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료기관들이 CT·MRI 등 영상검사를 찍고 판독한 뒤에 받는 수가에는 영상검사를 판독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의 노동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수가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제기됐다.
특히, 병원들이 적자를 보존하기 위해 영상검사가 급증했으며, 이로인해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많은 업무를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2024 대한영상의학회 학술대회(KCR 2024)’가 10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이날 이날 황성일 대한영상의학회 총무이사는 불필요한 CT·MRI 등의 영상검사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영상검사 줄이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황 이사는 CT·MRI 등의 특수영상검사가 급여에 포함되면서 지속적인 수가 인하가 발생하고 있으며, 반면에 수입에 의존하는 고가장비의 가격과 인건비는 상승하고 있어, 이를 보전하기 위해 영상검사 수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돼 총진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증상별·질환별 영상검사에 대한 적절한 임상 가이드라인이 없거나, 강제성 부족 및 임상현장에서의 구체성이 떨어져 임상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가 어려워 남발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황 이사는 현재 의료분쟁 등의 여러 법적 문제에서 적절한 영상검사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의료진의 과실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아,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고 법적 증거 확보를 위한 방어의료의 일환으로도 CT·MRI 등의 영상검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10년 만에 영상검사가 2.2배 늘어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소감을 전했으며, 방어의료를 위해 영상검사가 증가한 원인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역으로 재구성하다 보면 이상적인 상황·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없거나, 해당 방법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 사용한 것에 대한 소명이 잘 이뤄지지 않다보니 영상검사 여부 등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쉽게 말해 머리가 아프다고 CT를 무조건 찍는 나라는 세상에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방어의료 차원에서 CT를 찍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전창호 대한영상의학회 의무의사도 “혈관 CT를 판독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최근 방어의료를 위해 영상검사를 하는 것 같은 사례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딱히 어느 포인트에서 방어 진료를 위해서 찍는다기보다는 여러 상황 자체가 자꾸 검사를 남발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며, 부작용 등이 생길 확률이 굉장히 떨어짐에도 관련 사례가 하나 발생하면 모든 의사들이 그동안 찍지 않았던 환자에 대해서 영상검사를 시행하게 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승은 대한영상의학회 회장도 “몇 년 전에 응급실에서 아기가 탈장된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사건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으며, 단순히 탈장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CT를 찍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당시 CT를 왜 찍지 않았냐고 지적하는 판결이 떨어지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비슷한 증상이 있는 아기가 오면 무조건 CT를 찍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고 탄식하면서, 방어의료를 위한 영상검사 여부 대해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끝으로 정 회장은 “영상검사가 너무 늘어나 의사들이 다 소화할 수 없게되면 판독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며, “병원·개인의 수입이나 남발되는 판결 방어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적정하게 이용되는 것이 아니며, 건강보험 제도 등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봐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대한영상의학회 이충욱 보험이사는 지난 10년 이상 국내 CT·MRI를 포함한 영상검사 수가가 지속적으로 인하되면서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의원급이 병원보다 수가가 높은 ‘역전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수가 인하가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우선 이 이사는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회계조사를 기반으로 2012년 각각 ▲CT 수가는 15.5% ▲MRI 수가는 24%가 일괄 인하됐고, 2차 상대가치 개편에서 추가로 5% 수가를 인하하더니, 이번 3차 상대가치 개편에서 검체·영상 행위에 대해서만 종별 가산을 폐지하는 방식으로 영상검사 수가를 추가로 인하했으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5%의 수가 인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의원과 병원 간의 환산지수 차이로 인해 동일한 검사를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하면 비용이 더 낮아지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했음을 전하며, 본인 부담률 차이가 있지만, 이왕에 검사를 받는다면 3차의료기관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고 싶어하는 상황 속에서 실제로도 3차 의료기관으로 영상검사가 편중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이 이사는 “기계 검사료 자체의 삭감은 규모의 경제를 따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지만,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 영상의학과 의사의 노동을 영상검사를 하는 만큼 반영해야 하는데, 동일하게 삭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인 2025년도 환산지수는 ‘환산지수 쪼개기’라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원래 예정돼 있던 1.9% 인상분 중 각각 의원 0.5%과 병원1.2%씩만 인상하고, 남은 인상 예정분을 의원급 초진·재진료 인상과 병원급을 대상을 ▲응급 진료 ▲수술·처치 및 마취료 등에 대한 가산 확대에 이용하기로 결정된 상황을 전하면서, 반복된 삭감으로 영상검사 수가가 원가 수준으로 낮아졌음에도 2025년도 인상분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더불어 이 이사는 우리나라의 4인 가족 월 생활비가 미국·일본·독일·호주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인 반면, 영상검사 수가는 미국(457.37$)과 호주(361.28$)의 약 30%(95.08%)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과도하게 낮음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독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며, 최소한 10% 이상의 수가 인상이 필요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견해와 함께 “각각의 검사에 대한 영상의학과 의사의 노동이 폄훼되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성일 대한영상의학회 총무이사도 일반인과 의료인 모두 영상검사 판독에 얼마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잘 몰라 해당 노력에 대한 수가가 따로 있지 않아 많이 찍을수록 원가가 내려가는데, 많이 찍는다고 해서 판독에 들어가는 노력이 적게 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힘들어지게 되므로 이를 반영해 수가가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영상검사 검사료와 판독료를 분리시키고, 경영 최적화나 환자의 동선 개선 등을 통해서 원가를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의사의 노동에 대한 비용은 고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상의학회의 큰 목표 중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영상감사 판독 의사의 노동비용에 대해 제대로 측정해 줄 것을 호소했다.
최준일 대한영상의학회 정책연구이사도 “기계는 밤새 돌려서 검사를 실시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밤을 새우면서 일할 수 없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장비를 많이 돌려서 그 손해를 메웠을지 몰라도 대신 저희는 병원에 소속된 의사·노동자로서 더 많은 업무를 강요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모자라는 이유는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검사가 많아지는데, 전문의가 모자라고 남아있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승은 대한영상의학회 회장은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명했다.
먼저 정 회장은 “지금까지 심장 수술과 같은 수술을 위해 4~5명 의사와 간호사·심폐기사 등이 들어가서 3~4시간 걸리는 수술을 매우 적은 수가로 그동안 유지해왔던 것은 영상검사나 진단검사 등 검사 또는 비급여 검사로 수익을 내서 메꿔왔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위와 같은 의료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급여 → 급여’를 추진한다면 병원이 도산하거나 진짜 중요한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