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학술/학회

정신병원 감염관리 강화 개정안에 정신건강의학회 “실효성 전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신경정신의학회 “원점부터 다시 검토”
급성기병동·정신응급센터 지원책 마련 등 주문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 입법예고를 두고 정신건강의학계가 일제히 반발하며 바짝 날을 세웠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정신건강 유관학회들(대한노인정신의학회, 대한생물정신의학회, 대한생물치료정신의학회,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한국여성정신의학회, 대한우울조울병학회, 대한정신약물학회, 대한조현병학회,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한국중독정신의학회, 대한불안의학회, 대한수면의학회, 한국정신분석학회)(이하 학회)은 4일 성명서를 통해 “최근 입법예고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현재까지도 어렵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정신질환 진료체계에 엄청난 혼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라고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감염에 취약한 정신의료기관의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에 따라 ▲입원실 면적 기준 강화(1인실 6.3㎡→10㎡, 다인실 4.3㎡→6.3㎡) ▲입원실 당 병상 수 제한(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축소) 등 병상기준 강화 ▲병상 간 거리 1.5m 이상 이격 ▲300병상 이상 격리병실 설치 등을 의무화해 철저한 정신병동의 감염예방 및 관리강화를 목적으로 추진됐다. 또 ’정신병원‘ 종별이 신설됨에 따라 이를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비상경보장치 및 진료실 비상문 설치, 보안 전담인력 배치 등 정신의료기관의 안전한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3월 5일부터 시설 및 규격기준을 적용할 방침으로, 시행일 후 신규 개설 허가 신청 정신의료기관에는 모두 이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학회는 “코로나가 엄중한 상황에서 정신의료기관의 안전과 감염예방을 위한 관심과 개선의 취지에는 동의하며, 우리 학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사항이 포함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평가한다”면서도 “하지만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도 의료현장의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취지와는 달리 개정 시행규칙의 통과 이후는 돌이키기 어려운 심각한 휴유증이 예상되어 코로나19 사태 극복 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학회는 현 개정안이 충분한 현황파악과 개선방향에 대한 논의 끝에 도출된 것인지 의문을 표하며, 올해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신건강증진시설 환경평가 및 시설개선 연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행규칙부터 발표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개정안 내용을 조목조목 짚으며 반박했다. 개정 취지의 중요한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 차단이 현재의 개정안만 가지고 정신의료기관 병실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정신병동 시설 기준에 의료법 기준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과유불급일 뿐 아니라 실효성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건물을 임대해 운영 중인 정신병상들은 시설 기준 충족을 위한 공사가 여의치 않음 ▲정신의료기관의 수가와 의료급여정액수가에 대한 개선책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병실급감으로 이어짐 ▲정신재활프로그램 특성상 밀접한 접촉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단순한 시설적인 접근은 감염병 전파 차단에 효과적이지 않음 ▲신설 정신의료기관에 화장실 설치 의무화는 사고위험만 높일 가능성이 있음 등을 들었다.

특히 학회는 “무엇보다 급격한 시설 규정의 적용에 따라 2년 내로 의원급의 입원병실은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며, 150병상의 중소규모 입원시설은 병상 수의 40~50% 정도, 대형정신병원도 병상 수의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신재활프로그램으로 인한 밀접한 접촉이 예상되어 일괄적인 감염병 전파 차단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병동 기준으로 감염병 차단이 이루어지는 방안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은 현장에 있는 실무진들은 모두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현장에서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고 행정서식 상의 논리로 규제를 강행한다면 감염의 통제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누구도 원치 않는 급속한 탈수용화로 인한 다음의 부작용들이 발생할 것”이라며 ▲정신응급의료시스템 붕괴 ▲정신재활 시스템이 없는 급속한 탈수용화로 지역사회 혼란 초래 ▲급속한 병실 축소로 인한 정신병원 근무 의료인력의 대량 실직 ▲더 열악해지는 전공의 수련환경 등을 우려했다.

특히 학회는 “폐업되는 의원과 중소규모의 병원 병동 직원 전원은 코로나 시국에 바로 실직이 될 것이며, 대형병원의 경우 33%의 직원이 실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종합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 설치된 정신건강의학과는 현재 응급 및 급성기 정신의료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내·외과에 비해 낮은 수가로 인해 정신건강의학과 보호병동은 최근 5년간 병상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일반병상은 2011~2018년까지 1763병상이 증가한 반면,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은 2011년 1021병상에서 2018년 857병상으로 오히려 감소했고, 2021년 폐쇄가 예정된 기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 시행규칙은 이를 가속화 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학회의 우려는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이하 의사회)와 궤를 같이한다.

의사회는 2일 성명서를 통해 “병상 수와 병상 간의 거리, 면적에 대한 규정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아득히 전혀 없다”며 “정신과 병상 간의 간격을 지금보다 50cm 늘린다고 감염병의 전파를 예방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이라는 특성상 병상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감염병이 유입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개정안은 정신 보건의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탁상공론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전문가의 견해는 전혀 참고하지 않은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개정안이 그대로 실행되게 될 경우 의료기관은 공사를 위해서 휴원하거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폐원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학회는 ▲모든 개정 논의를 정신의료기관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연구를 시행하고 현장에 대한 파악과 충분한 여론 수렴을 진행한 이후로 연기할 것 ▲급성기병동 지원책과 대학병원급 폐쇄병동의 의무화, 이송과 치료기관 연결을 위한 정신응급센터 등 제도 정비 노력 ▲개정안 시설 기준 도입 시 수가 개선책과 시설 개보수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 ▲급성기, 아급성기, 지속기 치료에 대한 수가의 차등지급 통한 급성기 치료 강화 ▲보건복지부-정신의료 관련 단체의 TF(테스크포스)팀 구성해 논의체계 마련 등을 제안했다.

한편 학회는 정부가 충분한 논의 후 원점에서 재논의하지 않을 경우 시행규칙 개정에 저항할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향후 전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공유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