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비대면 진료를 통한 초진 불가 이유를 밝히며 비대면 진료 초진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확하고 안전한 진단 및 처방 불가, 안전성 검증 부족,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랜 기간 재진만 허용, 코로나19 이후 초진 허용 국가도 제한적 조건 하에서만 허용 등이 이유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지난 9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산업계 생존을 위협하는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는 시대를 역행하는 新규제법으로 정의한다”며 비대면 진료를 초진 환자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손편지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체들도 비대면 진료를 초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2022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를 수행하고, 비대면 진료의 대원칙(대면진료가 원칙, 비대면 진료는 보조수단, 국민의 안전성 담보, 의협 주도)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시행조건 중 첫 번째 조건으로 진료형태에서 ‘초진 불가 재진 원칙’을 제안했다. 비대면 진료를 통한 초진 불가 이유는 국민 건강에 대한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비대면 진료를 통한 초진은 국민의 건강 침해 위험성이 높고, 안전성이 대면진료보다 낮다. 대면 진료 초진과정에서 진료는 환자가 진료실을 걸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환자의 표정, 걸음걸이, 동작, 소리, 냄새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환자의 질환에 대해 추정 및 진단을 하게 된다. 대면 진료의 첫 단계에서 의사가 사용하는 기본진찰 방법은 시진(눈으로 봄), 청진(귀로 들음), 촉진(환부를 만짐), 문진(병력을 물어봄), 타진(병소를 두들겨 봄) 등을 통해 환자의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그리고 나서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한 후속 과정으로 기본 관찰 후 의사의 판단과 처방에 의해 혈액검사나 의료기기 및 첨단 의료장비를 사용해 영상 검사 및 기능 검사 등을 시행하고 종합적으로 최종 확진을 하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어떤 방법보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은 방법이다.
반면, 비대면 진료의 초진은 대면 진료의 기본진찰 방법 중 촉진과 타진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시진과 함께 제한적 청진(청진기 등 사용 불가), 문진 정도로 환자를 진단하게 된다. 또한, 비대면 진료에서는 확진을 위한 혈액검사나 영상검사, 기능검사 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진 환자의 경우 오진의 위험성이 높아 환자 건강을 침해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전화 진료인데 전화 진료는 환자 본인 여부조차 확인할 수도 없는 방식(시진 불가)으로 비대면 진료 중에서도 가장 위험성이 높은 방식을 허용한 것이므로 추후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3년 3월 13일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시적 비대면 진료 현황과 실적’ 자료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는 비대면 진료 이용 횟수를 단순히 계산해 제시한 것으로 정밀한 비대면 진료 안전성 검증이 됐다고 할 수 없다.
비대면 진료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환자 개개인의 비대면 진료 이용 정보를 타임라인별로 추적하고 건강 수치 변화 혹은 합병증과 기타 질환 와병 유무 등을 심도 있고 정밀하게 분석하는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편, 비대면 진료를 오랫동안 시행해 온 해외 국가에서도 코로나19 이전 초진은 허용되지 않았다. 30년(대부분 국가)에서 길게는 50년(일본 등)에 걸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 온 해외 국가들에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 하에 비대면 진료를 시행했고, 재진 허용 초진 불가 방침을 고수해왔다.
다만,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발생 이후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초진을 허용했으나 코로나19 심각 상태가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프랑스와 호주의 경우에는 다시 초진을 제한했다. 일본의 경우 초진을 항구적으로 허용했으나 이 초진도 일반적인 초진이 아니라 기존에 대면 진료를 했던 단골 병․의원 의사(주치의)에게 온라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진료를 받도록 하거나 부득이한 경우(거주지 이탈) 단골의사의 의뢰서를 받아야만 비대면 진료를 다른 의사에게 받도록 한 것으로 완전한 초진 허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초진이 비대면 진료의 진료 형태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고,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비대면 진료에 있어서 초진 불가, 재진 환자 위주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첫 번째 원칙”이라며 “따라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이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되고, 필수 조건임을 정부와 의료계 모두 동의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체들의 초진 허용 주장은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은 마치 진술만으로 피의자의 범죄를 확정하는 것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는 게 되는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자 건강에 대한 위험성 부담은 오롯이 의사의 책임이다. 환자의 건강에 위험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을 책임도 없는 플랫폼 업체들의 요구로 인해 양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