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없는 저출산 대책, 갈 길 먼 정부

2018-09-04 05:40:00

지난해 개최된 제13차 인구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의 교육 · 소득 수준이 향상하면서 하향선택 결혼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 관습 · 규범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문화 콘텐츠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무해한 음모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의도가 무엇이든 원 연구위원의 제언은 대중에게 유해한 음모로 받아들여진 듯싶다. 

최근 연구원은 전국출산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상은 1968년부터 1998년생까지 여성으로, 미혼 여성 대상 설문지 내용을 살펴보면 ▲이성교제 및 결혼 ▲자녀 및 가족에 대한 가치 · 태도 ▲결혼 및 출산 관련 정책 등의 항목으로 나뉘며 △현재 이성교제를 하고 있는지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이상적인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 등을 묻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부가 여성을 인간이 아닌 출산하는 도구로 간주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연구원이 전국 출산력 조사 대상자라며 연락하라는 메모를 현관문에 남겼고, 이 때문에 여성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것이 알려져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우려했다. 연구원 측은 "범죄 노출 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부재중 스티커를 봉투에 담아 우편함에 넣는 것으로 변경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뿐만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낙태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 · 시행했다. 이는 의사가 낙태수술을 할 경우 1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고시이다. 

이번 복지부 고시에 대해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가 3천여 명의 여성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익명의 여성들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입을 모아 복지부에 요구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오롯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과 관련한 것이다. 연구원의 '출산력 조사를 활용한 한국의 출산력 변천 과정' 연구 보고서에서는 임신소모율 감소를 위해 인공임신중절을 예방 ·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출산율 저하 원인으로 낙태를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복지부의 비도덕적 의료행위 규정으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낙태 행위나 고소득 · 고학력 여성의 증가 때문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면 청년 취업난, 부양 부담, 가부장제 풍토, 페미니즘 등 수많은 사회 · 경제적 문제가 얽힌 상태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 고령화라는 심각한 난제에 직면하여 조급해진 것은 잘 알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 원인부터 제대로 고민해 저출산 대책을 진행해야 한다. 의사에게 낙태죄를 묻고 결혼 · 출산을 기피하는 인구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정책 등이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며, 단순히 덮어놓고 낳기에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다. 

그 전에 더욱 중요한 핵심이 있다. 정부는 여성을 저출산의 원인이나 해결 수단이 아닌 사회 절반을 이루는 구성원이자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타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의 완화된 낙태 규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여권 성장이 크게 일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여성을 단순히 겉시늉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합의 · 소통을 통해 이끌어낸 결과이다. 부디 일부 전문가를 토론 자리에 앉혀놓고 명목상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고 자신하지 말고, '실제' 여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소통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으면 한다.


김경애 기자 seok@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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