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2006년, 2007년)
<뱀주인 자리>를 아세요?
올해 초에 파크 쿤클이라는 미국의 천문학자가 황도대(zodiac) 12궁 별자리 외에 <뱀주인 자리>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지구의 자전축이 변하여 3,0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정한 황도 12궁 별자리는 지금과 맞지 않다며, 태양이 11월 29일~12월 16일 사이에 황도대를 통과할 때의 별자리인 <뱀주인 자리>를 황도궁에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어머 재수 없어요, 13이란 숫자도 그렇고 징그러운 뱀도 그렇고…”
정말이다. 그렇지만 재수 없고 징그럽기만 한 것인지 어디 한번 알아볼까?
사실 <뱀주인 자리>는 뱀탕집 주인이나 땅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별자리다. 의술의 신이 뱀과 연관이 되고 아스클레피오스가 하필이면 <뱀주인 자리>가 된 이유는 그리스신화에 잘 나와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과 인간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질투로 태중에서 모친을 잃고 아폴론의 손에서 자라나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그리스 곳곳을 다니며 의술을 베풀어 유명해지지만, 늘 자신이 치료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아폴론 신이 치료한 것이라 말하는 겸손한 의사이자, 아들이었다.
어느 날 그가 방금 죽은 사람의 시신 곁에 있을 때, 그쪽으로 기어오는 뱀을 보고 놀라서 엉겁결에 뱀을 지팡이로 쳐서 죽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죽은 뱀 곁으로 다른 뱀이 풀잎을 물고 와서 죽은 뱀을 소생시키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즉시 뱀이 구해온 신비한 풀을 구해 죽은 사람에게 먹여 생명을 구하였다. 이것으로 의사로서 명성이 더 커졌고, 자신은 지팡이에 뱀을 새겨 고마움을 기억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이다.
여기까지는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저승 문을 입장했던 사람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살아서 그냥 지상으로 나가버리자 저승의 신 하데스(Hades)가 노발대발하였다. 자신의 아우이자 최고 신 제우스(Zeus)에게 달려가 어찌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경우가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것은 사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건이었다. 여신 데메테르(Demeter)도 자신의 딸을 외출시키기 위해 하데스에게 애걸복걸을 했고, 오르페우스(Orfeus)도 죽은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그런데 아스클레피오스는 하데스에게 애원은 커녕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데리고 나가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도발을 한 것이다. 하데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 제우스는 감히 신의 영역을 범한 인간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생각으로 번개를 내리꽂아 아폴론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를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후로 사람들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누구든지 신을 대신해 생명을 창조하거나 혹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신의 벌을 받게된다는 것이 서양인들의 보편적인 믿음이 된 것 같다.
널리 알려진 의사 프랑켄슈타인(Doctor Frankenstein)의 이야기를 보아도 그렇다. 그의 비참한 종말은 결국 죽은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살려냈기 때문에 받은 천벌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를 신봉해온 서양인들은 기독교 정신인 헤브라이즘(Hebraism)과 그리스 정신인 헬레니즘(Hellenism)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예술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같이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이해가 잘 안된다. 하지만 이렇게 아스클레피오스의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의 급사를 슬퍼한 아폴론이 아버지에게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후계자 1순위인 아폴론이 밉기는 해도 대놓고 내치기도 어려워 못 이기는 척, 죽은 아스클레피오스를 하늘에 올린 후 ‘의술의 신’으로 추대하여 별자리로 만들었다. 바로 <뱀주인 자리(Ophiuchus=Serpentarius)>이다.
<뱀주인 자리>를 자세히 보면 마치 ‘뱀 쇼’를 하는 사람의 형상이다. 굳이 아스클레피오스라고 하지 않고 뱀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저의가 있어서 일까? 하여간 이 별자리의 형태만으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기란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뱀주인이 어째 히포크라테스를 닮은 것 같지 않나?
종종 <뱀주인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기호도 사용하는데,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표시한다.
눈에 좀 익지 않나? 잘 모르겠다면 그럼 이건 어떤가?
이것은 미국의 국립 고속도로 교통안전공단(U.S. 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NHTSA)에서 사용하는 엠블렘이다. 전 세계에는 이것과 비슷한 엠블렘이 응급 구호와 관련된 단체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나라마다 단체마다 모양이나 색상의 변형이 있지만 막대기 여섯 개가 교차하여 육각형의 별표(쪺) 모양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뱀이 감긴 지팡이가 있는 것이 엠블렘의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인명을 구하는 별이라는 의미로 생명의 별(Star of Life)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엠블렘을 사용하고 있다.
이 육각의 별에 있는 6개의 꼭짓점은 빨리 발견하여(early detection), 빨리 알리고(early reporting), 즉각 대응하고(early response), 현장에서 구호하고(on scene care), 후송 중에도 돌보고(care in transit) 그리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곳으로 후송한다(transfer to definitive care)는 응급 구조의 6개 핵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뱀이 감고 올라가는 지팡이는 물론, 이제는 잘 알 것이다.
자, <뱀주인 자리> 이야기를 하다가 의학의 신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응급 구조의 상징까지 와버렸다. 이렇게 신화는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제 내용을 알고 보니 그렇게 징그러워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뱀주인 자리>가 열세 번째 황도궁이 되고 이런 숨은 사연이 널리 알려진다면…. 혹시 아이를 의사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 11월 29일에서 12월 16일 사이에 집중 출산할지, 그런 일은 물론 없겠지만….
[출처]디아트리트 VOL.11, N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