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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 무엇일까

"폭발 직전 한국 간호 현실을 드러내는 상징적 징표"

설 연휴 첫날인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박모 신규간호사(27세)가 송파구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정황으로는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를 의미하는 간호사 내 태움 문화가 자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19일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자살사고에 대한 보건의료노조 입장'을 발표하고, 신규간호사의 투신자살사고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과 확고한 재발방지대책 마련, 유가족에 대한 사과, 자살사고 산재처리 및 보상을 서울아산병원에 촉구하고 나섰다.

성명서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신규간호사 자살사건은 우리나라 최대병원이자 최고병원을 자랑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사회적 파장이 크다. 그러나 신규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직무스트레스와, 긴 노동시간, 과도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조건과 조직문화는 간호등급 1등급인 서울아산병원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기관에 만연해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박모 신규간호사는 입사 후 6개월의 신규적응교육기간 동안 살이 5kg나 빠질 정도로 끼니를 일상적으로 걸렀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저녁번(evening) 근무를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새벽 5시에 퇴근할 정도로 극심한 업무량에 시달렸고, 신규적응교육기간 동안 출근하기를 힘들어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수로 환자의 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인 배액관이 찢어지는 일이 발생하자 소송에 걸릴까 두려워 밤새 간호사 실수에 관한 소송피해사례를 검색할 정도로 실수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무서움과 불안함도 컸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가 5.4년에 불과하고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이 33.9%에 이르는 현실은 연간 간호현장에 투입되는 2만여 명 신규간호사들의 처지가 박모 신규간호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라면서,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간호사가 한국의 간호현장에서는 '백의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서 노조는 "나이팅게일의 사명감을 안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기 위해 의료기관에 첫발을 내디딘 신규간호사가 몇 개월을 견디지 못해 이직을 선택하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극적 현실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업무뿐만 아니라 회의 · 교육 · 행사 · 평가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고, 경영진이 해야 할 업무와 의사나 약사가 해야 할 업무를 대행해야 하고, 사고나 불법 의료행위로 법적 소송이 걸리면 책임을 져야 하고, 임신순번제에서부터 사직순번제에 이르기까지 온갖 눈치를 봐야 하고, 폭언 · 폭행 · 성희롱에 시달리고,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에 영혼이 소진되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을 그만두거나 외국 병원으로 이직을 꿈꾸는 것이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이렇게 지금 한국의 간호현장은 폭발 직전이다."라고 했다.

즉, 박모 신규간호사의 죽음은 한국의 간호 현실이 폭발 직전 상황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징표라고 했다.

다시는 박모 신규간호사와 같은 슬프고 아픈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획기적인 노동조건 개선과 업무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조는 ▲열악한 간호사 노동 조건 개선, ▲신규간호사 적응교육기간 충분히 보장,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개선, ▲간호사 업무시스템 개선, ▲간호사 인권 보장 등을 주장했다.

노조는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저녁번(evening) 근무자가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일이 더는 방치돼서는 안 된다. 하루 8시간으로 정해놓은 법정 노동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6시간을 노동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간외근무와 장시간노동을 개인의 업무능력 탓으로 돌리지 말고 시간외근무와 장시간노동을 실질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확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신규간호사에 대한 적응교육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이 교육 기간에는 신규간호사를 정원 인력에서 제외하는 등 신규간호사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규인력으로 투입된 신규간호사가 스트레스와 두려움, 업무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이직을 선택하는 게 다반사가 되어버리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라면서, "신규간호사의 33.9%가 1년 안에 이직하고 새로운 신규간호사를 채용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신규간호사가 더는 이직을 선택하지 않고 충분하게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숙련성과 전문성을 갖춘 경력간호사가 많이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노조는 "간호사 업무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의사업무나 약사업무, 심지어는 경영진이 해야 할 업무까지 간호사가 떠안는 것이 현실이며, 각종 회의와 교육, 행사, 평가로 인해 폭주하는 업무량과 견디기 힘든 노동강도는 간호사를 간호현장에서 떠나보내는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의사 인력이 모자라 의사업무를 대행하는 PA 간호사 제도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간호사의 인권이 획기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병원 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직무스트레스와 '태움' 문화 등의 악습들은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병원에 필요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적폐이다. 이 같은 악습은 반드시 근절돼야 하며, 간호사들이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 개선작업이 더 지체돼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노조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간호사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잘못된 조직문화의 폐해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면서, 19일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해 ▲신규간호사 자살사고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 마련 ▲신규간호사 적응교육제도 개선 ▲시간외근무와 장시간노동 근절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 해소 ▲병원 내 조직문화 개선 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의료기관 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고, 보건의료노조 창립 20주년 기념식과 국내토론회, 국제토론회,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번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자살사고를 계기로 간호사 노동조건 개선과 병원 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全조직적 운동을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