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모두에게 질환을 일으키는 사람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람유두종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 두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HPV 백신 접종은 현재 유일하게 백신 접종을 통해 암을 예방가능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의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는 충분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최근 연구 결과에서는 HPV 백신 예방 접종의 남아 확대가 비용효과성이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는 65%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높은 접종률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접종 확대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도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남아 백신 접종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한 결과 이면의 효과를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영희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부인종양학회와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주관으로 ‘HPV 질환의 국가적 예방 필요성에 대한 토론회’가 11월 21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한림의대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남성에서의 HPV 백신의 효과가 충분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남성과 여성을 같이 접종하면 여성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현재 EU의 모든 국가(54개국)에서 남녀 모두에 대한 HPV 백신접종을 권장하고 있으며, OECD 가입국 기준으로 보면 GDP 기준 상위 10개국 중 7개 국가가 HPV 국가예방접종사업에 남자를 포함하고 있고, HPV 국가예방접종사업을 하는 110개 국 중 52개 국이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한 상태이다.
이재갑 교수는 “남녀 모두 HPV 백신 접종 시 HPV 16, 18형 유병률이 더 많이 감소했고, 백신 접종률 감소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개선했다. 남성에서 HPV 관련암이 증가하고 있고,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HPV 전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백신접종 확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HPV는 감염 시 나타나는 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 두경부암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질환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없고 두경부암에 대한 연구 자체가 많지 않아서 비용효과성 연구에 반영된 부분이 적지 않았겠느냐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재갑 교수는 “HPV는 높은 흡연률과 더불어 두경부암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된다. 감염됐을 때 자각증상이 없고 검사도 잘 이뤄지지 않아 암으로 진행돼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방접종을 하면 이를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번째 발표를 맡은 고대의대 산부인과 민경진 교수도 ‘치료에서 예방으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백신 접종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에 걸쳐 잘 알려진 HPV 16형 다음으로 HPV 52, 58번 유형에 의한 감염이 많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9가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경진 교수는 “자궁경부암에 대한 9가지 HPV 유형의 기여도가 92%를 차지한다. 9가 백신 접종만으로 유병률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WHO에서도 2020년 ‘자궁경부암 제거 전략’을 발표하며 발생률을 10만명 당 4건 이하로 낮추는 목표를 제시했다. 호주는 이를 대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도 치료에서 예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기존 2,4가 백신에서 9가 백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자궁경부암 폐전이 4기로 인해 치료중인 A씨가 패널로 참여해 “치료 과정도 힘들지만 환자로서 사회에서 받는 부정적인 시선과 말들이 있다. HPV에 대한 남녀 동시 백신 접종으로 암 예방과 함께 질환의 심각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HPV 백신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은 없었다. 질병관리청도 HPV 백신의 남아 접종과 9가 백신 도입에 대해서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이를 최종 건의하기 위해 검토중이라고 했다. 다만 문제는 재정 확보였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기획과 권근용 과장은 “백신의 비용이 있기 때문에 남아 접종을 시행하는 국가들에서도 여성을 우선 접종 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질병청에서는 사회적 인식이나 형평성, 여러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남아 접종도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의 사례에서도 그렇듯, 여성 접종률이 높은 우리나라는 남성 접종 확대의 비용효과성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질병청은 남성 접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 경우 추가된 비용이 문제가 되므로 기존 2회 접종에서 1회 접종으로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접종 대상 확대로 200~300억의 예산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접종 효과를 보존하기 위해 2회 접종을 유지하느냐, 1회 접종으로 비용을 절약하면서 안정적으로 전환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질병청은 내년 3월 전까지 방향성을 정하기로 했다.
한편, 호흡기질환바이러스 등 다른 백신에 비해 HPV 질환은 국가백신접종 항목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하므로 우선순위와 별개로 검토할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HPV질환의 국가접종 시작이 2016년에야 이뤄졌을만큼, 우리나라에서 HPV백신 접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HPV 백신의 남성접종이나 국가접종 확대에 대한 의견들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