오산업에 종사할 의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별도의 증원을 한다는 것 역시 이전 의전원 제도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이다. 정부는 의전원 제도 도입 당시, 의전원생은 타 대학을 졸업하고 의대를 진학한 만큼 학문적 호기심이 왕성해 의과학자 분야로 많이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의과학자로의 진출은 미미했다.
한편 의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은 이미 시행되고 있으나 이 역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 현황’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42명에게 79억원의 국가 예산이 지원됐지만, 졸업한 61명 중 44.3%에 달하는 27명이 졸업 후 의과학자가 아닌 개업의가 되거나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밟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환경 변화에 대한 고려 전무=정부는 10년간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래 변화에 대한 고려는 전무한 상태다.
의사인력 증원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의사는 10년 후에나 현장에 배치될 수 있어 적어도 10년 후와 그 이상 미래의 변화될 인구사회학적 특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인구의 고령화,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 등의 발달이 의료분야에 미칠 영향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의협은 대응방안으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상 실태조사 및 종합계획 수립 논의, 의료인력 문제 및 관련 정책수립을 위한 논의구조 마련,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방안 고려 등을 제시했다.
의협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하기 위한 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의료인 단체 등을 포함하도록 규정했다”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기 전에 정부는 동법에 의한 실태조사를 통해 의사 수 과부족에 대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정책목표 및 종합계획의 방향성, 세부 내용 등을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한 “주요국과 의사인력 수급 거버넌스를 비교하더라도 우리의 경우 관련 정책이 정부주도로 수립되고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어, 객관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라며 “의료인력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정부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한 전담기구의 설치를 고려할 수 있으며, 이를 준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끝으로 “지역의료기관이 우수한 의사를 유치하기 어려운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므로, 현재시점에서 활용가능한 공중보건의사와 은퇴의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공중보건의사제도를 역학조사관 및 필수의료 담당의사로 활용하거나, 공공의료분야 진출이 가능하도록 관련 조직 및 관리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은퇴의사 등이 공공의료기관과 지역의료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