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년, 2007년)
소의 출혈병 1933년 2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식물화학자 링크(Karl Paul Link)의 연구실 앞에 눈보라를 뚫고 180마일이나 달려온 트럭이 하나 멈추어 섰다.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운전자는 농부인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연구원들에게 호소하였다. 12월 이후 자신이 키우던 소들 다섯 마리가 죽었고 이제 마지막 남은 소마저도 한결같이 멈추지 않는 출혈로 죽어가고 있어 답답한 마음에 트럭에 어제 죽은 송아지, 그 송아지가 흘린 피를 담은 양동이, 그리고 소들이 먹었던 건초를 실어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일은 비단 그 농부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벌써 1921년부터 유행한 소의 출혈병(hemorrhagic sweet clover disease of cattle)으로 소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던 소들이 거세 하거나, 뿔을 자르고 난 후 피가 멈추지 않아 죽어버리는 이 병은 이미 1923년에 토론토대학의 수의학자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가 그 원인까지 밝혀내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소들의 건초로 많이 사용했던 전동싸리 풀(sweet clover; Melilotus suaveolens)이 원인이었다. 1900년대에 유럽에서 북미대륙으로 건너온 전동싸리는 초지에는 질소를 풍부하게 공급하고, 소에게는 영양분이 많은 먹이가 되었다. 아마 전동싸리 풀이 없었더라면 북미대륙에서 목우산업은 불가능했을 정도로 귀중한 식물이었지만 어느 해부턴가 독초로 변한 것이다. 스코필드는 전동싸리 풀 속에 있는 쿠마린(coumarin)이란 성분이 원인 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링크는 스코필드가 발견한 쿠마린을 분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던 중 뜻밖의 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링크와 동료들은 농부의 딱한 처지에 마음이 아팠지만 곰팡이가 쓴 전동싸리 풀 때문에 생기는 병이니 건초를 잘 말려 먹이고, 아픈 소는 수혈을 받으면 나아질 것이라라는 말뿐 더 해줄 것이 없었다. 모든 재산을 잃은 농부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농부가 남겨둔 양동이 속의 피가 아직도 굳어지지 않은 것을 누군가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루가 지난 피인데… 얼마 후 링크와 캄벨(Harold Campbell)은 출혈병의 기전을 완전히 알아내었다. 전동싸리 풀이 미처 충분히 건조되지 못하면 곰팡이가 쓸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연상태에서는 무해한 쿠마린을 산화시켜 디쿠마롤(dicumarol;Bishydroxycoumarin)이 만들어진다. 디쿠마롤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비타민 K 의존성 응고인자들 의 합성을 억제하여 지혈작용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질병의 베일이 완전히 벗겨지게 되었다. 1940년에는 디쿠마롤이 합성되었지만 악명 높은 ‘풀 독’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였다. 아니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였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몇 년이 지나 링크는 결핵에 걸리고 말았다. 연구를 중단해야 했던 링크는 당시의 치료법을 쫓아 결핵 요양원에 입원하여 안정하며 지내게 되었다. 한가한 나날들을 보내던 링크는 요양원이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쥐를 퇴치할 방법을 고심하게 되었다. 링크에게 눈보라 치던 겨울날 피 흘리며 죽은 송아지를 싣고 온 농부의 기억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신의 발명품 디쿠마롤의 용도가 떠오른 건 그 무렵이었을까? 링크는 1946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쥐약 개발에 나섰다. 곧 좀 더 강력한 유도체인 3-(2-acetyl-1-phenylethyl)-4-hyroxycoumarin을 발견하였다. 와파린(warfarin)이란 이름으로 특허도 냈다(1948년). 와파린을 옥수수와 섞어놓으면 맛이 아주 좋아 쥐들에겐 정말 ‘쥐약’이었다. 와파린을 먹은 쥐들은 모두 우리의 기대대로 피가 멎지 않아 죽는데 대개는 뇌출혈로 죽었다. 와파린은 곧 쥐약(rodenticide)의 대명사가 되었다. 1951년에 미해군에 입대한 신병이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때 음독한 와파린의 용량은 무려 567mg이었다. 하지만 신병은 뇌출혈도 생기지 않고 며칠 만에 멀쩡하게 나아 퇴원하는 기적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인간에게 안전성 연구가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혈관 내에서 피가 굳어지는 질병에 사용하면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뇌경색이나 심장병 예방을 위해 환자들에게 ‘쥐약’을 먹이는 것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모두 부담스러웠던지 기대와 달리 쥐약만큼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1955년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던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심근경색 발작(AMI)을 일으켰고, 그에게 항응고요법(anticoagulation)으로 매일 5mg의 와파린을 투여했다. 대통령은 회복되었고 덩달아 와파린의 효능과 안전성이 널리 입증이 되었다. 또한 FDA로부터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 환자의 항응고제로 승인도 받았다.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장기간 복용하는 항응고제의 표준 처방약물이 되었다. 왜 스코필드의 묘가 동작동에? 전동싸리 풀에서 나는 향긋한 바닐라향의 근원인 쿠마린이 소 출혈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밝혀낸 수의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는 1898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학생들 중 조선인이 있었던 까닭에 조선이 낯설지는 않았다. 학비가 싼 캐나다로 건너와 수의사가 되었고, 1916년에 캐나다 장로교회의 선교사로 식민지 조선에 입국하였고,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쳤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으로 일제가 잔학하게 조선인들을 탄압하자 일제의 만행을 캐나다와 미국으로 알리는데 노력했다. 1920년에 총독부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고, 출국에 앞서 투옥된 독립지사들을 면회하여 격려하였다고 전한다. 캐나다로 귀국하여 토론토 대학교와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에서 세균학을 연구하였으며, 1923년에 쿠마린의 발견을 세상에 알렸다. 1958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주년을 기념해 창경원 호랑이가 자신의 동생이라며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했던 그는, 국내에서는 ‘3.1 독립운동의 제34인’으로, 캐나다에서는 ‘한국의 노먼 베순(Norman Bethoon) ’으로 통한다. 현재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기념사업이 국내와 캐나다에서 추진 중이며, 2008년에 주한 캐나다대사관이 신축건물 1층을 ‘스코필드 홀’로 명명하여 한국과 캐나다를 잇는 우정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자 묘역 96호에 스코필드의 묘가 있다. 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내가 죽거든 한국(韓國)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少年少女들아 불쌍한 사람을 맡아주세요.”
왜 와파린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링크가 쿠마린을 이용해 강력한 쥐약 3-(2-acetyl-1-phenylethyl)-4-hyroxycoumarin을 발견했을 때, 새로운 약물의 이름에 연구에 도움을 준 Wisconsin Alumni Research Foundation(WARF)재단의 이름을 넣겠다고 제안했다. 링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재단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그리고 나는 골수 위스콘신 맨이지요. 위스콘신을 나왔고, 여기서 모든 자격을 얻었죠. 모교를 위해 뭔가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1925년에 설립된 WARF는 위스콘신대학교(매디슨)의 특허를 담당해온 단체로 와파린 이외에도 여러 물질의 특허에 관여하였다. 물론 와파린의 특허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와파린(warfarin)이란 이름은 발견자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이 실려 있는 것이다.
왜 INR(International Normalizarion Ratio)을 사용하는가?
와파린을 사용하면 혈액이 응고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PT(prothrombin time)가 길어진다. 반대로 PT가 어느 정도 길어져 있나를 재어보면 약효가 어느 정도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임상적으로는 약물의 용량을 결정하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PT는 각 병원이나 실험실마다 다르므로 전세계적인 공통 수치인 INR 을 사용한다. 정상인의 INR은 1이다. 치료나 예방 목적으로 와파린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INR은 2~3.5 정도를 유지한다.
와파린의 사용상 주의사항
물론 출혈이 가장 큰 부작용이다. 이유없이 멍이 들기도 하고, 코피가 나기도, 대소변에 피가 섞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즉각 INR을 측정해 보아야 한다. 과량으로 복용한 경우에는 비타민 K를 10mg을 주사하거나, 신선냉동혈장(fresh frozern plasma;FFP)을 수혈하면 해독이 된다.
와파린을 복용 중인 환자들은 비타민 K가 많은 음식물을 피하는 것이 좋다. 와파린과 비타민 K는 서로 상극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들은 녹색 잎사귀 채소들로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그리고 카모마일 같은 허브차 등이 있다. 반대로 항생제나 항진균제도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어 주의한다.
자료 출처
Canada digital collection(http://collection.ic.gc.ca)
서울대 홈페이지; 스코필드박사 사이버 추모관(http;//schofield.snu.ac.kr)
주한 캐나다대사관 홈페이지
롤란트 의학사전, 위키페디아 온라인 사전, 네이버
조선일보, 연합뉴스, 동아일보, 아시아경제신문, 서을신문
*각주*
1 Penicillium nigricans, P jensi, Aspergillus
2 Coagulation factor Ⅱ, Ⅶ, Ⅸ, Ⅹ
3 현재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와파린의 용량은 하루
2.5~10mg이다.
4 중국 혁명 당시에 활동한 캐나다 의사로 중국에서
죽었다. 그를 기념한 노먼 베순 의과대학이 베이징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