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도입된 제도 중 하나인 지역가산 제도가 오히려 경기도 지역의 분만병원만 육성하고 있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10월 13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2600억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문제점으로 인해 산부인과 병원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인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2023년 12월부터 시작된 분만병원 지원 정책이 오히려 산부인과 병원의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폐업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이 부회장은 정부가 분만병원 지원을 위해 지역 가산 제도를 통해 2600억원을 투입했지만, 특례시와 광역시에 대한 개념 정리 없이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면서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특례시는 광역시보다 인구밀도와 의료 인프라가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시는 분만 건당 55만원을 지원받는 반면, 특례시는 광역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분만 건당 110만원을 지급하고 있는 모순에 대해 꼬집었다.
그러면서 서울·경기·인천은 같은 생활권임에도 행정구역 기준으로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이러한 차등 지원은 분만병원 간 인위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울 지역은 분만 건당 지역 가산제도에서 광역시에 해당돼 55만원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경기도 산부인과 병원이 지역가산으로 월급을 대폭 올려서 구인하는 것을 따라갈 수 없어 산부인과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병원 유지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이 부회장은 수도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1일 생활권이 되어버렸다면서 경기도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주거지를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서울에서 출퇴근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울산광역시와 창원특례시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울산시의 의료인력이 창원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며, 그러면 울산에 분만 인력 공동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도 “특례시의 분만 인프라들의 공통점은 젊은 산모들이 많이 있고, 실제 분만 건수도 서울은 저녁에 분만이 1건도 없는 경우가 있는 것과 다르게 경기도에서는 일 2~3건씩 이뤄지고 있음은 물론, 경기도 내 특례시와 그 인근의 분만 건수가 우리나라 전체 분만 건수의 30%가 넘을 정도로 많이 집중돼 있다”고 현실을 밝히면서 지역 가산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더불어 지방 도시 중 하나인 전북 전주의 의사들도 경기도에 있는 병원으로 취업하러 가고 있으며, 그동안 분만 현장에 없던 사람들도 경기도로 이전해서 분만하는 현장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전했다.
이어 이인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실제로 올해 4월 이후 인건비가 대폭 상승하면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어 40년 동안 운영해 온 병원을 문 닫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전하면서 정부는 현실적인 지원 정책을 통해 산부인과 병원의 경영난 해소와 안정적인 분만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가산제도의 문제점을 현실적인 지원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고, 지원금을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권 기준으로 지급해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하며, 지역에서의 인센티브 제공이나 교육·훈련 프로그램 강화 등을 통해 의료인력 유치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정부를 향해 지속 가능한 분만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 및 역량 강화 지원을 위한 지역의료 발전기금을 신설해 소멸 직전의 지역 분만 인프라 유지를 위해 지원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새로운 분만기관 신설도 중요하지만, 기존 의료기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자 상태인 분만 산부인과에 실질적인 긴급 지원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지역 가산 제도를 도입할 때, 3개월 정도 우선 시행해 보고 손익 분기점과 장·단점 등을 검토해서 재조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도입됐었는데,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조사조차 하지 않는 방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만약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서울의 지역구 중 산부인과 분만병원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현재 6곳 이상에서 계속 증가될 가능성이 높고, 기존의 분만병원의 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면 서울에서만 10곳 이상의 분만병원이 사라질 위기에 있으며, 이로 인해 서울에 있는 산모들이 경기도로 원정 진료를 가는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김 회장은 “실제적으로 분만병원에 대해 경영 평가를 실시·분석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역가산 제도가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분만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찾아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