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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은 어떻게 다를까?

 

얼마 전, 어느 도시에서 전철을 탔다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다소 한가한 객실 한쪽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전 역에서 탑승한 청년이 핸드폰의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듣고 서있었다. 조용한 전철에 음악 소리가 들리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청년은 아랑곳 않고 음악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시선을 하나 둘 거두어 들였다. 그사이 열차는 다음 역으로 진입하며 다음 정차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는데,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송에 나오는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지만 다음 역에서도 똑 같은 일이 벌어졌다. 환승 안내 멘트는 물론이고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 템포까지 완벽하게 재연했다. 심지어는 영어 멘트까지도!

청년을 향한 주변의 짜증스러운 시선은 점점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다들 청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는지 수근대기 시작했다. 필자도 청년을 넋 놓고 보다가 하마터면 내릴 역을 지나칠 뻔 했다. 열차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청년이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아마도 말을 따라하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그런데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아니고, 자폐증 환자를 진료한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자폐증 환자의 특출한 재능에 대한 영화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일지도 

자폐증 환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들로는 <카드로 만든 집(1993)>이나 <말아톤(2005)>이 있지만 환자들의 특출한 재능을 다룬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1994)>,  <레인맨(1998)>, <내 이름은 칸(2010)>, <어카운턴트(2016)>, <굿 닥터(드라마, 2017)>,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이 떠오른다. 굳이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라 해도 놀라운 계산 능력, 동물과의 교감 능력, 그림 실력 등등으로 유명한 자폐증 환자들이 드물지 않다. 이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서번트나 아스퍼거 증후군으로도 불린다. 같은 이를 두고도 매체에 따라 서번트나 아스퍼거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의사들 조차도 구별이 쉽지 않은데 이번 기회에 한번 그 개념을 알아보자.  


 

자폐증의 발견

자폐증은 오래 전부터 여러 시대나 문화권에 있었다. 지금도 1,000명 당 1명의 비율로 생긴다. 문화권이 다르다 해도 그들의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바로 고립이다. 

18세기가 되면 아주 비범한 재능을 뽐내면서도 인간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특별한 존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들은 음악, 미술, 암기, 암산의 천재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비범한 재능에 놀라고, 그들이 일반인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랬다.

1943,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교병원의 소아과장인 캐너(Leo Kanner; 1894~1981)는 특별한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어린 환자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지만 보통 아이들과 달리 주변 상황에 관심이 없고, 말도 잘 안 하며, 엄마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도 없었다. 캐너는 이 아이들의 사례를 모아 오티즘(autism)’이란 병명을 처음으로 만들어 붙였다. 그는 이 질환의 특징이 외부세계의 자극을 최대한 외면하고, 무시하고, 차단하는 정신적 고립으로 보았다. 오티즘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의미로 ‘autism(auto-자신+-ism 증상)’이라는 병명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자폐증(自閉症)으로 번역했다.

오티즘이란 이름은 취리히 정신의학연구소 소장인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 1857~1939)가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들의 여러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로 자신을 뜻하는 autismus 에서 가져온 용어다. 블로일러는 사회적으로 어색하고 무심한, 본질적으로 자신에게로만 한정된 사회생활을 가리키는 현상을 오티즘으로 불렀다.

 

캐너의 어린 환자들은 스스로 외톨이가 되려는 경향(자폐적인 고립), 현상 유지에 대한 욕구(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욕구), 능력이 들쭉날쭉한(능력의 파편화) 특징이 있었다. 나중에 캐너는 이들의 자폐적 경향에 더해 동일한 것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성향을 특징으로 추가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집착이나 편집적인 성향5세 이전에 걸리는 다른 어떤 질병에서도 볼 수 없으므로 자폐증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주변을 아랑곳 않고, 하나에 집착하는 것, 이것은 누구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되었다.

캐너의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자 병원에도, 정신질환자 보호 시설에도 환자들이 보였다. 캐너는 몇몇 사례들을 연구해 지능이 낮고(통상적인 검사로는 지능이 낮은 것으로 측정되는?), 사회적 접촉이나 소통이 불가능하고,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며, 변화를 싫어하며,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으며, 자신만의 관심거리에만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전형적인 자폐증환자라는 진단을 붙였다



 

아스퍼거 증후군

이듬해인 1944, 오스트리아 빈의 아동(재활)병원에서 일하던 아스퍼거(Hans Asperger; 1906~1980)도 주위와 동떨어져 지내며, 외부사회와 접촉이 차단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이 역시 캐너가 규정한 자폐증의 범주에는 속하지만 언어 능력이나 지능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아이들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불렸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아이들은 일반적인 자폐증 환자들과 달리 주변과 의사 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교감하지 못해 고립되었다.         

두 사람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었고, 서로 교류한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발견에 이구동성으로 오티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같은 질병을 발견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캐너의 아이들은 외견상 정신지체아처럼 보였고, 아스퍼거의 사례들은 오히려 정상인에 더 가까워 보였다. 캐너의 아이들은 남이 없는 듯 행동하지만, 아스퍼거의 아이들은 남을 의식하고 피하려는 듯 보였다. 아스퍼거의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지만, 캐너의 아이들에겐 그 정도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캐너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지만, 아스퍼거의 아이들은 우리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살아간다. 이것으로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증을 구별할 수 있다.   

아스퍼거의 아이들 중에는 비범한 천재들도 있었다.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특출 난 재능이나 관심사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열차 시간표를 통째로 외울 수 있었고, 어떤 아이는 달력을 훤히 뀄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아스퍼거 환자들은 보통 수준의 지능과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고 (괴짜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일부는 자신이 가진 비범한 재능때문에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연구자들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헝가리 음악가 바로토크(Béla Viktor János Bartók),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영국 물리학자 캐빈디쉬(Henry Cavendish)를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서번트 증후군

, 그런데 서번트 증후군(savant stndrome)은 또 뭘까? 서번트 증후군은 신경 발달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특정분야에 비범한 재능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다운 증후군으로 우리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영국 의사 다운(John Langdon Down; 1828~1896)지능은 낮지만 특출한 재능을 가진경우를 1887년에 처음으로 보고하면서 ‘idiot savant’ 란 이름으로 불렀다. idiot 는 백치를, savant 는 천재나 석학을 말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사내아이였고, 예술, 음악, 언어, 날짜 계산, 암산 같은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외견상으로는 정신지체를 앓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재적인 재능 하나가 있는 경우다. 이런 경우만큼 백치와 천재는 백지 한 장 차이란 말을 실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사례들이 모두 백치는 아닌 탓에 이름이 어색해지자 ‘autistic savant(자폐 천재)’ 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 중 자폐증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불과했고 나머지 절반은 뇌질환이나 뇌손상이 차지했다. 그리고 자폐증 환자들 중에 서번트 증후군이 되는 경우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므로 서번트를 자폐증과 혼동할 여지가 크므로-필자 역시 그랬다-지금은 자폐마저 떼어낸 이름, 서번트 증후군으로 불린다.  

서번트=자폐증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인 연원도 있지만 자폐아의 10%에서 발견되는 탓도 있다. 일반적인 정신지체아에서 서번트가 보이는 확률보다 자폐아에게서 서번트가 발견되는 경우는 200배나 더 높다. 일반 인구에서 발견되는 서번트의 확률에 비해면 수천 배나 높다. 그래서 서번트=자폐아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했다.

서번트는 소년에게 많이 보이며, 미술, 음악, 언어 등의 재능이 돋보인다. 그들의 재능은 사람으로 향하지는 않고 사물이나 특정한 테마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모든 것을 잊는 법이 없는 놀라운 수준의 기억력을 보이기도 한다.

 

원인은

, 그런데, 이런 병들은 왜 생길까? 아니 어떻게 해서 이런 병을 얻는 것일까? 과거에는 이른바 냉장고이론이 있었다. 자폐아에게는 냉장고처럼 차가운 어머니들이 있었고, 너무나도 냉정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자폐로 몰아간다는 이론이었다. 덕분에 자폐아의 부모는 깊은 상처와 죄책감까지 얻었다. 하지만 1960년대가 되어서야 뇌의 기질적인 병으로 이해가 되면서 어머니들은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지금도 정확한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선천적인 혹은 발달 단계에 생긴 뇌의 장애 때문으로 본다. 특히 고립되는 경향은 인간의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의 결함으로 여긴다.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의 놀라운 재능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어려서 뇌(특히 좌뇌)에 손상을 입고 회복기 중에 뉴런들 사이에 비정상적이면서도 강력한 결합이 생기고, 그 결과 특정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것으로 본다. 그들의 재능은 성숙 기간을 거치며 서서히 발달하기 보다는 갑자기 드러났다가 그만큼 빨리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면서

종종 모임에서 혈액형으로 성격을 맞추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본다. 그들은 AB형인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천재 아니면 백치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혈액형의 성격이론은 근거가 없다고 말을 해주어도 그들은 생각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필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면 서번트의 경우에는 이 말이 꼭 들어맞는 것 같다. 그들은 백치(idiot)이자 천재(savant)이니까. 아니 좀 더 정확이 말하면 뇌의 이상으로 정신지체와 동시에 특출한 재능을 얻었으니.

그에 비하면 아스퍼거는 일반인들과 섞여 살며 자신을 크게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숨겨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저 저 사람 좀 괴짜야!’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자폐증은 아스퍼거나 서번트처럼 특출한 재능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점을 고려하면 세 종류의 질병을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화성의 인류학자(An Anthropologist on Mars by Oliver Sacks, 1995)/올리버 색스 지음/이은선 옮김/바다출판사/2005

2.통찰의 시대(The Age of Insight by Eric R. Kandel, 2012)/에릭 캔델 지음/이한음 옮김/RHK코리아/2014

 

3.우리는 우리 뇌다(Wij Zijn Ons Brein by Dick Swaab, 2010)/디크 스왑 지음/신순림 옮김/열린책들/2015

 

4.마음의 혼란(Ontregelde Geesten by Douwe Draaisma, 2006)/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조미현 옮김/에코 리브로/2015

 

5.위키백과

출처: 디아트리트 VOL. 18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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