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이라는 이유로 치료 기회까지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원발성 담즙성 담관염(PBC)은 일부 환자에서 간경변과 간이식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허가된 2차치료제조차 실제처방이 쉽지 않아 치료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29일 ‘여성 희귀 간 질환 PBC 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개최했다.
이 날 토론회에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강원석 교수는 PBC가 면역체계 이상으로 간 내 담관이 손상되는 만성 희귀 자가면역 간질환으로, 담즙 배출 장애가 지속되면서 간섬유화와 간경변, 간부전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환자의 80~90%가 여성이고, 사회·경제활동과 돌봄 부담이 큰 40~60대에서 주로 발병하는 만큼 질병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PBC는 희귀질환이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피로감이나 가려움증처럼 비특이적인 증상이 주로 나타나 갱년기 증상이나 피부질환으로 오인되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단이 늦어질수록 담즙 정체와 염증이 지속돼 간 손상이 진행되고, 뒤늦게 간경변 단계에서 질환을 확인하는 환자도 실제 진료현장에서 많이 경험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국내에서는 우르소데옥시콜산(UDCA)이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지만, 전체 환자의 30~40%는 UDCA 치료를 통해 충분한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1차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는 2차치료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허가된 2차치료제가 있어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 처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치료제가 국내 환자들에게도 적절한 시점에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희귀질환이라는 이유로 정책적 관심에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며 B형간염의 사례를 롤모델로 제시했다. 국가예방접종, 치료제 급여화 등으로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처럼 PBC 역시 질환진행을 늦추기 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조기진단을 위한 검진 체계 개선과 희귀 간질환 환자 등록체계 구축, 환자가 실제 겪는 증상을 반영한 평가체계 마련 등을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중년 여성 건강의 중요성과 건강 불평등 문제를 조명했다.
박 교수는 중년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부모와 자녀 돌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문제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건강 형평성 관점에서 여성 건강을 보다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급여 평가와 협상을 담당하는 심평원과 건보공단은 패널토의를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한 접근성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과 제도적 절차를 함께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형민 신약관리부장은 희귀질환과 소아·중증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허가·평가·협상 병행사업과 신속등재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부장은 “최근에는 소아 뇌전증 치료제를 대상으로 신청부터 평가, 협상까지의 기간을 단축한 사례가 있었고, 현재는 심평원 평가와 공단 협상 기간을 각각 30일로 단축하는 신속등재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라며 “희귀질환이면서 만성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특성이 신속한 평가와 협상 과정에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급여 등재 여부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 안에서 우선순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김 부장은 “모든 환자와 모든 질환에 혜택이 돌아가면 가장 좋겠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다”며 “질환의 중증도와 치료 필요성, 사회적 합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약사에는 환자 접근성 제고와 함께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을 당부했다.
김 부장은 “어렵게 급여 등재가 이뤄졌는데 품절이나 공급 부족이 발생하면 환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약제인 만큼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해당 치료제가 급여 등재를 신청하면 관련 절차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 이숙현 신약등재부장은 “신속등재 시범사업은 희귀질환 치료제를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신청품목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보다 신속한 등재 절차를 지원할 예정”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해당 품목(PBC 치료제)이 대상이 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속등재 대상이 안 되더라도 급여신청을 하게 되면 규정과 절차에 따라 검사하겠다”며 “관련 학회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절한 급여 범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패널토의 좌장을 맡은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장은선 교수는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희귀 간 질환이 정책적 관심에서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면서 “오늘 논의가 PBC 환자들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실질적인 지원과 치료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미화 의원은 “희귀질환 환자들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정책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환자 수가 적다는 사실이 환자의 고통까지 작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부담으로 인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