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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2006, 2007)

 

 

초음파의 역사

 

 

에코(Echo)의 슬픈 사연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 ‘에코(Echo)’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에코는 아름다운 요정이었지만 헤라 여신의 저주를 받아 스스로는 말을 할 수 없고 남의 말만 따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어느 날 에코는 잘생긴 청년 나르키소스(Narcissus)를 보고는 한눈에 반했다. 그에게 다가가 사랑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는 없는 처지인지라 나르키소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런 스토커를 청년이 좋아할 리 없었다. “왜 따라오는데? 용건이 뭐야?”라고 물으면 아름다운 이 아가씨는 “뭐야뭐야뭐야…”라고 말을 했다. 화가 난 청년은 “저리 가!”라고 외쳤고 에코는 두 눈 가득히 눈물을 흘리면서 “저리 가가가가…”라고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에코는 실연을 당했고 상심한 나머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식음을 전폐했고, 꽃다운 몸은 사그라들고 저주스러운 목소리만 남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산에 가서 “야호” 하고 소리치면 “야호야호야호…” 하는 메아리가 들리는 것이 산속에 숨어 지내는 에코 때문이라 여긴다. 그래서 이런 메아리(反響) 현상을 “에코”라고 부른다.

 

초음파의 발견

 

초음파(超音波; ultrasound)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높은 주파수의 소리( >20 KHz)를 말한다. 인간은 못 들어도 동물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초음-파’라기보다는 ‘초-음파’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 초음파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바로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 1729~1799]라는 생물학자, 그로부터 이 엄청난 일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겐 파스퇴르보다도 먼저 자연발생설의 오류를 입증했던 과학자 정도로만 기억되는 스팔란차니는 아주 특이한 과학자였다.

 

 

 

1794 65세의 스팔란차니는 박쥐의 야간비행에 관심을 가졌다. 새들은 해가 지면 날개를 접고 쉬는데 박쥐는 어둠 속에서도 활개를 치며 날아다닌다. 스팔란차니는 박쥐들이 아무리 어두워도 장애물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 없이 작은 벌레들을 기습하여 잡아먹으며 사는 것을 보고 어떤 비밀이 있을까 궁금해 했다.  

스팔란차니는 먼저 인간이 가진 오감(五感)을 박쥐도 가진 것으로 보고 감각을 하나하나 차단해 보았다. 머리에 두건을 씌우거나, 귀를 막거나, 코를 막거나, 날개에 왁스나 풀칠을 해보았지만 박쥐의 야간비행 기술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감각 차단이 느슨했나 싶어 나중에는 박쥐의 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는 잔인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욱이 스팔란차니는 이런 기괴한 실험의 결과들을 관련 학자들에게 편지로 보내 알렸다. 그의 편지를 받은 학자들은 꺼림직한 박쥐 연구도 기괴하지만 그런 잔인한 실험을 하는 데 경악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연구였지만 끝내 확실한 증거는 잡지 못했던 스팔란차니는 ‘청각’이 야간비행 기술의 비법이라는 추측 정도만 내놓고 더 이상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의 연구가 완전히 해답을 얻은 것은 150년이 지나서였다. 1944년에 박쥐의 야간비행 능력의 비밀은 45~50 KHz의 초음파를 쏘고 그 반향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초음파 연구가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초음파를 만들다 

 

1876년에 영국의 박물학자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은 고음 감지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호루라기(Galtons whistle)를 만들었다. 그는 사람은 물론 동물들의 청각 능력을 확인해 보았는데, 특이하게도 어느 정도의 고음을 넘어서면 사람은 못 듣지만 동물들은 알아듣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동물원에서도 거리에서도 호루라기를 불어 동물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 호루라기는 오늘날에도 개를 부르는 호루라기(dog whistle)로 쓰고 있다. 골턴은 몰랐겠지만 이 호루라기의 비밀이 바로 초음파였다. 이 호루라기는 사람의 가청 범위인 20 KHz의 소리를 넘어서는 23~54 KHz의 소리를 내는데, 45 KHz까지 들을 수 있는 개와 64 KHz까지 들을 수 있는 고양이가 이 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1880년에는 프랑스 물리학자인 자크와 피에르 퀴리 형제[Jacues and Pierre Curie]가 압전현상(piezoelectricity)을 발견했다. 압전현상이란 결정(crystal) 구조에 압력이나 진동을 주면 전기가 생기는 현상(piezo; () + electro; ())이다. 퀴리 형제는 그 반대의 현상 즉, 수정 결정에 전기를 가해서 진동이나 소리도 만들어냈다. 이 원리를 쓰면 초음파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 그러면 이렇게 만든 초음파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1912 4월에 타이타닉 호가 부빙과 충돌하여 침몰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많은 이들은 해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탐색도구 개발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음향물리학자들은 맑은 날보다는 안개나 구름이 낀 날에 소리가 더 크고 멀리 전파되는 현상을 알았고, 수중에서 음파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소리를 이용해 수중 탐색을 시도했다.

1912년에 영국 과학자 리차드슨[Lewis F Richardson; 1881~1953]은 초음파를 이용해 수중의 물체를 탐지하는 기계(echo-locator)를 발명했고, 1915년에 피에르 퀴리의 제자였던 프랑스 물리학자 랑주뱅[Paul Langevin; 1872~1946]은 초음파로 수중의 빙산과 잠수함을 탐지하고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하이드로폰(Hydrophone)’을 개발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수중 탐색장비로 널리 사용하는 ‘소나(SONAR: Sound Na- vigation And Ranging)’의 시초가 된다. 

1930년대에는 기계설비 내부의 보이지 않는 균열을 찾기 위해 초음파를 이용한 비파괴검사를 시작했고, 이러한 비파괴 초음파 검사기가 의사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왔다.

 

 

임상의학에 도입된 초음파

 

지금은 의사들이 초음파 검사를 하는 장면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 시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리학이나 기계에 관심이 있던 의사들이 개인적 호기심과 열정으로 공장에서 쓰던 장비를 빌려 와서 환자들의 몸속을 들여다본 것이 시작이었다. 대략 1950년대의 일이다.

하지만 초음파를 인체에 제일 먼저 쏘아본 의사는 비엔나대학교의 두식[Karl Dussik]이었다. 신경-정신의학자였던 그는 초음파로 뇌실이나 뇌종양을 확인하려 했지만 뼈를 통과하지 못하는 초음파의 특성상 실패하고 말았다. 1937년의 일이었다.

 

1953 10월에는 스웨덴 룬드대학교병원의 심장의학자 에들러[Inge Edler]가 젊은 핵물리학자 헤르츠[Carl Hertz]와 함께 심장병 진단에 쓸 장비를 연구했다. 에들러는 처음에는 전쟁 중에 널리 사용된 ‘레이더(RADAR; RAdio Detection And Ranging)’를 이용해보려 했지만 헤르츠의 권고로 레이더를 포기했다. 대신에 당시에 탱크의 장갑이나 선박의 금속 덮개를 파괴하지 않고 균열 유무를 검사하던  ‘초음파 반사경(ultrasonic reflectoscope)’으로 심장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지금도 널리 사용하는 심장초음파(echocardiography)가 이렇게 탄생됐다.

 

한편, 글래스고의 도널드[Ian Donald] 역시 공장에서 쓰던 초음파 장비를 빌려 와 친구의 부인을 비롯하여 자원자들의 뱃속을 들여다보고는 초음파가 부인과 영역에서 아주 유용한 장비가 될 것을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는 1958년에 란셋(the Lancet)에 발표되었다.

도널드는 산부인과 의사답게 초음파를 이용해 다태 임신이나 전치 태반들을 확인했고, 태아의 머리 크기를 재고, 임신 주수를 계산하였고, 태아의 성장을 추적했다. 나아가서는 여성 골반암을 초음파로 확인했다. 한동안 ‘초음파’ 하면 부인과 의사의 전유물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는데, 모두 도널드 덕분이다.

 

내과나 외과 의사들이 이에 질세라 초음파로 뱃속을 들여다보았다. 루드비히[George Ludwig]는 초음파로 담석을 찾아내었고, 와일드(John Wild)는 창자의 조직 두께를 초음파로 측정하였다. 1950년대에는 하우리[Douglas Howry]와 홈스[Joseph Holmes] 2차원 B(brightness)-mode를 개척했다. 1963년에는 Brightness-mode가 도입되어 영상을 그래프(A-mode)가 아닌 흑백 그림(B-mode)으로 볼 정도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Kossoff Garrette), 1980년대 중반에는 도플러 기능이 추가되어 혈류 순환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제는 컬러 영상으로 볼 수도 있고, 뇌 혈류도 초음파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초음파 치료

 

에너지를 갖는 방사선(X-ray)이 처음에는 촬영에만 쓰이다가 나중에는 치료에서 쓰인 것처럼 초음파 자체가 가진 에너지로 인체를 치료할 수도 있다. 치료효과는 주로 조직의 가열효과에서 온다. 초음파의 가열효과는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잠수함 탐지를 위해 수중에서 ‘소나’를 사용했는데 주변의 물고기들이 삶아져 죽는 현상이 생겼다. 여기서 초음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초음파 영상학이 발달도 되기 전인 1940년대에 초음파 치료기술이 먼저 등장했다.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보는 초음파 치료는 물리치료실에서도 심부 가열치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초음파의 진동수는 0.7~3.3 MHz으로 열 전달효과가 커서 조직의 혈액순환을 돕고, 붓기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통증치료에 사용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초음파로 암 조직을 태우는 온열치료(HIFU; High-Intensify Focused Ultrasound)로 나아간다. 초음파는 몸속의 결석을 바스러뜨릴 수도 있어 쇄석술(lithotripsy)에도 사용하며, 혈관 속의 혈전을 녹이는 데도 쓰인다.

 

 

일상에서도 초음파는 널리 쓰인다. 치아 스케일링을 하고, 안경 렌즈를 닦으며, 과일에 묻은 잔류 농약을 떼어내기도 하고, 습기를 만드는 가습기, 피부 미용을 위해서도 초음파를 사용한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많이 떠돌아다니며 메아리를 치고 있다.

 

 

[출처]디아트리트 VOL.15, 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