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보건부와 사회부를 합쳐서 보건사회부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보건행정은 1994년 보건복지부,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를 거쳐서 2010년 보건복지부로 재변경 되었다. 현재는 4실 6국 86과(보건복지부 홈페이지 2022년 기준)로 중대형 행정부처로 성장하였으나 국가서열로 따지면 보건복지부장관의 자리는 환경부, 고용노동부 장관보다는 높지만 문화체육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보다는 낮은 28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의사협회 대선정책단에서는 보건부와 복지부의 분리를 주장 했었고 당시 정치권과 윤석열 당시 후보 대선캠프에서도 이에 대한 긍정적인 고민을 일부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위가 큰 복지분야에 비하면 보건분야의 예산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황으로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복지분야에 매번 순위가 밀리는 보건분야의 행정지원이 언제나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뤄지지 못했고, 정권 초기 의사출신의 보건복지부 장관 선임의 불발과 함께 의료계 입장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다.
지금 정부의 모습을 보면 의료개혁과 의사증원이 마치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만한 중대한 사항이며 임박한 위협인 것처럼 애타게 매달리고 있지만 최소한 현 대통령의 후보시절이나 집권초기에는 그렇지는 않았었다. 대선공약집에는 의대증원이나 의료개혁이라는 부분은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었고, 120개 국정과제 중에는 이전부터 여러 번 반복되었던 필수·공공의료 인력·인프라 강화를 통해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이라는 추상적인 설명 이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개혁이라는 3대 개혁과제를 언급하며 노동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이후, 정부가 행정부처들과 검찰을 동원하여 이른바 건폭과의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노조를 악마화 하면서 노조원들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어쩌면 지금의 의료계에 대한 탄압과 비교할 만한 강경한 조치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고 정부발표에 따르면 승리하였다. 최소한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최소한 정부의 입에서 의료개혁이라는 말이 나왔던 적은 없었다.
돌이켜 보자면,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장된 필수의료의 위기가 필요했고, 진짜로 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은 임기내에 절대 불가능한 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이 정부가 선택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규모 의사증원을 던져 의료계의 반발을 유발하고 이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의료계를 희생양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지역의 의료인프라 부족과 구인난은 당연히 과거에도 심각한 문제였고 해결은 난망 했다. 응급환자 수용의 어려움은 최종치료 상급종합병원의 인프라 부족 때문이었고 경증환자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더욱 악화된 과밀화의 문제가 동반된 현상이었으며, 소아과 오픈런은 법적 위험성의 증가와 수익성의 악화로 소아진료의 인프라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일부 특정 병원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규모 증원을 통한 낙수효과보다는 직접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집중 투자하는 직수효과가 더 빠르고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늘어나는 고령인구”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출산율의 감소로 노인인구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늘어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않다. 본인이 아프거나 불편한 것을 참을 이유가 전혀 없는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에서 의료수요에 대한 적절한 제한없이 모든 수요를 감당할 시스템을 만든다면 국가는 파산에 이를 뿐이다. “국민이 지지하기에 계속한다”는 의료개혁도 과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합리적 비용에 양질의 의료라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절대로 달성하기 불가능하다.
의료개혁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달성해야 할 목표와 비전을 국민들 앞에 설명하고 이에 대해 동의를 얻는 것이 정상적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설명은 들을 수 없고 그냥 2천명 증원을 통해 의사를 늘리는 것만이 의료개혁이라고 정부는 계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목표도 없고 비전도 없기에 정부의 의료개혁은 실체가 불분명하며 잘못된 것이다.
무분별한 의료의 수요를 관리하는 것은 한정된 의료자원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질환의 경중에 따라 규모에 맞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들의 자율만이 아닌 규정과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현실에서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다. 경증환자로 인한 상급병원의 과밀화를 욕하기 이전에 그들이 안심하고 만족스럽게 치료받을 수 있는 1차진료의 인프라가 과연 적절하게 구성되고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시간 동안 정부는 어떠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2조원에 가까운 국가의 재정과 보험재정을 탕진하며 의료계를 잘못된 정책을 가리는데 급급하였다. 2천명 증원으로 필수의료 지방의료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의료계의 의견을 반개혁 카르텔로 규정하고 악마화시키며 겁박하는데 치중하였다. 의사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예후와 미래를 예측하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이러한 무리한 정책은 의료붕괴를 초래할 뿐이며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제는 의료계를 넘어 교육현장과 사회 전체적으로 그 파장이 퍼져가고 있으며 수습이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에 대안을 가져오라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도 대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정부에서 말하는 상급병원의 구조조정이나 전문의 중심병원은 허상에 불과하다. 새로운 뉴노멀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이 사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논의의 시작인 지역의료, 필수의료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도대체 누가 아니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올바른 진단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이전의 의료체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긍심과 꿈을 잃어버린 전공의들은 다시는 수련과정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충분히 교육받지 못할 것이 확실한 의대생들은 내년이 되어도 지속적으로 수업을 거부할 것이다. 이제는 정부도 선택할 때이다. 무리한 증원을 포함한 정책강행을 포기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새롭게 의료계와 함께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적으로 고집을 부리며 의료계의 몰락을 지켜보는 2가지 선택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와 대안은 정부가 먼저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껏 우리의 의료를 지켜오던 저비용 고노동 전공의들과 박리다매 대마불사 대형병원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국민들과 의료계의 눈높이로 본다면 뉴노멀이 아닌 처참한 재앙일 뿐이다. 한 번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 수십배의 비용과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비상의료체계의 유지가 아닌 정상의료체계의 발전과 개선일 것이며 의료계 역시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보건의료의 뉴노멀을 만드는 것은 미래의 전문의 인력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지 정부나 복지부단독으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다.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회복이 뉴노멀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인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무너진 신뢰를 비용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지난다면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외치는 의료계의 함성에 정부는 반드시 응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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