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제약/바이오

의약품 일련번호제도, 빛 좋은 개살구인가?

제도 시행 기반, 여건 모두 미비해…관련 산업 계열 킬러 되나?

다가오는 올 7월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시행을 앞두고 유통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의약품 유통의 투명화'란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이자, 이미 제약사들은 일련번호 기재와 보고를 지난 2016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음에도 제도 시행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의약품유통업체들의 반발이 이리도 거센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주최한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정책 토론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이 안건에 대한 관련 업계의 관심은 참관인들의 수로 대변할 수 있었다. 토론장의 좌석이 모자라 양 벽면과 뒷쪽에 빼곡히 서서 참관하는 유통업계 종사자들은 토론회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하며 진행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는 의약품 유통의 투명화를 위해 최소포장 단위 개별 의약품에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생산부터 국민에게 복용될 때까지 전체 유통단계를 실시간으로 이력 추적하는 취지로 도입됐다.

2011년 일련번호 제도 도입 발표와 함께 관련 업계와의 논의를 바탕으로 2015년 의약품 제조·수입사의 의약품에 대한 일련번호 부착 의무화를 시행했고, 2016년 7월에는 제약회사에서 일련번호가 부착된 의약품이 출하되는 즉시 심평원의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의약품 도매업체의 제도 동참을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서 보는 실상은 제도 시행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복지부의 입장과는 조금 상이했다.

복지부는 이 제도가 이미 2008년부터 관련 단체와 논의되었고, 충분한 절차를 통해 진행된 결과라고 강변했지만, 의약품유통협회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복지부의 말대로 논의된 시간은 있었지만 유통업계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약품유통협회가 요구하는 사안은 이러했다.

일련번호 도입 취지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추가되는 업계의 비용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제도의 시행에 의한 행정 절차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일련번호 표시의 일률화는 이루어진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상황 그대로 제도가 시행된다면 유통업체에서는 2D 바코드와 RFID 이 두 가지 방식을 24시간 실시간 보고 체계 하에 모두 소화해야 한다. 게다가 '어그리제이션(aggregation)'이라 불리는 묶음번호 시스템을 제약사에 법제화가 아닌 권고의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어 제약사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이날 발표한 바로는 85% 이상의 제약사가 이 어그리제이션을 채택해 실행하고 있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유통업계의 실무자에겐 두 가지 시스템을 동시에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문제는 유통대란이 확실시 된다는 점이다. 현재 이 모든 제도의 접점인 심평원의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의 프로그램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주장이 나오며, 실제 질의 시간에 가장 규모가 큰 유통업체가 우선적으로 제도 시행을 고려해 시스템을 도입, 활용하고 있는데 정보센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데이터를 수용하지 못해 작업 자체가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럴 경우 1일 2배송 혹은 3배송 이상을 담당해야 하는 유통업체의 작업에 당연히 제한이 될 것이며, 결국 이는 환자가 약을 제때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란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실제 현장에서의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이었다. 유통업계 창고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최저시급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제도의 시행은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에 시간당 부하되는 노동의 강도를 더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실제 노동력의 질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복지부가 의도한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한편, 오늘 토론회에서의 정부 측의 입장은 한결 같았다. 제도 시행의 전제나 시기를 조율하기보다는 관련 업체 간의 논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마나 이경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장은 유통업체에서 겪는 모든 시스템상의 오류를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유일하게 요양기관 입장에서 패널로 참가한 대한약사회 최두주 정책기획실장은 일련번호 표시 일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의약품 반품의무화는 더 큰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의약품유통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이 토론회의 마지막은 토론회를 주최한 전혜숙 의원의 마무리 인사로 정리됐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 해도 관련 단체들과의 합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지 않는 행정은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합의와 그에 따른 행정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도 시행은 더 큰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리란 충고를 마지막으로 회의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