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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ta


<그레이 아나토미>가 나오기까지

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2006, 2007)

 

 

 

 

<그레이 아나토미>가 나오기까지

 

ανατομη (그리스어; anatome) 완전히 자름, 해체, 구조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미국 드라마가 일반인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좋다. 제목만 보아서는 해부학 이야기 같은데 실제 내용은 외과 의사들의 애환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Sabiston’s Surgery'가 더 어울릴 성싶은데 왜 'Grey’s Anatomy'일까? 그레이가 외과랑 무슨 관계가 있길래? 

 

 

고대의 해부학

 

최초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인체를 해부했던 이들은 아마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던 기술자들이 아니었을까? 미라를 만들 때는 내부 장기들을 온전히 몸밖으로 끄집어내야 하니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의사들이 아니었고, 의사들은 해부학 지식을 원하지 않았기에 학문으로서의 해부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체’ 기술이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해부를 금지했기에 인체해부학이 발전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생물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비교 해부학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몰락으로 헬레니즘 문명은 지중해 건너 알렉산드리아에서 꽃을 피웠다. 기원전 30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던 이 도시에서 두 명의 해부학자 즉, 헤로필로스 (Herophilos; BC 335~280)와 에라시스트라투스 (Erasistratus; BC 304~250)가 해부학을 아주 중요한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이집트 땅에 꽃 피운 그리스 문명의 후예들이 새삼스럽게 인체해부학을 용인한 이유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시신을 고귀한 영혼이 떠나고 남은 껍질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신은 해부의 대상으로 격하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처형된 죄수들의 시신을 해부하는 방법으로 인체해부학이 발전했다. 여기서 의학을 익히고 로마로 건너간 그리스 의사 갈렌은 피범벅이 된 검투사들을 치료하면서 인체해부학에 관한 지식을 더 넓혔을 수도 있었지만, 로마에서도 인체해부학은 없었다. 다만 그리스 전통에 따라 동물해부학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유추하는 비교 해부학만 있었다.

중세에서도 해부학은 여전히 죽은 학문이었다. 기독교의 교리는 죽은 이가 생전의 몸을 빌어 부활한다고 믿었기에 시신에 칼을 대는 것은 대단히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해부학이란 그저 로마 시대의 갈렌이 이루어 놓은 지식만 되풀이하여 인용되는 수준에서 연명했다.

 

 

근대 해부학의 여명

 

13~14세기가 되자 죽어 지내던 해부학에도 슬슬 부활(resurrection)의 기운이 비쳤다. 교황은 해부 금지령을 해제하였고, 타살로 의심되는 시신들을 해부하는 기회를 통해 인체의 해부학에 관한 연구가 조심스레 이루어졌다. 볼로냐의 몬디노 (Mondino de Luzzi; 1270~1326)는 인체를 직접 해부하고 연구한 결과를 1316년에 최초의 해부학 지침서인 『Anathomia mundini (몬디노 해부학)』을 펴냈다.

 

 

 

몬디노의 해부학 연구는 알렉산드리아 이후 의학의 수련과정에서 제외되어 온 해부학을 의학의 영역으로 다시 들여놓았고, 그의 책은 완벽하지는 못해도 19세기까지도 인체해부학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해부학이 없는 의학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주인공은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 1514~1564)였다.

플랑드르에서 태어나 파리을 거쳐 파두아에서 해부학을 배운 그는 갈렌의 해부학을 익혔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해부를 해보니 갈렌이 인체가 아닌 동물의 해부학을 인체에 추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베살리우스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인체를 해부하여 새로운 해부학 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다.

1543년에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연구를 『De humani corporis fabrica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줄여서 Fabrica로 부른다)』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같은 해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여 고대의 우주관에 도전했다면, 베살리우스는 낡은 인체관에 대담한 도전을 했다.

 

 

하지만 그 도전이 너무 일렀을까? 갈렌의 교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베살리우스는 스승으로부터도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해부학 연구에서도 손을 떼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몸속의 섬세한 구조를 새로이 발견하였고, 나아가 해부학 지식이 과학의 틀을 가진 의학(medical science)의 모든 분야에 필수적이란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후로 콜롬보 (Renaldo Colombo; 1516~ 1559), 팔로피오 (Gabriel Fallopio; 1523~1562), 유스타키오 (BartolomeoEusch- achi; 1500~1574) 등의 학자들에 의해 인체해부학의 명맥이 이어져 나갔다.  

 

 

인체해부학 발전의 숨은 동인  

 

아울러 목판 인쇄술의 발전과 인체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이라는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해부학은 발전의 동력을 얻었다.

다빈치, 라파엘, 도나텔로,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예술가들은 인체의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인간의 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다빈치는 그의 천재성을 인체에 관한 연구에도 나누어 해부학 분야에서 인간의 수태~태아의 출산~성장을 연구하여 그림으로도 남겼다. 또 습작 수준으로 남긴 스케치들에서조차 인체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볼 수 있다. 다빈치가 가진 인체에 대한 관심은 그 자신이 무려 30여 구의 사체를 해부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더하여, 해부학처럼 설명이나 그림이 많은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려면 그림들(ill- ustrations)이 쉽게 복사되어야 했다. 목판화가 유럽에 등장한 것은 대략 14세기 말인데 처음에는 종교화의 제작에 사용되었다가 생물학자들이 도입하기 시작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의학 영역에서도 몇 개의 책들이 목판으로 인쇄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베살리우스의 『Fabrica』도 탄생하였다.

 

파두아의 해부학 교수 모르가그니 (Giovanni Battista Morgagni; 1682~1771) 60년간 640여 구의 사체를 해부 연구하여 79세의 나이인 1761년에 『De sedibus et causismorborum per ana- tomenindagatis (해부학으로 풀어 본 연구한 질병의 위치와 원인)』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질병이 실재하는 곳은 체액(humor)이 아니라 병리적으로 확인되는 장기(organ)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가 살아 있을 때 질병과 그 증상을 잘 관찰했다가 죽고 나면 바로 부검하여 환자의 증상을 일으킨 장기들의 병적인 변화를 찾아내어 그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의사가 관찰한 질병과 해부학을 연결시킨(clinicpathological) 최초의 시도였다.

이후로도 질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의 방식을 좇았다. 오늘날에도 그는 병리학(pathology)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다.

 

 

시체 도둑

 

 

 

해부학 연구는 한마디로 ‘부패와의 전쟁’이다. 숨이 끊어진 인체는 금새 부패하기 시작하니, 임종 직후부터 부지런히 해부를 시작해야 온전한 해부학 공부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신선한 시신이 어디 흔한가?

순환생리학의 개척자인 하비 (William Harvey; 1578~1657)는 아버지와 누이가 사망하자 오전에 해부한 후 오후에 매장하는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에 속한다.

해부학 교수들은 신선한 카데버(cadaver)를 얻으려 ‘시체 도둑(body snatcher; resurrectionist)’의 장물아비가 되었고 심지어는 스스로 밤이슬을 밟고 흙을 묻히는 일을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

특히 런던의 외과 의사 쿠퍼 경 (Sir Astley Cooper; 1768~1841)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는데, 환자가 죽으면 자신이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묘지로 나갈 정도였다. 환자의 질병 정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 얼마나 그 속이 궁금했을까?

쿠퍼 경은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삼중 안전장치가 달린 관에 넣어 매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아마도 무덤을 파헤치는 무시무시한 뱀파이어들의 이야기는 당대에 흔히 보았던, 인체 해부에 굶주린 의사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1752년에 영국 의회는 살인자들을 처형한 후 몸을 토막 내는 분시(分屍)와 머리를 걸어 놓는 효시(梟示)에 더하여 공개 해부형(解剖刑)에 처하도록 했다(Murder Act 1752). 흉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인범들의 시신을 해부하도록 허가해 준 셈으로 해부학자들이 합법적으로 카데버를 얻을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데버는 절대 부족 사태에 당면하게 된다. 해부학 공부가 의학 교육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는 의대 외에 사설 해부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카데버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하지만 공급은 오히려 더 줄었다. 18세기에는 간단한 경범죄에도 적용되어 집행된 사형이 19세기에 들어서는 중범죄자에게만 적용되어 연간 처형 건수가 평균 55건 정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엄청난 불균형은 결국 시체 도둑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유족들은 망자의 주검 곁을 한시라도 떠나지 않고 지켜야 했으며, 각종 방범장치가 붙은 특수관을 주문 제작하거나, 심지어는 묘지에 망루를 세워 도둑의 침입을 감시했다. 이러한 불침번은 주검이 충분히 삭아 해부학자들의 구미가 사라질 때까지 이어졌을 테다.

이 와중에 에딘버러에서 이른바 <웨스트포트(West Port) 연쇄 살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1828). 여인숙을 운영하던 버크와 헤어 (William Burke and William Hare)는 여인숙에 투숙한 손님들을 살해하여 그 시신을 의사이자 해부학 강사인 녹스 (Robert Knox)에게 팔아 넘겼다. 희생자는 무려 17명이었고, 한 구당 농부의 일 년 총 수입에 맞먹는 1파운드씩을 받았다. 시신을 찾으러 곡괭이와 삽을 든 대신에 자기 집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살인귀들과 이들이 공급한 수상한(?) 시신을 거리낌없이 구입한 의사도 한통속으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의회는 해부법(Anatomy Act 1832)을 제정했다. 앞으로는 허가를 받은 의사나 학생들은 감옥이나 구빈원에서 사망한 무연고자들의 시신, 그리고 친족들로부터 장례를 치르고 매장해 주는 조건으로 기증된 시신을 합법적으로 해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해부학 공부를 위한 카데버 공급에 숨통이 트였고, 시체 도둑들의 전성시대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해부학은 이제 어둠의 그늘을 걷고 밝은 빛 속에서 발전해 나갔고 영국은 해부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858년에 영국의 외과 의사 겸 해부학자인 그레이 (Henry Gray; 1827~1861)가 쓰고, 카터 (HenryVadndyke Carter; 1831~1897)가 그린 해부학 책 『Anatomy, Descriptive and Surgical』이 나왔다.

 

 

 

줄여서 『Grays Anatomy』로 불린 이 책은 단순한 해부학 책이 아니라 외과 의사가 해부학적 지식을 외과학에 적용시킨 외과 해부학(surgical anatomy) 교과서였다. 외과 영역에 좀 더 특화된 해부학 책이었다고 미국 드라마에서도 외과 의사들의 이야기에 ‘그레이’를 이렇게 대놓고 쓰는지도 모르겠다. 영어로 회색을 뜻하는 grey gray라고도 쓰는데 드라마 제목은 'Greys Anatomy'로 유서 깊은 책 『Grays Anatomy』의 명성을 살짝 이용한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만약 병리학자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라면 <모르가그니 아나토미>, 궂은일은 남의 손에 맡기는 의사가 주인공이라면 <몬디노 아나토미>, 진취적 주장으로 의료계에서 따돌림을 당한 의사의 이야기라면 <베살리우스 아나토미>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 

 

 

[출처]디아트리트 VOL.12,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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