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의료정보, 이제 병원에서 직접 얻으세요”

2023-03-30 05:56:29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념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김결희 교수 인터뷰 ①


최근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는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의 김결희 교수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아직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 더 큰 우리나라에서,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이라고 하면 태국을 주로 떠올리는 것이 대세인 환경 속에서, 김결희 교수가 이른바 ‘탑수술’과 ‘바텀수술’을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교수는 최근 벨기에 연수에서 돌아온 후 더 나은 성소수자 의료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연말 국내 최초로 성확정수술과 동시에 정자를 동결하는 데에 성공하며 트랜스젠더의 생식능력까지 보존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메디포뉴스는 3월 31일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앞두고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에서 김결희 교수를 만났다. 


LGBTQ+센터가 위치한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는 김결희 교수의 정성어린 손길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성형외과 입구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 역시 김 교수의 아이디어로, 원내 유일하게 성별과 무관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입구 인테리어 중 ‘환자중심’이라는 문구는 김 교수의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김 교수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진료실 앞도 남다르다. 진료실 입구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으로 쓰여진 글귀 ‘EVERY ONE IS WELCOME HERE’가 환자들을 환영하고 있었고, 그 옆의 책장에는 내원한 환자·보호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안내해주는 전단지와 서적들은 물론 무지갯빛 팔찌로 장식된 인형 등이 비치돼있었다.

이 같은 김결희 교수의 세심함은 진료실에서 더 빛을 발한다. 많은 성소수자 환자들이 울고 웃었던 김결희 교수의 진료실에서 메디포뉴스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에서 성소수자 진료를 하고 있는 김결희라고 합니다.

Q. 성소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유방암으로 유방을 상실한 암 환자분들을 위한 가슴재건 수술을 공부하기 위해 간 미국에서 성소수자 가슴 성형을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이후 귀국해 개원가에서 진료했는데 그 때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환자분을 만나게 됐어요.

사실 코로나19가 큰 계기가 됐습니다. 예전부터 한국의 트랜스젠더(기타 성소수자 포함) 환자들은 태국 등 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갔는데 하늘길이 막히면서 가슴성형을 하고 있는 저에게 환자분들이 문의하시게 된 거죠. 

이 진료를 하게 된 것이 운명이라 생각됐던 이유는 성확정 수술을 위해서는 ‘미세 수술’이라는 술기가 필요해요. 미세 수술은 제가 예전부터 했던 가슴 재건 분야에서 요구되는 술기거든요. 이러한 퍼즐이 잘 맞춰지면서 성소수자분들을 위한 성확정수술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개원가에서 하기에는 수술의 범위가 넓고 많은 인력과 자원, 특히 다학제적 진료가 필요하다보니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진료를 보게 됐습니다. 

Q. 지난 해 말 국내 처음으로 성확정수술과 동시에 정자 동결하는 것에 성공하셨습니다. 

사실 정자, 난자 동결은 시스여성이나 시스남성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시술로, 이번에는 트랜스젠더 환자분께 성확정수술과 동시에 시술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트랜스여성분들의 수술 및 호르몬치료 전 정자를 동결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습니다. 이번 시술이 의미있는 것은 성확정수술을 하면서 정소에서 정자를 채취해서 냉동했다는 점이거든요. 

이는 트랜스젠더들의 생식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부 예외적 판례가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는 현재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성별의 생식기능의 영구제거를 증명해야 하거든요. 

정자, 난자 동결로 생식력을 보존한다는 것은 ‘트랜스젠더도 마찬가지로 재생산권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내 유전자를 가진 후세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방증함으로써 결국 트랜스젠더 환자분들이 생식능력 소실을 요구하는 수술을 받지 않아도 법적 성별정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시스젠더: 생물학적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Q. 벨기에 연수 중 국내에 벤치마킹 하고 싶으셨던 부분은 없으셨나요?

국내 성소수자 진료에 관해서는 전문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비전문인들끼리 얘기하는 내용으로 서로 공유하고 재생산하게 되거든요. 

제가 연수받은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센터는 세계적으로 수술이 제일 많이 이뤄져 대기 기간만 약 7년인 곳입니다. 

이 병원에서 정말 좋아보였던 부분은 병원 자체에서 환자분들께 전문적인 정보들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인포세션’이라는 세미나를 통해 환자분들이 수술을 위한 상담을 오기 전 전반적인 수술 내용, 방법들에 대한 장단점이나 회복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래서 귀국 후 올해부터는 저희 LGBTQ+센터에서 매달 한 번 온라인으로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각각 주제를 정해서 트랜스여성/남성을 위한 성확정수술, 트랜스여성/남성을 위한 가슴수술 등 각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려드리는 거죠. 

또 환자분들이 그런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상담을 오시면 환자 개개인에 맞는 더 자세한 상담도 가능합니다.

때문에 벨기에서 제가 항상 부러워했던 점에 대해 올해부터 시작할 수 있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달 하고 있어요. 

Q.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는 다학제적, 전문적으로 성소수자 진료를 하는 센터로 9개과(정신건강의학과, 내분비내과, 외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감염내과, 이비인후과, 사회사업팀)의 16명의 의료진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센터의 목표는 모든 진료 영역에서 성수소자 환자분들이 편안하고 차별 없이 진료받을 수 있도록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환경을 만들고 또 의료기술도 세계 수준에 버금가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희 센터는 성소수자 환자분들이 성확정수술이나 트랜지션 외에도 다른 모든 과 영역에 걸쳐 전문화된 진료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개원가를 통해 호르몬치료만 하거나, 정신의학적 진단만 받거나, 성확정수술만 하는 등 일부 과에 대한 진료를 하는 병원은 있지만 한 병원 내에서 통합적으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모든 진료를 할 수 있는 센터는 저희가 최초이자 유일합니다. 특히 성확정수술에서도 트랜스남성(FTM), 트랜스여성(MTF) 모두를 위한 수술을 시행하고 있는 센터는 저희가 유일합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엘라이 닥터 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과마다 성소수자 진료를 전담하시는 선생님을 정해서, 성소수자 환자와 관련해 해당 과 협진이 필요할 때는 그 교수님이 진료를 전담해 볼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트랜지션: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성별로 외형적 변화를 거치는 과정


Q. 강동성심병원으로 돌아오시면서 센터 구성 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LGBTQ+센터가 국내에서는 유일하긴 하나 미국이나 유럽은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이면 성소수자를 위한 센터를 모두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예전에 자신이 사는 주 안에 성확정수술을 하는 의사가 없어서 주를 건너서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강동성심병원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병원들은 모두 성소수자분들에게 차별없는 진료를 제공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병원은 LGBTQ+센터 구성에 대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주셨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긴 했지만, 아무래도 성소수자 진료가 낯설다 보니 의료진이나 다른 행정파트에서의 지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제가 다학제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산부인과, 외과, 비뇨기과, 정신의학과, 내분비내과 이런 진료가 필요해서 해당 과 교수님들한테 요청하면 정중히 거절하는 분들도 계시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의사라는 일의 소명은 개인적, 종교적 신념을 떠나서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어떠한 차별없이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른 직업보다 어느정도 존경심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의사라면 개인적인 소명이나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어서 직업이 주는 소명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라면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모두에게 강요를 하는 게 맞을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고민이 됩니다.

때문에 저는 법제적인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환자는 어떤 병원을 가든지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되거든요. 만약에 그러한 이유(개인적, 종교적 신념)로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진이 있으면 그 병원 내에서 똑같은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것에 대해 제도화나 아니면 법제적으로 마련돼야겠죠.

행정 파트도 마찬가지예요. 병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굉장히 개인 정보를 많이 노출하게 되는 환경이다 보니 병원에 오면 환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가 다 노출돼야 접수가 되고 진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성소수자 환자분들은 자신의 외모가 자기의 법적 성별과 맞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이런 불편한 상황들 때문에 병원에 오기를 꺼리게 됩니다.

이번에 저희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성소수자 환자분이 재내원할 경우 의료진은 해당 환자분이 성소수자인 것을 인식할 수 있고, 그 환자분이 원하시는 성별, 원하시는 이름을 따로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남기는 겁니다. 그러면 병원 내 모든 의료진이 이걸 볼 수 있어서 그에 맞춰서 환자를 응대하는 거죠.

근데 이거 하나 넣는 게 참 쉽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이분법적으로 나눠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이분법적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 어떠한 것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시스템을 만들면서 이것 하나 바꾸는 게 단지 의료진, 간호사뿐만 아니라 행정팀, 간호팀, 법무팀, 원무과, 총무과 등 굉장히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노영희 기자 nyh2152@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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