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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마약성진통제 한국형 임상진료지침 필요

처방 단계 노력없이 전산시스템만으로 오남용 예방 못해

우리나라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만으로는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예방할 수 없어 한국형 임상진료지침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 조근호 과장은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간하는 ‘공감 NECA 19년 제10호’에 실린 ‘오피오이드 남용, 우리는 안전지대일까?’ 기고문을 통해 이 같이 제언했다.


오피오이드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는 말기 암환자나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외상환자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만성 통증 환자에게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제약회사의 홍보와 위험성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부족으로 급격히 사용량이 증가했으며, 처방을 받은 의약품을 밀매하는 등의 불법적인 거래도 성행했다.


이로 인해 2016년 미국에서만 2만 6000여명의 사람들이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그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OECD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오피오이드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은 2014~2016년 기준 37개 회원국들 중 28번째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미국이나 OECD 평균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근호 과장은 “우리나라는 2011~2013년의 사용량에 비해 약 14.7% 증가한 값으로 그 증가폭이 결코 미미하지 않다”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펜타닐을 환자 명의로 처방받아 상습 투약한 종합 병원의 간호사가 적발되거나, 특정 의사가 마약성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한다는 진정이 해당 병원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마약성 진통제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고, 그 중 어느 정도가 임상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중독군인지에 대한 공식적인 역학조사가 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조 과장은 “2016년 매 5년마다 시행되는 정신질환실태조사가 발표됐으나 설문대상이 5100명에 불과하고 0.2%로 보고된 약물사용장애의 유병률을 적절히 설명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그 중 어느 정도가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것인지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행돼야 하는 실태조사 또한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에 대한 사항을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조 과장은 “역학조사가 미비한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마약류 사용 현황은 대검찰청의 마약류범죄백서의 자료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러나 외국에서 밀반입되는 옥시코돈이나 코데인 등이 극히 드물게 압수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처방되는 진통제를 오남용해 범죄로 단속되는 일은 거의 없어 이 자료를 통해서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오남용 및 중독 환자 현황을 추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2010년에서 2013년 동안 국내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통증환자들의 특성 등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 현황을 국민건강보험 환자표본자료로 분석한 연구가 있었다.


결과에 따르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환자는 2013년 2만 9254명으로 2010년에 비해 32% 정도 증가했다. 또한 일일사용량(Daily Defined Dose)으로 환산한 암환자 1인당 마약성 진통제 처방량은 2010년 21.7DDD에서 2013년 78.8DDD로 연평균 54%의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조 과장은 “마약성 진통제 복용하는 비암환자 1인당 처방량도 2010년 1.8DDD에서 2013년 11.4DDD로 연평균 84% 증가해 절대적인 용량은 암환자에 비해 작지만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 비암성 통증에서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경각심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체적으로 2010년 마약성 진통제의 총 사용량이 12만 8008DDD였는데, 2013년 총 사용량은 67만 8902DDD로 4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부언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마약성진통제 처방 추이를 분석한 또 다른 연구는 ‘마약성진통제의 사용이 비암성 통증 환자에서 증가하며 특히 외래 환자에서의 사용 비율이 더 크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외래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복약 상담 및 부작용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연구 결과가 지난해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성통증을 호소하는 비종양 환자 중 장기간 마약성진통제를 처방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오피오이드 연관 특이 대응(Opioid-Related Chemical Coping)’ 환자의 비율을 파악한 연구다.


OrCC는 아직 중독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진통 목적이 아닌 불안, 우울, 스트레스 해소 등을 이유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거나 처방보다 더 많은 용량을 투약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환자들을 일컫는 용어다.


연구에 따르면 총 258명의 대상자 중 21%에 해당하는 55명이 OrCC로 진단됐는데 이는 미국에서 보고되는 18%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즉 우리나라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미 약물의 고유 목적 이외 상황에서 투약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그 비율도 우리나라보다 오피오이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훨씬 많은 미국에 비해서도 높다는 충격적인 보고였다.


조 과장은 “말기 암환자와 같이 삶의 마지막을 마무리함에 있어 고통을 최소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데 마약성진통제가 활용돼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론은 없다”며 “그러나 비암성 만성통증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 현재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국가적인 위기로 겪고 있는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초래될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 오피오이드 처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대한통증학회의 오피오이드 연구 그룹에서 처방지침을 발표한 바 있으며, 2019년 중독정신의학회에서도 비암성 통증에 대한 오피오이드 처방 가이드라인안이 제시된 바 있다.


조 과장은 “병력을 면밀히 청취하고, 환자의 기대를 평가하며, 비 마약성진통제로부터 치료를 시작하고,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등의 공통적인 내용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오피오이드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는 OrCC나 오피오이드 중독을 유발할 위험성이 높다”고 재차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나라에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마약류 약품의 처방이 모니터링 되기는 하지만 처방 단계에서부터의 노력 없이 단순한 전산시스템으로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예방할 수는 없다”며 “이미 국가적 보건위기상황에 봉착한 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비암성 만성통증의 치료 및 마약성진통제 사용에 대한 한국형 임상진료지침을 수립하기를 기대해 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