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위협하는 급여지연…“혈액암 특성 고려한 심의 必”

2025-03-28 06:00:35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 개최


대한혈액학회가 27일부터 29일까지 국제학술대회 ICKSH 2025를 서울 그랜드 워커힐에서 개최한 가운데, 2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혈액암 혁신신약의 급여 지연에 대한 문제와 전문인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혈액학회 임호영 학술이사는 신속허가된 신약들이 기존의 경직된 급여평가 기준으로 인해 실제 치료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호영 학술이사는 “혈액암 환자들은 치료 접근성이 더욱 제한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며 “치료에 불응하는 상황에서는 생존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효과적인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문제로 인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3상 임상시험을 통해 표준 치료와 직접 비교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며, 장기추적 데이터도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 개발된 혈액암 치료제들은 2상 시험만으로도 기존 치료제 대비 월등한 효과를 입증해 미국 FDA와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신속 승인된 상태다. 

임 학술이사는 “이미 2상 시험만으로도 기존 치료제 대비 월등한 성적을 보여 신속 허가를 받은 약들이 많다”며 “하지만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는 기존의 경직된 기준을 적용하면서 3상 임상시험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어 급여 등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신약들이 3상 임상시험 없이 바로 초기 치료 단계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급여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임 학술이사는 “혁신적인 신약들은 조기재발 환자나 새롭게 진단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과 같은 방식의 3상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급여평가 기준이 너무 경직돼 있어 신속 허가된 약조차 실제 치료에 적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암질환심의위원회의 구조적 문제도 급여 지연의 원인으로 꼽혔다. 임 학술이사는 “현재 암질환심의위원회에는 혈액암 전문의가 단 6명밖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반면 위암, 폐암, 대장암 등 고형암은 각각의 암종별로 5~6명의 위원이 배정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혈액암도 급성백혈병, 림프종, 다발골수종 등 다양한 질환으로 나뉘며 각각의 치료법이 다르다”며 “고형암과 마찬가지로 혈액암도 세부 질환별 전문가를 포함한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이사는 “현재 혈액암이 고형암 중심의 심의위원회에 포함돼있어 급여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며 “고형암과 혈액암의 치료적 특성을 반영해 별도의 혈액암 암질환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급여 지연으로 인해 환자들이 혁신적인 치료 기회를 잃지 않도록 규제 기관이 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혈액학회는 급여 제도 개선을 위해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하며 학문적·정책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의료인력 문제도 크게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혈액암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타 선진국 대비 국내 혈액학 의료진은 많이 부족한 편인데, 그나마도 수도권에 전문인력이 집중돼있다는 지적이다. 

김혜리 홍보이사는 혈액학 전문의들의 직무 환경과 만족도를 평가하기 위한 149명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김 홍보이사에 따르면 중증∙필수의료 분야에서도 혈액학은 특히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고 업무 환경도 열악하다. 원래부터 인력이 부족했지만, 최근 의료정책 변화로 인해 인력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김 홍보이사는 먼저 혈액내과 및 관련 분야 전문의의 현황을 설명하며 “현재 전국적으로 혈액내과 전문의가 약 160명이며, 소아 혈액종양 전문의는 74명 수준이다. 골수 검사 및 판독이 가능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80여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또한, “림프종을 전문적으로 진단하는 병리과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55명 정도로,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인력부족 문제는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김 홍보이사는 “영국에서는 인구 10만명당 혈액내과 전문의가 2.9명인데, 한국은 0.3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특히 수도권과 지방의 인력 불균형이 심각하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 전문의가 집중돼 있고, 지방에서는 절대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규인력 유입 감소 문제도 언급됐다. 김 홍보이사는 “혈액학 분야를 선택하는 신규 전문의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료진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혈액학 전문의들의 연령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60세 이상 의료진의 비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혈액학 분야 의료진들은 과중한 업무부담을 겪고 있다. 김 홍보이사는 “주당 근무 시간이 100시간을 초과하는 응답자가 17%, 80~100시간 근무하는 비율도 29.5%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월 7회 이상 야간 당직을 서는 비율이 16.1%이며, 당직 이후에도 80% 이상의 의료진이 연속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상당수 의료진이 48시간 이상 연속 근무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김 홍보이사에 따르면 과로로 인한 건강문제도 심각했다. 설문에 응답한 의료진 중 80% 이상이 피로, 불면증, 우울증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김 홍보이사는 ”의료소송의 부담도 크다. 응답자의 32.9%가 의료 소송을 경험했으며, 그중 37.5%는 3건 이상의 소송을 겪었다”면서 “전체 응답자의 78%가 의료 소송이 임상 진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고 강조했다.

직업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김 홍보이사는 “응답자의 29.5%가 직업에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매우 불만족스럽다는 응답도 3.4%에 달했다”며 “의료정책 변화로 인해 이직을 고려하는 비율은 74.5%, 5년 내 국내 혈액학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이 73.4%에 달했다”고 전했다.

인력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 홍보이사는 “정부가 의료진의 의견을 경청하고, 중증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혈액학 전문의 양성을 확대하고, 진료 인력 확충을 위한 차별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전문의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진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며, 근무 환경 개선과 휴식 보장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 수가개선, 지역 간 의료 인력 불균형 해소, 불합리한 삭감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개선이 이뤄져야 궁극적으로 환자 치료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영희 기자 nyh2152@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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