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나나 싶었던 유달리 더웠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올해 초 시작된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은 아직 끝날 줄 모르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언제 끝나나 했던 올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것처럼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나게 마련이고, 비록 정부가 발표한 2,000명에는 부족할지언정 의대 증원이라는 큰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은 의대증원으로 인해 의료비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주장이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과 반대 방향의 논리도 가능하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의료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의료 수요 폭증에 맞춰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 또한 맞는 말이다.
의사가 늘어서 의료비가 증가할 수도 있고, 의료비와 의료 수요가 증가할 것이 뻔하니 의사를 늘리겠다는 주장 역시 맞는 말이다.
어떤 논리로든 의료비 증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퍼주고 있는 예산만 하더라도 향후 의료비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나는 의료비, 특히 노인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의료 수요의 증가를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이 될 것이냐는 점이며, 해답은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어느 정도 나와 있는 듯 보인다.
지난 9월 말 침술을 연구하고 배우는 해외의 의사들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ICMART라는 행사가 대한민국 제주에서 열렸다.
당시 많은 나라의 의사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현재 대한민국의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 그리고 그 원인이 된 의대정원 증가 역시 꽤 큰 화제거리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의사들은 하나같이 의대 정원 증가만으로는 부족하더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공의료에서의 의사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대생 시절 지역의료에 종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장학금을 주더라도 막상 졸업하고 필드에 나가게 되면, 그 장학금과 위약금 정도는 단숨에 갚고 보다 많은 돈을 벌러 떠난다는 이야기다. 의료비 증가 역시 수반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흔히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온, 지난 ICMART에 참여한 일본 의사들의 얘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일본에는 한의사제도가 없다. 대신 일본 의사들이 한약을 배우고 한약을 처방한다. 일본 의사들이 환자에게 쓰는 보험 한약만 200종이 넘는다. 일본 내과 의사의 상당수는 양약과 함께 한약을 함께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을 정도다.
왜 일본 의사들은 한약을 쓸까?
급증하는 노인 환자에게 여러 가지의 양약을 복용케 하는 것보다 한약 한 포를 복용하는 것이 환자에게나, 의료비 측면에서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상파 뉴스를 보다가 비슷한 보도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보도에서는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약을 180일 이상 장기처방하는 경우가 지난 5년 사이 200만 건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2023년 상반기 기준 1회 복용하는 약의 수가 무려 10가지가 넘는 장기복용 환자가 128만 8천 명에 달하며, 5년 사이 53% 증가했다고 밝혔다. 해당 보도에서는 한꺼번에 먹는 약이 19개나 되는 70대 환자의 사례도 소개됐다.
문제는 단순히 한 번에 먹는 약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구에 따르면 10개 이상의 약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각각의 약물 처방이 적절하더라도 환자 사망률이 37%까지 증가했고, 부적절한 약물이 섞이면 사망률은 무려 72%가 높아졌다.
이 정도면 치료를 위해 약을 복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바로 이 문제가 우리보다 일본이 앞서 겪은 문제다. 그리고 그 일본 의사들, 일본 정부가 찾은 해답이 한약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일본에서 경도인지장애 환자나 치매 환자가 왔을 때 첫 번째 고려하는 약은 ‘억간산’이라는 한약이다. 물론 이 약이 치매를 치료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치매환자의 행동심리증상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상생활 능력도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현재 없다. 현재로서는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아낄 수 있어도 그 약은 충분히 효용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미 일본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약을 활용하고 있다.
10가지 이상의 약물을 장기투여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양약은 단일 성분에 따른 단일 효과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한약은 복합성분에 따른 복합효과에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즉 10가지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한약을 투여하면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을 5가지 이하로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한의계의 주장만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국가차원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한약을 통해 치매 환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만 있어도 수천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추진하기에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약을 통해 다종의 약물을 처방받는 환자를 줄이고, 약의 가지수를 절반으로만 줄일 수 있어도 폭발하는 노인 환자의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역시 국가 차원의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의대정원 증가는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직 의대정원이 핵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늘어나는 의사 수요, 그리고 지금 당장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서 의료공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더욱 폭증할 의료비 증가를 어떻게 줄이는지가 결국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점이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보다 미리 이 문제를 겪은 일본의 사례 속에서, 우리는 한의약의 가치를 다시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