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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창간 6주년] “전에는 의사였다…지금은”

얼마 전 ‘내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됐다. 그 영화는 보통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우리 사회는 ‘보통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제 의사와 의료를 더 이상 ‘존경해 마지않는’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대변하듯 산부인과 의사였던 제프리 M. 서스톤은 자신의 저서에서 “나는 전에는 의사였다.…지금은 의료서비스 제공자라고 불린다”고 고뇌를 토하고 있다.

2010년,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여 있다. 보건의료계를 보자. 하루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십 수 백 개의 신의료기술이 나오고 낯설은 신약이 등장하며 새로운 첨단 의료기기가 출시된다.

제도와 정책의 변화도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자고 새면, 보험급여가 바뀌고 보험약가가 인하된다. 국회의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정부와 기관단체들의 "바뀔 방침", "검토 중"이라는 되풀이도 귀가 따가울 정도다.

소비자들의 욕구변화와 의료인과 제약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심상찮다. 문제발생의 원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과 제약인들만 죄인취급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의약계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푸념과 원성 뿐이다.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뒤엉킨 실토래의 형국이다. "존경하는 의사"는 커녕 살아남기 조차 쉽지 않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개원가의 몰락과 보건의료계를 옥죄(?)고 있는 제도만을 탓하기엔 뭔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다. 제도의 문제점을 뜯어 고치는데 시간을 보내기엔 사회의 변화와 소비자의 인식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 보건의료계에 주어진 명제는 변화하는 시대에서 승자로 살아남는 길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변화를 리드할 때 선두에 설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일찍이 헤겔은 “여기가 로두스섬이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라고 말했다. 헤겔의 이 표현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헤겔이 말한 본래의 의미는 최선의 조건이 오는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이 장소에서 현실과 부딪치며 최선, 적어도 차선을 만들어내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같다.

우리 보건의료계는 현실에 대한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차선책을 찾는데 골몰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 인식과 변화를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우리나라 스마트 폰 사용자가 어느새 1천만명을 넘어섰고,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나이 든 이에게는 아직도 어설픈 이 스마트 폰에 매료 당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발빠은 병의원들은 이에 발맞춰 속속 어플리케이션 을 개발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바로 사회 변화의 흐름을 일찍이 파악하고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몇 해 전부터 일기 시작한 의료산업화 바람도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바람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의 산업화는 이념과 직역간의 갈등으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갈등이 나타나는 것은 ‘의료’를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의료시장을 움직이는 생각의 시작, C.A.R.E’에서 저자 최진희는 갈등의 이유로 “사람들은 병원 같은 의료기관을 다른 기업체에 비해 ‘무언가 신성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민들이 인식하는 의료인에 대한 이미지에 따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 인식 속의 ‘의사상’과 현실에서 ‘의사’를 대할 때의 의사는 전혀 다른 존재로 절대 오버랩(overlap)되지 않는데서 ‘신성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지금 의료계가 처한 제도적 변화의 바람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으며, 행위별 수가제에 따른 진료비 증가를 억제한다는 의미에서 지불제도 개편에 대한 도전과, 리베이트 쌍벌제, 주치의제도,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제도, 민간보험 청구와 지급에 대한 문제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더미 같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문제는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다른 하나의 문제가 또 나타나고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하나가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정부나 국회 등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있으나 어찌 보면 해법은 내부에서 찾아야 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 의료계는 보이지 않게 내부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겨루고 있다.

전문과목별로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이젠 전문 과목을 넘어 너나할 것 없이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종국엔 전문영역의 파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영역의 파괴는 전문과목 전문의로서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데 골몰해야 할 때가 됐다.

경쟁은 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지만 반면, 공멸(共滅)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의료계가 현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함은 비단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내일의 번영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서울대학교 법대 조국 교수의 저서인 ‘보노보 찬가’의 내용 중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어느 곳에도 없다는 뜻의 영어 단어 ‘nowhere’를 달리 읽어보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know+where’, 바로 지금 여기에서 ‘now+here’ 새로운 실천을 시작하면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다. 설사 그 결실을 당대에 따먹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어떠랴.”

의료계와 제약계의 '정론'을 자처한 메디포뉴스가 어느 새 여섯 돌을 넘기고 있다. 인터넷뉴스의 특성이 어떻든, 올바른 정보전달에만 매달려 왔다. 잘못된 지적은 주저없이 받아 드렸다. 얼마나 충실했는지 자문해 본다. 더 많은 지적을 통해 메디포뉴스가 커지기를 기대해 본다.

네티즌 모두의 풍성한 결실의 연말이 되기를 기원 드린다.

발행인 진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