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 개혁, 바로 지금 필요합니다

2024-05-14 17:21:23

의과대학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이 교육과 의료 현장을 떠난 지 이제 석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빈 자리를 마주한 우리는 그간 외면해 왔던 우리나라 의료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미래의료의 주역인 전공의들의 젊음과 열정에 기대어 그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당연히 여겨 온 상급종합병원과 감당할 수 없는 법적 소송 부담과 미흡한 비용 보상으로 무너져버린 필수의료.

커져만 가는 수도권과 지역 의료 사이의 불균형과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는 과도한 의료 이용. 

지금도 대한민국의 보건의료비는 국방비의 3배가 넘어 이미 OECD 평균을 넘었고, 이런 의료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국민과 환자 모두가 원하는 의료체계의 모습일까요? 

10년~15년 후를 위한 의대 정원 증원이 이미 우리 앞에 닥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의대 정원 증원과 교육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난 2주간의 ‘국민과 환자가 원하는 의료서비스의 모습 시민공모’에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들을 읽으며 저희 다시 한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동안의 과도한 의료 이용은 의료진이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며, 환자분들이 가짜뉴스에 현혹되고 인터넷 카페에 의존하는 것은 진료실에서 의사의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손보험과 맞물려 의료비용이 폭증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데에만 급급해 정작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한 교육과 질병 예방에는 소홀하였습니다.

눈앞의 환자가 좋아지면 행복해하고 나빠지면 내가 뭘 놓쳤나 괴로워하며 고민하는 동안, 동료 선후배들과 의학의 발전을 논하는 동안에, 우리의 의료는 국민과 환자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또한 저희의 책임이었음을 통감합니다. 너무 늦게 깨닫고 이제야 나서게 되어 송구합니다.

저희는 오늘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말합니다. 

우리가 국민과 환자분들이 함께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위한 의료 개혁은 바로 지금 필요합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최선의 진료를 의사가 두려움 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검증된 치료를 비롯해 건강과 질병에 대한 교육과 상담만으로도 의료기관의 운영이 가능해야 하며, 건강보험재정은 꼭 필요한 진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충분히 지원돼야 합니다. 

환자가 의료정보와 의사, 의료기관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충분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기관 간의 의뢰와 이송·회송시스템을 보완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료개혁을 위한 국민과 의료계와 정부의 협의체는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며,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상설기구로 설립되어 정권이나 공무원의 임기에 좌우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협의체의 논의 결과는 정책 수립과 집행에 반영돼야 하며,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이 함께 명시돼야 합니다.

의료계에도 요청합니다. 의료계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춥시다. 

최신 의학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무엇보다 근거를 중시하는 의료를 행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환자의 편에 서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진정한 전문가가 됩시다. 

국민을 위한 더 나은 의료 시스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 의료사태로 인한 환자분들의 불안과 절망의 한숨이, 돌아갈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달라 호소하는 전공의들의 눈물이 우리 어깨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정부에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미래 의료의 주역인 전공의와 학생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전공의와 의료계에게 가해진 부당한 명령과 처벌을 거두어 주십시오. 

전문의 중심병원 경영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 가능하도록 지금 현장에 재정을 투입해 주십시오.

우리의 젊은이들이 다시 교육과 수련을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저희 교수들은
힘 닿는 한 환자 곁을 지키겠습니다.

이제부터 저희는 오늘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우리가 원하는 의료, 의료소비자와 의료진
모두가 바라는 의료체계’를 목표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많은 질책과 응원을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medifonews@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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