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없는 치료 반복케하는 급여기준에 의료현장 ‘혼란’

2024-11-18 06:00:34

대한혈액학회, 추계학술대회 개최 기념 기자간담회 개최
모호하거나 뒤쳐진 급여 기준 및 삭감 위험에 의료현장 삼중고 겪어



혈액종양질환과 관련해 모호하거나 뒤쳐진 급여 기준 및 삭감 위험 때문에 병원, 의사, 환자 모두 고통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혈액학회(이사장 김석진)가 15일 2024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이를 기념하는 기자간담회가 같은 날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학회 산하 14개 연구회 중 9개 연구회가 작년 국내 혈액질환의 주요 이슈를 다루는 교육 세션이 진행됐으며, 유관 학회와의 공동심포지엄도 개최돼 유전체 등 다양한 협력 세션이 준비됐다. 

특히 학회는 이번 학술대회에 혈액암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다루는 세션을 새로 추가했다. 

대한혈액학회 김석진 이사장은 “외국에서는 이미 신약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보험 문제나 도입 지연으로 환자들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약 등재와 허가·급여 과정을 논의하는 세션을 처음으로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해당 심포지엄에선 전북의대 임호영 교수가 임상 현장의 어려움을, 경희대 약학과 서혜선 교수가 비용효과성 평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부 김국희 부장이 평가기준과 등재과정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박희연 사무관이 향후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신약접근성 확보에 대한 필요성은 기자간담회 자리를 통해서도 강조했다.

대한혈액학회 임호영 학술이사는 “CAR-T 치료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급여가 가능해졌지만 그 기준이 애매모호해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언급하며 “국제 가이드라인에서는 마지막 치료 후 1년 이내 재발한 경우 CAR-T가 더 우월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국내에서는 ‘두 번째 재발’ 이후에만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두 번째~세 번째 치료 사이 병이 진행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게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임 학술이사는 “심평원에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때문에 병원도 삭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의료진도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혜리 홍보이사는 “1차치료가 실패한 상황에서 환자가 빠르게 병이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기준에 맞추기 위해 효과없는 치료를 반복해야 한다는 점은 불합리하다”며 “이중특이항체 치료제인 ‘블린사이토’의 경우, 소아암 환자에게 사용 시 생존율을 20% 이상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 적용 확대가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삭감은 혈액암뿐만 아니라 심장이나 고형암 치료에서도 유사한 문제로 나타난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치료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에 맞지 않아 진료비 삭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며, 병원과 의료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혈액 담당 의료진들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언급됐다. 김석진 이사장은 “현재 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혈액 담당 의사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는 모든 의사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라며 “교수님들과 전임의, 전공의 등이 돌아가며 치료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환자 입원이나 치료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 당직 등에 대한 어려움이 겹치며 과거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공의들도 혈액암 환자들이 위중한 상태로 왔다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져 퇴원하는 것을 보며 감동하고 뿌듯해한다. 하지만 이를 전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혜리 홍보이사는 “전국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50명 남짓 밖에 없다. 그나마도 현재 매년 4분의 1이 은퇴하고 있으며, 올해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임의는 3명뿐이다. 그러나 3명이 다 교수를 지망하고 있지는 않다”며 강원도에는 소아혈액전문의가 하나도 없어서 강원도의 환자가 서울까지 온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홍보이사는 소아혈액종양 분야는 한번 완치가 되면 완치율이 80% 정도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소위 BIG5 병원에서도 허덕이며 당직을 서고 있다”고 전했다. 김 홍보이사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전공의가 일부 복귀해 도움을 받고 있으나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봐서 나가면 남은 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또 잘 치료된 환자들이 대학을 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생로병사를 함께 한다는 데에 즐거움이 있다고 했지만 “혈액종양 분야는 혈액과 관련된 부분이라 1~2시간만에 환자가 변하는 ‘초응급’이다. 따라서 환자가 중증인데다 변화가 많고, 사망 건수도 많기 때문에 이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지역거점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호영 학술이사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임 학술이사는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은 완치율이 높지만 첫 진단 후 한달 이내에 조기사망률이 높은데 대부분의 원인이 뇌출혈”이라고 설명했다.

또 임 학술이사는 “병원에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뇌출혈이 있는 상태에서 도착하고 있다. 환자들이 병원(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환자들이 악화된 상태로 치료를 받게 돼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병원 내에서 여러 과가 협업하는 컨퍼런스나 논의가 줄어들면서, 다학제 진료가 아닌 개별 의사들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영희 기자 nyh2152@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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