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년, 2007년)
1848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은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 당시에는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없었고(1896년까지), 인디언의 잦은 출몰로 노다지를 캐러 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뱃길을 통해 파나마 지협까지 간 다음, 아메리카 대륙의 잘록한 허리 48㎞를 ‘철도 횡단’, 다시 뱃길로 캘리포니아까지 북상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환승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이곳에 수로 건설이 필요했다.
수에즈에 운하를 만들었던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Ferdinand V de Lesseps)은 1880년부터 7년을 예정으로 파나마에서 운하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셉스의 독선과 아집, 시공상의 난관, 더하여 풍토병인 ‘황열’과 ‘말라리아’로 인한 인력 손실로 공사는 9년 만에 부도를 맞고 말았다. 인부들을 괴롭혔던 황열(yellow fever)은 원래 서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풍토병으로 고열과 오한, 출혈과 황달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염성이 강해 일단 환자가 발견되면 모든 것을 불에 태우고 재빨리 마을을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나중에 검역제도가 마련되자 이를 상징하기 위해 배에 ‘황색 깃발(Yellow Jack)’을 달게 된 것도 모두 황열에 대한 두려움과 아픈 기억때문이다.
1898년,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자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이 코앞에 있는 쿠바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기울어가는 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전함이 쿠바까지 오는데 무려 2개월이나 걸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미국은 황열과 말라리아가 횡행하는 파나마에서 어떻게 운하를 건설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스페인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황열의 중심지’ 쿠바에 진주하였는데 많은 병사들을 적의 총칼이 아니라 황열로 잃는 사태를 맞았다. 전쟁 후에도 아바나에 주둔 미군들 사이에 황열이 유행하자 군당국은 군의관 월터 리드(Walter Reed)소령에게 대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주로 서부의 요새에서 군생활을 했던 리드는 볼티모어에서 근무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세균학과 병리학을 공부했던 부지런한 인물이다. 리드는 아바나에서 제임스 케롤(James Carroll), 제시 라지어(Jesse Lazear), 그리고 쿠바사람 아그라몬테 이 시모니와 황열위원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의 작업들이 실패로 끝나자 리드는 아바나의 괴짜 세균학자인 카를로스 핀리(Carlos Finlay) 박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1900년 8월, 황열 모기에게 일부러 물리는 생체실험을 통해 캐롤과 라지어가 황 리드(1851~1902)와 핀리(1833~1915) 열에 걸렸고 레지어는 목숨을 잃었다. 지금 같으면 불가능한 실험이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더구나 황열은 인간에게만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 실험도 소용이 없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황열모기와 황열 바이러스
1901년 2월 공병대가 모기의 서식지인 숲을 없애기 시작했고, 90일이 지나자 아바나에서 황열은 사라졌다. 리드의 발견에 힘입어 미군은 군에서 황열을 완전히 추방할 수 있었다.
아바나에서의 성공은 황열이 득실대는 파나마의 밀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기에 미국은 자신있게 파나마로 진출하였다. 덕분에 공사를 재개한 지 10년 만인
20세기 말에 이르자 경기 침체와 심각한 정치변동을 겪고 있던 파나마에 ‘국제적인 마약사범’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 미국이 병력을 동원한 사건이 터졌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황열이나 말라리아가 파나마에 없었다면 파나마 운하의 장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군의관 리드가 황열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미국의 손으로 만들어진 파나마 운하는 없을 수도 있을까?
하여간 책임감 강하고, 명석하고, 부지런한 군의관과 자신의 목숨을 내다던지고 생체실험을 한 애국적인 연구자들 덕분에, 미국은 결국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노리에가는 미국의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다이하드 2>는 2주 연속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억 4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부한 영화를 별 생각없이 잘 보고 있다. 이 모든 실패와 성공의 역사가 ‘황열모기’ 때문이라면 좀 심한 억지일까?
교도소에 수감중인 노리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