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과 ‘응급의학과’ 선택 이유와 응급의료 ‘전망’ ①

2024-12-05 05:50:57

김찬규 응급의학과 의사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10대 남성이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 탄 채로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응급실 뺑뺑이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잇따르는 응급실 관련 판결과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우선 정책 등 응급실 의사들에게는 악재인 환경 변화가 잇따르면서 응급의학과에 대한 기피 현상이 극심해질 뿐 나아지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응급의학과에 대한 기피가 큰 상황에서도 응급의학과를 굳이 선택하고, 남들이 꺼려하는 지방병원에서의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의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현재 전북 정읍아산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찬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남들이 기피하는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고, 응급의학과 전공의 출신으로써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에 대해 젊은 의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필수의료과 기피가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신 이유·계기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A. 학창시절부터 입시까지 제가 가졌던 의사에 대한 이미지는 ‘눈 앞의 당장의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본과 3학년 때까지는 정신건강의학과에 흥미가 있어 2달간 폐쇄병동 실습을 하기도 했었지만, 당장 눈 앞의 급성기 증상을 조절해주는 응급의학과에 조금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응급실 참관 중 외상환자가 119 구급대원과 함께 도착했을 때, 의사/간호사/응급구조사 등 같은 응급실팀이 동시에 달려들어 각자의 일을 순식간에 해내고 환자가 안정을 찾았던 것을봤는데, 제가 상상하던 의사상과 닿아있다고 느껴서 본과 3학년 때부터 공공연히 응급의학과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2018년 면허를 따던 당시에도 응급의학과는 3D(더럽고,어렵고,위험한일) 업종이라는 이야기와 밤낮이 바뀌는 삶은 극복해내기 쉽지않아 하나의 기피과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신경쓰이진 않았습니다.

인턴을 시작할 무렵 부모님이 다시 한 번 만류할 때에 “엄마, 내가 만약 두번 산다면 이번 생은 편안함을 좇겠지만, 한번 사는거니까 하고 싶은 거 할래”라고 대답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Q. 응급의학과에 대해 배울수록 느껴지는 매력이나 장점 등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A.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는 건 마치 퀴즈를 푸는 것 같습니다. 환자가 응급실을 찾을 때는 ‘어지러워요’ ,’배가 아파요’, ‘다쳤어요’ 처럼 본인이 가장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면서 불안해 하는데, 이때 ‘왜 불편한지’ 이유를 찾아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가장 첫 번째 힌트는 환자의 병력과 과거력, 증상 등이 있으며, 두 번째 힌트는 신체검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검사를 해서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줍니다.

제가 답안지를 제출하면 환자는 답안지를 보며 안심하는 게 보이는데, 그게 매력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응급실 단계에서는 제 답안지가 틀리는 경우도 꽤나 있기 때문에, 제가 진료봤던 환자는 몇 개월 전이더라도 항상 진료기록을 확인합니다.

1년차 때는 매일 보는 환자를 정말 다 추적 관찰했는데, 매일 퇴근 후에 병원 컴퓨터로 2시간이상씩 걸렸던 것 같고, 제가 제출한 답안지가 틀렸거나 환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왜 그랬는지 오답 노트도 썼는데, 지금보니 오답노트만 100p 가량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점차 조금 더 적절한 설명을 해가는 저를 볼 때마다 뿌듯했던 것 같고, 이게 가장 큰 매력처럼 느껴졌습니다.

응급의학과의 큰 장점도 있습니다.  퇴근하고 응급실을 인계하고 나면 오롯이 저만의 개인시간이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MBTI도 ENFP인 활동적인 사람이고, 병원 밖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시간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보람입니다. 사람들이 응급실에 올 때는 항상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찾아옵니다. 물론 제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문제도 많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말 드라마틱하게 해결되기도 해서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Q.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고, 전공의 수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낀 점 등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A. 밤을 새고 주취자에  시달리는 일상은 각오했던 바지만, 제 자신을 굉장히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환자만을 생각하고 있는 힘껏 진정성을 내보여도 그게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할 기회를 얻기 위해 보호자들에게 사정하거나 필요한 서류를 위해 교도소에 전화면담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환자 이송을 위해 러시아 대사관을 통해 친족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도망친 환자를 쫓기 위해 병원 근처를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응급실 의사는 필연적으로 환자 개인의 삶과 걸어온 길까지 알게됩니다.  단순히 직역의 일만 수행하던 의사에서 환자들 삶의 일부분에 관여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제가 추구하는 정직과 올바름이 환자 및 보호자가 원하는 것과 다를 때 그것을 합치시켜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길 원치 않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삶에 이렇게 깊이 관여해도 될까 생각하기도 하고, 구하지 못한 환자를 위해 몰래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든 진료과목 의사들이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조금 다른데, 병원을 처음 방문한 시점에서 환자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거나 때로는 선택을 강권하기도 합니다. 이렇다 할 사회 경험도 없는 20대 중반 젊은이가 해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자주 느꼈습니다.


Q. 최근 워라벨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의사 한 사람으로써 느끼기에는 워라벨이나 근무여건 등은 어떠한가요?

A. 워라밸과 근무여건은 사람들마다 느끼는게 굉장히 다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만, 취미생활이나 다른 단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밤샘 근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체력 회복과 건강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있어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무여건도 병원마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응급실 근무여건을 생각하면 휴게시설이나 급여 등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제가 느끼는 가장 중요한 여건은 응급실 의료진들과의 관계입니다. 협력적이고 친근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병원시설과 크게 관계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할 것 같습니다.

Q.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시지는 않으신가요? 후회하지 않는다면 어떤 점에서 후회하지 않으신가요?

A.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서울에 갈 수 있었지만, 지역에 남아 응급실을 지키는 것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불합리한 사법부의 판결들을 보면 더욱 위험해지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응급의학과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두 번 사는 것은 아니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후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길을 선택할껄’하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초등학생 때, 슈바이쳐 위인전을 읽으며, 눈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저는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다른 것을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작금의 갈등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원칙이 없는 사법부 판결을 보면 회의감이 강하게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장난 게 있다면 고쳐서 잘 쓰고 싶지, 새로 사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도 고장난 게 있다면 고쳐서 쓰고 싶지, 고장나지 않은 자리로 옮기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뉴스 보도에서 연일 다루는 응급실의 현실은 모두 동일하게 겪을텐데, 그 좌절과 회의감은 아마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겐 후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응급의학과 의사·전공의를 하면서 느낀점을 토대로 응급의학과 후배들이 많아지려면 어떤 점이 바뀌었으면 하시나요?

A.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송 위험이 해결돼야 합니다.  응급실 의사를 가장 위축시키는 건 소송 위험성입니다.  수련 1년차 시절, 윗년차 선배에게 가장 혼났을 때가 ‘우리 응급실에 받으면 안 되는 환자를 받았을 때’입니다.

물론 다른 병원에서 더 적절하게 처치받을 수 있는 환자를 우리가 수용하면 환자에게 불편을 겪게하는 일이기에 적절한 지적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의사들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이게 만드는 것은 소송 위험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환자 얼굴을 보고 진료를 시작하는 순간 책임 소재가 발생하고, 그 환자에게 의도치 않은 부정적인 결과가 생기면 법원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인과관계를 만들고 잘못을 인정하게끔 강요하는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가 될 것 같은 환자는 아예 피하게 되는 겁니다.
응급실 의사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모든 걸 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내지 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은 “더 주의깊게 노력해야겠다”라는 적절한 자극의 정도가 아니라 회피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고, 그런 환경 때문에 의대생들도 응급의학과 진로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Q. 응급의학과 의사 한 사람으로써 향후 미래에 대해 어떤 방향을 계획·고민하고 계시나요?

A. 미래에 대한 방향을 생각하면 혼란스럽습니다.  친구들과도 여러번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모두들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지속성과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정부가 더 통제하지 못해 발생한 시장 실패로 보지만, 저는 완벽히 정부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의료 패키지처럼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시장의 왜곡을 더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의료제도 자체가 더 큰 위기를 맞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변화가 생길 것은 확실하지만, 변화에 맞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너무나 불투명합니다.

사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의료개혁의 명분을 보면 다른 것들을 희생하더라도 ▲지역의료 ▲필수의료 ▲응급의료 3가지 키워드만큼은 챙기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응급실입니다.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실에서 버티지 못한다면 ‘내가 환자를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지?’ 부터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장기 목표를 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요즘에는 그냥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오늘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저의 노후에는 지금과 같은 의료제도는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비젼은 다들 비슷하겠지만,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다양합니다. 동료 응급의학과 의사 몇 명은 미국 USMLE를 준비하고 있고, 한 친구는 응급실 근무를 포기하고 프로그래밍 캠프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학원강사를 하더니 적성에 맞다며, 인강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의사 면허가 있고, 의료제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해보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지역에서 응급실 근무를 하고 있지만, 다른 특기를 준비하는 동안 유지하는 것뿐이지, 정부 관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평생을 지역의료에 헌신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겁니다.

전공의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얻은 것이 하나있다면, 메타인지라고 생각합니다.  매몰된 삶 속에서 눈 앞의 환자만 좇으며 살다가, 더 큰 세상에서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게 되고, 제가 가고있는 방향에 대해 다시 점검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2022년에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의들이 배워야 할 항목 중 우선도가 가장 낮았던 항목이 바로 ‘의료제도의 이해’입니다.  아마 전공의 생활하는 동안에는 임상 역량에 집중해야 하니 의료제도의 이해는 조금 미뤄두어도 됐던 숙제였겠지만, 이제는 소위 ‘빨간약’을 먹어버려 큰 숲속의 한 그루 나무에 불과했던 우리가 숲을 둘러볼 만큼 키가 큰 나무가 되기 전에 숲을 떠남으로서 숲의 모습을 관망하게 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세상을 이해한 만큼, 이전과 같은 일을 같은 마음으로 하는 건 불가능해진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민준 기자 kmj6339@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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