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됨과 동시에 전공의들이 사직하면서 급격한 응급실 인력 감소로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진행한 추석 연휴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근무 현황 긴급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문의 51.7%가 사직 의향을 내비추고 있고, 전공의 복귀 무산 시 사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61.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갈수록 심해지는 응급실 대란과 관련해 응급실 의사들이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현장의 시선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엇이며,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먼저 현재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체계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고 느끼시나요?
A. 우리나라에 응급의학과와 응급의료 체계가 생긴 지가 이제 30년이 조금 덜 됐습니다.
저의 면허번호가 353번입니다. 전국의 응급실이 500개 정도 있지만, 정작 응급의학 전문의는 전국에 300여명 밖에 없던 시절에 제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됐던 거에요.
그 시절의 응급실은 병원에서 인턴이나 각 진료과의 팀에서 막내에 해당하는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지키는 환경이었다면 병원 전체의 의료 수준과 역량 등이 엄청나게 좋아져 응급의료의 질로 따지면 사실은 세계 어느 나라랑 견줘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질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들이 있었습니다.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지키면서 응급실에 온 응급 환자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겠다고 의사들이 여러 노력과 의지를 가지고 일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응급의료 체계가 단 7개월 만에 이제 망가져 가는 모습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들은 희생을 바탕으로 고도의 성장을 하고 나서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하기에는 구성원들이 현장을 떠나게 되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어 응급의학과가 소멸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희들이 희생하면서 버텨왔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버텨왔었는데, 더 이상 나아질 희망이 없다고 한다면 기존 인력들이 서서히 은퇴해가면서 응급의학과도 소아과나 산부인과처럼 몰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따름입니다.
Q. 이번 응급실 대란이 아니더라도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빈번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A. 우선 ‘응급실 뺑뺑이’는 언론 등에서 편파적·악의적으로 만들어낸 보도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환자의 흐름도는 ▲현장~병원까지의 ‘병원 전 단계’ ▲응급실에서의 ‘응급치료 단계’ ▲응급치료가 끝나면 최종 치료를 받는 ‘병원 단계’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병원 전 단계’는 119가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환자가 방문한 병원에서 최종 치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최종 치료가 제공되는 병원으로 보내게 되는데, 바로 이 과정과 시스템이 ‘병원 간 환자 전원 시스템’이며, 대부분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의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0년 전까지는 환자를 전원할 수 있는 병원을 환자의 상태와 어떤 수술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 응급실 의사가 알아봐야 했기에 최종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받은 날은 의사가 종일 전화를 돌려서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만 했는데, 해당 과정이 병원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즉, ‘응급실 뺑뺑이’가 없던 것으로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19가 병원으로 환자를 데리고 오기 전에 수용 가능 여부를 전화로 미리 확인하는 내용으로 관련 법이 바뀌게 되고, 119로부터 전화를 받은 병원에서 최종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거절하면 다시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연락·이동이 길어지게 됩니다.
이때, 언론 등 외부에 노출되면서 통칭 ‘응급실 뺑뺑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119에서 응급실까지 환자가 이송되는 단계가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응급 치료에서 최종 치료로 이어지는 부분이 막혀 있으며,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대책을 내놔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현재 응급실 대란에 정부가 공보의·군의관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현장에 효과가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느 정도로 도움이 되셨나요?
A.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 투입은 대세를 바꿀 만한 게임체인저는 아니었습니다.
응급실은 전문성과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가 필요한 곳이며, 특히 수련병원 응급실을 생각해보면 전문의들과 전공의들이 한계치까지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전공의들이 나가기 이전 응급실의 역량이 100 정도였다면 전공의들이 나간 현재의 역량은 40 정도에 불과하며,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 투입이 이뤄져도 1~2의 역량 정도만 상승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오랫동안 응급실에서 일한 의사들도 다른 병원에서 일하라고 하면 최소 1~2주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이를 무시하고 당장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에게 내일부터 응급실로 이동해서 일하라고 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병원 전체적으로 배후 진료 능력 자체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상황으로, 배후 진료가 되지 않으면 응급실 업무 자체도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법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기본부터 사실 잘못됐습니다.
더불어 비상진료 대책을 만들 때도 현장과 전혀 논의 없이 이뤄진 것도 문제입니다.
6개월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응급의학과 의사회 회장인 저한테 연락이 없었으며, 현장 의견이 올라갈 수 있는 통로 자체가 막혀 있습니다.
의사소통 자체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현장에서 동의하지 않는 정책을 자꾸 남발하게 되고, 효과는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 응급실 의사들이 생각하기에는 정부의 의료개혁에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A. 의료 개혁 개혁이 실체가 없습니다.
의료를 발전·개혁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은 동의하지만, 정부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 만들고자 하는 응급실이 전 국민이 아플 때 언제나 편의점에 가는 것처럼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거기에 맞는 인프라를 만들 계획을 세우면 되고, 정말로 아픈 사람들만 가는 응급실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거기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를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얻는 게 정부가 할 일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전문가들이 할 일인데, 지금은 앞뒤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응급실이 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하지 못하면 응급의료는 한정적인 자원이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갖다 놔도 불만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병원 원무과에서 줄을 한 번도 안 서본 사람들이 의료 정책을 만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장을 모르니까 결국은 현장하고 동떨어진 탁상공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이 보기에는 지금 정부의 행동은 다 의료 망해가는 과정에 있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망해가는 것이 보여서 망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는 아니라고만 해서 답답할 따름입니다.
또한, 의사들이 반개혁 세력이라고 하는데, 의사들은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관두고 나갔고, 일부 의사들은 힘들어 죽겠지만 남아서 환자를 돌보고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의료 개혁은 젊은 의사들과 해야 하는 일인데, 젊은 의사들 다 때려치고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랑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고, 실타래가 너무 많이 꼬여 있으며, 사공이 너무 많다 못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숟가락 얹으려고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