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벼랑 끝에 서있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마련한 ‘4대 개혁 패키지’를 발표했다.
해당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수급 추계에 따른 주기적 정원 조정시스템 구축, 수련·면허체계 개선, 전공의 36시간 연속근무 축소, 병원의 전문의 중심 운영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국립대병원 집중 육성과 지역의료 혁신시범사업,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 맞춤형 지역수가 확대와 지역의료 발전기금 신설 등을 추진한다.
이외에도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적용과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강화, 공공정책수가와 대안적 지불제도 확대, 비급여는 병행되는 급여 진료의 건강보험 청구 금지하는 방안들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 모두 이번 ‘4대 개혁 패키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먼저 바른의료연구소는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기적인 인력 수급 추계 및 의대 정원 조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와 관련해 대한민국에서 한 번 늘어난 의대정원을 다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대교육과 수련의 내실화 추진에 대해서도 어떻게 교육의 상향 평준화와 진로의 다변화를 모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점과 이외에도 이전부터 항상 언급돼 왔던 원론적인 대책만 나열돼 있어 사실상 교육 부실화 방지 대책이 부재하다고 혹평했다.
인력 운영 혁신 대책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불법 PA인력을 합법화시켜 전공의 및 의사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임상 수련과 연계한 개원면허의 단계적 도입과 진료 적합성 검증체계 구축방안에 대해서는 개원시장을 통제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쉽게 개원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를 천명한 것이라며,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유 재산을 부당하게 통제하는 위헌적 발상 그 자체라고 질타했다.
지역의료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기존 대책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국립대병원 중심의 권역 필수의료 완결 대책과 네트워크 강화 등은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필수의료 분야에 수가 가산과 진료권별 차등 지급도 재원 조달부터 선정 결과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으로 실효성이 없음이 지적됐음에 불구하고 여전히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제시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별 종별 기준을 기능 중심 전환을 통해 종별 가산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요구하는 정책방향에 제대로 따르지 않거나 여러 평가 결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가산 수가를 낮추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는 의료의 자율성을 말살시켜 획일적인 관치의료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것과 같으며, 쿠바식 사회주의 의료와 닮아 재앙적 의료 현실이 펼쳐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지역인재 확보 대책과 관련해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아무리 지역 출신 의사의 선발 비중을 높여도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을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지방에 의사를 늘려도 의사들이 지방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지역필수의사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추진할 때에 보건복지부는 반대의견을 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추진하고 있음을 꼬집으며, 정부의 파렴치하고 표리부동한 모습 그 자체라고 혹평했다.
이외에도 대책 추진에 필요한 재정 계획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못하고 있는 것인지 재정당국과 협의해야 함을 명시해 놓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정책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재정추계와 재정 확보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고 일단 발표부터 하고 보는 행태에 불과하다며,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정책 추진이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대책에 대해서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해 정부가 의료기관에 업무를 강제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시킨 일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고, 개인이 보험 및 공제에 기반한 배상 부담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명백히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분노했다.
더불어 필수의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형을 감면하는 방안은 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해준다는 의미로, 죄 자체는 인정이 된다는 것은 그대로인 점을 지적하면서 법적 처벌의 위험 부담을 안고 의사들이 필수의료 현장으로 복귀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진의 법적 부담 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없음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혼합진료 금지 방안은 저수가 체계에서 버텨왔던 1·2차 의료기관들을 연쇄 도산시켜 인프라를 붕괴시키는 방안이 될 것이며, 미용의료 자격제 추진은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 국민 개개인이 사보험과 맺은 사적 계약을 통제하는 실손보험 제도 개선을 통한 비급여 통제 강화와 함께 위헌적인 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또한 이번 정책 패키지에 대해 개원가를 비롯한 의료환경을 황폐화시켜 의사들을 반강제적으로 고위험 고난이도 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 넣으려는 단군 이래 최악의 보건의료 망책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단체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와 무상의료운동본부도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폐기해야 하는 실패한 정책 재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가난한이들의건강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대전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공공운수노조의료연대본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행동하는의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민중과 함께하는 한의계 진료모임 길벗,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 등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내놓은 ‘지역필수의사제’는 오직 의대생의 선택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미 실패한 바 있는 ‘공중보건장학제도’의 재탕이며, 정부가 내놓은 지역인재전형도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는데다 선발된 학생들의 지역 이탈 현상을 막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꼬집었다.
따라서 국공립대병원에서 장학금으로 양성해서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충분한 기간 의무적으로 일하는 방식의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역·필수의료와 관련해서는 지방의료원 같은 공공의료기관 확충‧강화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때 봤듯이 필수 진료역할을 제대로 하는 건 극히 적은 수의 공공병원 뿐이었음을 강조하며, 환자와 시민들의 필요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는 공공병원을 충분히 늘리지 않고서 지역의 의료붕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코로나19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지방의료원들을 위한 예산은 대폭 삭감하는 등 공공병원 고사시키기에 나서고 있다고 질타했다.
국립대병원에 대해서도 영리자회사 설립 등 돈벌이를 강요하거나 기부금품에 의존하라고 하면서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하며, 정부의 행동은 공공의료를 약화시키면서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모순적이고 기만에 가까운 행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수가를 늘리는 정책 역시 실패한 정책 재탕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수가를 올려줘도 민간병원들은 수익만 높일 뿐 실제로 필수의료에 더 투자하거나 인력을 늘리지 않아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보상을 늘려줘도 비급여가 많고 행위량을 늘려 과잉진료를 할 수 있는 진료과목만큼 돈벌이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가 인상은 환자의 의료비와 건강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정책이라면서 시장실패로 인한 문제를 시장가격을 높여서 해결하겠다는 방식은 성공할 수도 없고 환자의 의료비용 부담 증가라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