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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의 시험, 그 고민과 경험 그리고...(하)

정 홍 건국의대 충주병원 전임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웹하드와 카페의 존재가 전문의 준비 모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2006년에도 2005년에도 카페와 웹하드는 존재하였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은 전공의 때 친했던 타 병원 선생님들과 더욱 쉽게 연락이 가능하도록 했다. 11월 포탈사이트에 ‘2007년 비뇨기과 전문의 준비 모임’이 만들어지고 난 후,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하여 새로운 정보가 없는지, 다른 족에서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으며, 오답에 대한 서로 간의 생각을 교환하고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는 지쳐가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휴식의 자리이기도 하였으며, 무협 소설을 좋아했던 내가 당시의 상황을 빗대어 쓴 ‘비뇨기문파’ 등과 같은 잡담들이 다른 수험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에게 조차도 내가 익명으로 쓴 것을 비밀로 했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정보의 홍수라고 했던가?

새로운 족보들이 나올 때마다 추가되는 내용들은 과연 이것을 공부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며, 보통 말하는 pseudo-○○병원 ○○○ 교수님께서 직접 출제하신 문제입니다 등-들이 익명으로 너무 쉽게 난무하게 되고, AUA에서 발간했다는 문제집과 풀이집들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새로운 고민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문의 시험 전날 호텔에서 잠을 설쳐 수면제를 먹은 후 잠들려 할 때, 12시 넘어서 왔던 “웹하드에 족보 올렸습니다”라는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많은 자료와 정보의 신뢰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당시에는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절박한 수험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족으로 처음 모였을 때는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성별, 나이, 지역을 떠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만나 커피전문점에서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지만,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공부방을 준비하고, 책상을 준비하고, 각자의 자리를 배정하며, 서로를 편안하게 대하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어제까지 말 한 번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친해지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까지도 생기는 것을 보면 비뇨기과라는 끈이 꽤 튼튼한 것 같다. 자기 생각과 주장만을 앞세워 “○○족은 작년에 싸우고 헤어졌다” 등 많은 풍문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위하여 모이기 전까지는 각 병원의 의국장으로 일을 처리하며 이끌던 일원들인데, 서로 자신을 낮추며 이해해주었던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은 지금도 물어보거나 부탁할 일이 있으면 편하게 전화하거나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족이 단순히 전문의 시험의 통과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동료이자 친구로서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2007년에는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 뿐 만 아니라 다른 족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되며,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램이다.

12월이 되었을 때 참 힘들었었다. 시험을 앞둔 12월은 대학 입학을 위하여, 의사고시를 준비하며, 그렇게 몇 차례 겪었음에도 또 수험생이라는 신분으로 돌아갔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크리스마스 케롤, 새해의 종소리는 나 뿐 만 아니라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에게도 마음을 들뜨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루하고 초초한 시간이었다.

전문의 시험을 위한 공부가 단순한 시간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으면 서로의 날카로워진 신경에 아마도 견디기 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에 대한 서로의 지겨움과 초초함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돌이켜보면 90여일을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에 대하여 얘기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공부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간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같이 공부하기 위한 ○○족 모임이라기보다는 서로 같은 길을 걸어왔고 또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동료들이기에 쉽게 친해지고 진로에 대한 서로의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이라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동료 간에 다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벼운 맥주 한잔과 함께 주말을 정리하며 했던 얘기, 줄담배를 피워대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얘기했던 일, 새벽 3시에 동국대 앞으로 족발을 먹기 위하여 갔던 일, 1, 2차 시험 전 호텔 1층에서 편하게 모여 같이 마셨던 커피 등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다만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여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 한 장 찍어두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4년간의 전공의 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아마도 1월에는 전문의 시험을 보았을 것이며 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2007년 1월은 참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같이 동고동락하며 전문의 시험을 준비했던 동료들이 지금은 전문의가 되어 앞으로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의 생각과 과정에 차이가 있어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은 조금은 다르지만, 비뇨기과라는 큰 틀에서 또 다른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전공의 시절 같은 고민과 같은 실수를 했던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 전공의의 수련은 한 분과의 specialist를 키우는 것이 아닌 ‘General Urologist’를 키우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전문의 시험이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닌 4년여 시간동안 비뇨기과 환자들을 보면서 지낸 전공의 생활을 마감하고 general urologist가 되기 위하여 부족한 지식을 채워 가는 것이며, 전문의가 된 후 자신의 길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