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공중보건의사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 아직 늦지 않았다.

2024-11-06 05:50:53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이성환 회장

  정부의 독단적인 의대 증원 발표 이후 8개월이 넘어가는 지금도 의대생의 학업 정상화와 전공의 복귀는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다. 그 가운데 지역의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제도의 기반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으며, 서서히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1200여명의 공중보건의사들은 섬과 교정시설,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의 격오지에서 청춘을 바쳐 의무를 다하며 헌신하고 있다. 의대증원을 1만명을 하든, 10만명을 하든 누구도 선뜻 자원하지 않을 도서지역에서 공중보건의사가 근무하는 이유는, 국가가 가장 직접적으로 배치 지역과 기관을 정할 수 있는 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료공백을 해결하겠다고 자처하는 정부가 사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어야만 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열악한 처우와 절규에 침묵했고, 사실상 의료공백을 자초해내었다. 2020년 750명에 달했던 의과 공중보건의사 배출 인원은 2024년 255명으로 66% 수직으로 감소하였고, 그 사이 현역으로 입대한 의대생은 2020년 150명에서 2024년 8월 기준 1052명으로 7배 늘었다. 더 나아가, 복학시점에 맞추어 9월과 10월에도 입영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지역의료체계와 군의료체계가 모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본질적인 이유는 징벌적 수준의 복무기간이다. 현재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은 36개월에 훈련소 기간 3주조차도 산입되지 않아 도합 37개월을 근무해야 한다. 이에 반해, 현역병의 근무 기간은 18개월로 크게 개선된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는 다해야겠지만, 그 누구도 현역병의 배가 넘는 징벌적 수준의 근무를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이미 공중보건의사를 포함하여 ROTC, 공익법무관 등 장교 직역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나, 국가의 해결 의지는 미약해보인다. 

  악화되어 가고 있던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비선호에 불을 붙인 것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공중보건의사 파견과 사전 협의와 통보조차 없었던 지침 개정이다. 정부는 파견 초기 ‘병원이 재량껏 보호해줄 것이다’라는 불분명한 말 한 마디로 지역의료를 지키고 있던 공중보건의사들을 대학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파견 근로자로 내보냈다. 게다가 파견의 장기화를 이미 계획하고 있었는지 지침 상에서 1회에 한하여 연장이 가능했던 의료기관 파견을 그 어떤 협의와 사전 통보조차 없이 횟수 제한 없이 6개월 내에 연장 가능하다고 바꾸게 된다. 정부는 공중보건의사의 신분상 약점을 십분 활용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파견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다면, 과정 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의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중보건의사 파견 정책은 대학병원의 환자에게도, 도서지역의 환자에게도, 병원에게도, 그리고 공중보건의사 본인에게도 실패한 정책이었다. 응급과 중증 환자들을 ‘팀 단위’로 치료하던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법적 문제가 걸려있는 파견 공중보건의사의 활용은 미봉책이었고, 도서지역의 환자들은 보건소와 보건지소를 지키고 있던 의사를 갑작스럽게 잃게 되었다. 모두가 피해자인 상태로, 의사의 학습과 수련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머릿수를 채웠다’며 언론에 속보를 띄운 정부만이 남았다.

  ‘양’이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양, 즉 ‘머릿수’가 문제였다면, 공중보건의사를 대학병원으로 파견 보냈을 때 모두가 박수 보낼 선택이었어야 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정부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를 보자. 의대 증원 전 2015년 소아과는 전국 정원 대비 경쟁률이 116%로, 2021년 응급의학과는 전국 정원 대비 경쟁률이 102%로 인기과였다. 공중보건의사도 불과 2년 전 512명으로, 지금 대비 2배 많았다. 지금 소아과 지원율은 왜 26%까지 떨어졌는가, 응급의학과 지원율은 85%까지 떨어졌는가, 공중보건의사는 왜 불과 2년 만에 반토막이 났는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양’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처우와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공중보건의사를 지켜 지역의료를 지킬 방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즉각적인 군 복무 단축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에서 지난 7월 31일까지 의대생 2,46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37개월로 현행 복무기간이 유지되었을 때 공중보건의사 복무를 희망하는 비율은 8.1%에 불과하였다. 거꾸로, 24개월로 단축되었을 때 복무를 희망하는 비율은 94.7%에 달했다. 복무기간이 1년 줄어 발생할 인력 공백을 더욱 충분한 숫자의 공중보건의사로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비율이다.

  또한, 훈련소 불산입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대공협에서는 복무기간에 훈련기간이 불산입되는 사례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한 바 있고, 2020년 헌법재판소에서는 ‘의료공백’을 위험으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발발한 코로나19 위기 상황과 2024년 의료대란 상황에서 공보의가 다수 파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백을 ‘순회 진료’로 메꿀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훈련소를 일시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선 배치 후 훈련소’를 통해 순환하여 훈련을 받으면 훈련기간의 산입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배치 타당성의 강화를 통한 지역의료 비효율성 개선이다. 대공협이 올해 10월 전국 지역보건의료기관 주소록을 통해 전수조사한 결과, 1,341개의 보건소/보건지소 중 반경 1km 이내 의원이 1개 이상 있는 경우가 581건으로 43.3%에 달했으며, 반경 4km 이내 의원 2개 이상인 경우가 779건, 반경 4km 이내 의원 1개 이상 901건으로 67.2%에 달하였다. 

  또한, 대공협이 320명의 공중보건의사를 대상으로 속해 있는 지역보건의료기관과 주변 민간의료기관과의 관계 점수를 측정한 결과(1-10 scale, 1:협력 - 10:경쟁 관계) 6점 이상으로 응답한 수가 30%에 달하여 보건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 사이의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자신의 배치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185명(57.8%)로 나타났으며, 배치 타당성을 저해시키는 요인에 대한 복수 응답 조사 결과 민간의료기관과의 기능 중복’(52.8%)이 주 요인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불필요한 지소를 폐소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순회 진료로 유지하면서 무의촌에 있는 보건지소의 진료 일수가 감소하여 의료공백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주변에 의료기관이 있는 보건지소와 그렇지 못한 보건지소가 거의 동등한 가중치로 평가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중앙정부에서 일괄적인 가이드라인으로 바로잡고, 과감하게 보건지소 폐소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대신, 이송체계를 강화하자. 이송체계 강화는 도서지역의 1차 진료 도달 편의성뿐만 아니라, 응급 상황에 2차병원 이상의 기관에 골든타임 도달률 향상과 경제적 취약계층과 노령층에 대한 ‘이동권’ 보장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에서는 지역보건의료기관의 운전직 채용 확대와 지자체 바우처 운영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중앙정부가 공중보건의사 처우 개선을 지자체에 미루지 않는 것이다. 처우 개선의 핵심은 의사로서의 커리어 지속과 보수이다. 커리어 측면에서는 2년으로 단축된 기간 중 1년을 보건소/보건지소에서, 그리고 1년을 보건의료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수련기간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자.

  공중보건의사의 보수는 크게 기본급과 진료장려금이라는 2가지 축을 나뉘게 된다. 이때, 기본급은 중앙정부에서 지급하며, 진료장려금은 지자체에서 지급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진료장려금이 전체 봉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그러나 공중보건의사가 근무하게 되는 지자체는 보통 군 단위거나 영세한 지자체인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처우 개선의 핵심이 진료장려금은 매번 최저한도에서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대공협은 보건복지부 간담회에서 처우 개선을 통한 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매번 이야기하였으나, 군의관과의 형평성, 지자체의 재량권 등 변명으로 일관하며 현재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의대를 아무리 증원해도 지원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가장 낙후된 격오지와 섬, 그리고 열악한 의료환경은 지금껏 공중보건의사가 헌신하며 지켜왔다. 그리고 정부가 당장 바뀌지 않으면, 공중보건의사의 존속은 불가능하며 진정한 의료공백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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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환 medifonews@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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