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경영전략의 도입요령

2010-12-30 12:07:40




박 경 수
엘리오앤컴퍼니 시니어컨설턴트
kspark07@elio.co.kr


대학병원도 문을 닫는 시대

글로벌 경제위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는 하나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설상가상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의료정책, 고객의 정보력 증대, 교통발달로 인해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되고, 병원들은 지역을 불문한 무한경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증축, 분원설립으로 몸집을 불리고, 개원가는 전문병원을 중심으로 진료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전문병원 중에는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진료, 연구의 영역에서도 대학병원 이상의 성과를 내는 곳이 적지 않다.

급변하는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병원들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들은 도태되고 있다. 실제로 해마다 도산하는 병원의 1.5~2배가 신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도산율은 2000년 이후 줄곧 10% 내외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도산하는 병원들은 대부분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이지만 대학병원이라고 해서 이러한 경영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엘리오병원경영DB를 활용하여 2007년 기준 전국 33개 대학병원의 의료수익을 분석한 결과, 병상당 의료수익을 기준으로 S(3.0억원 이상), A(2.5~3.0억원), B(2.0~2.5억원), C(1.5~2.0억원), D(1.0~1.5억원) 등 5개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최하위 병원그룹(D그룹)의 평균 병상당 의료수익은 최상위 병원그룹(S그룹) 평균치의 37%에 불과할 정도로 대학병원 내에서도 편차가 매우 컸다. 이대로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면 D그룹 내에 있는 대학병원 중에는 머지않아 문을 닫는 병원이 나올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해답은 뻔한 결과를 초래

의사와 고객 모두 소위 ‘이름 난’ 병원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병원 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실력 있는 의사는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병원, 연구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병원을 선택하고, 고객은 실력 있는 의료진, 최첨단 의료기기, 최신 진료시설과 병동, 휴식공간을 모두 갖춘 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병원은 ‘규모도 작은데’, ‘대학병원도 아닌데’, ‘우수한 의료진을 영입하기도 어려운데’, ‘직원들 역량도 떨어지는데’, ‘교통이 안 좋아서’, ‘낙후된 지역에 위치해서’… 와 같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소위 잘나간다는 병원들을 보고 비전도 수립하고, 전문센터도 개설하고, 성과급도 도입하고, 직원 교육도 해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나아지질 않는다.

병원마다 규모, 브랜드, 진료역량, 위치 등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남의 전략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성공하는 전략은 밖에서 볼 때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병원의 특성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같은 전략도 타이밍을 놓치면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다른 병원이 이미 전략을 실행한 후에 우리가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짧은 글에서 전략수립에 대한 장황설을 풀어놓기 보다는 성공적 병원경영을 위한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1. 거꾸로 보는 눈
병원이 처한 상황에 맞는 전략을 도출하려면 먼저 병원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실제 설문조사를 해보면 우리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나 병원의 위상에 대해 구성원과 고객의 견해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오해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면 병원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실제로 병원에서 약점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는 강점으로 전환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발상의 전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5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중동에서의 건설공사 의향을 타진하기 위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불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너무 덥고, 물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답을 한 터 였다. 하지만 중동을 다녀온 정 회장은 오히려 그 곳은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쉬워 건설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답하였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되기 때문에 더운 날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같은 문제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약점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2. 변화를 위한 trigger
일반적으로 수개월에 걸쳐 전략을 수립한 후 실행을 위해 필요한 여건을 갖추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체계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계획에 따라 실행해 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구성원의 힘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는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조치가 우선 필요하다.

큰 얼음을 망치로 때려서는 잘 깨지지 않지만, 얼음에 바늘을 대고 망치로 때리면 잘 깨진다. 같은 힘이라도 닿는 면적이 좁을수록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행을 위한 위원회 구성, 시스템 구축 등 사전 준비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힘이 빠지고, 실행되는 것 없이 시간만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뿐인 비전이었다는 분위기로 흘러버리면 이후 실행을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든다.

아무리 탁월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도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실행해야 한다. 조직이 개편되면, 시스템이 구축되면, 리모델링 예산이 생기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결국 ‘탓’만 하게 된다. 조직 개편 전이라도 미리 담당자는 정할 수 있고,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예산이 없어도 가능한 시설개선은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원 평가 및 차등적 보상제도를 설계하였다면, “상위 1% 우수직원”은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이라도 추천방식 등을 통해 선정할 수 있다.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채로 전 직원 평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상위 1% 직원을 선별하는 작업은 시스템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를 통해 우수인력에 대한 예우를 갖추겠다는 시그널을 줌과 동시에, 평가제도의 도입 효과를 조기에 얻을 수 있다.

병원 경영진도 ‘개념적인 것’만 챙기려 하고 사소한 일에 대한 결정은 반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실행초기에는 작은 일을 챙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정보다 늦어지는 경우에도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전략점검회의는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3. 이종(異種) 벤치마킹
의료계에서 컨설팅을 하다보면 유독 다른 병원은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다른 병원도 안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또는 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다른 병원이 안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고 오히려 신속히 해야 한다.

성과가 탁월한 병원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상을 의료계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조직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가입에서 배송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미노피자를 벤치마킹했고, 시카고은행은 고객의 대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델타 항공사를 벤치마킹하였다. 이미 일반 기업들은 동종업계의 최고뿐만 아니라 이종업계의 최고를 찾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의료원 조직은 대기업 지주회사의 조직을, 병원 시설은 특급 호텔을, 접수·수납프로세스는 은행이나 증권사를, 병원 홈페이지는 포털 사이트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모 대학병원 회계감사를 수행할 때, 결산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재고물량과 금액이 장부상의 수치와 맞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기업의 잣대로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병원이니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오히려 병원이기 때문에 중요한 약품재고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지원금을 받는 기관이기 때문에 결산을 기업보다 철저하게 해야 하지는 않을까?

이제는 ‘병원이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은 그 차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외국 의료기관이 들어오고, 영리법인이 허용된 다음에는 이미 늦어버린다.
의료계는 이미 적자생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1억 6천만년 동안이나 지구를 주름잡던 공룡들도 한순간에 멸종해 버렸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는 병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박경수 kspark07@el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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