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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독가스에서 항암제까지

 

 

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년, 2007년)

 

 

 

 

 

독가스에서 항암제까지

 

 

전쟁무기 기술자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화들 중 단연 돋보이는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체칠리아 갈레라니(Cecilia Gallerani)의 초상화다. 체첼리아는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의 애첩으로 다빈치가 밀라노에 체류하던 시기에 그린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이다.
1482년, 서른 살의 다빈치는 밀라노의 스포르차에게 자신이 ‘군사기술에 능통한 자’임을 내세워 만약 자신이 취직이 되면 ‘비밀 병기’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스포르차는 시큰둥했고, 다급해진 다빈치는 그렇다면 ‘몇 가지 평화적 목적의 재주’들이 있는데 그중 나은 것이 그림 ‘그리는 일’이라고 말해 취업이 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들, 그리고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혼란스러웠고 북부의 밀라노는 프랑스와 맞닿은 상황이었다. 다빈치는 밀라노에서 대공의 전속 화가이자 토목기사, 군사기술 고문, 공학자로 17년 동안 일했다. 그 시절에 남긴 그림이 (현재까지 남겨진 바로는) 6점에 불과한 것을 보더라도1) 다빈치는 그림보다는 과학기술이나 공학에 몰두했던 것 같다.
마침내 밀라노가 프랑스에 함락되자 다빈치는 베네치아로 옮겨갔다. 베네치아의 병기창에서 본격적인 ‘무기 기술자’로 일하였고 대포 같은 전쟁무기를 개발했다. 더불어 다양한 전쟁무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는데 이를테면, 전차, 헬기 그리고 독가스 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탁월한 아이디어들은 그 시대에 실현되지는 못했다. 

 

 

 

독가스의 등장 

 

독가스가 전장의 끔찍한 무기로 등장한 것은 다빈치 시대로부터 400년이 지난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참호를 파놓고 지루한 공방을 벌이던 독일군은 교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무기가 필요했고 1915년 봄에는 염소(chlorine) 가스와 포스겐(phosgen) 가스를, 1917년 가을에는 겨자 가스(mustard gas)를 사용했다.

 

 

 

 

마늘이나 겨자 냄새가 난다고 겨자 가스라 불린 황산 겨자(sulphur mustard; C4H8Cl2S)는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라기보다는 수포제(vesicant) 가스였다. 가스가 피부에 닿으면 몇 시간 내에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눈이 부어 앞을 볼 수 없고, 나중에는 폐에도 손상을 일으키는 화학무기(chemical weapon)였다. 하지만 더 심각한 후유증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겨자 가스 공격으로 프랑스군 측은 5천 명이 사망하고 1만 명이 부상을 입었고 곧 영국군도 가스무기를 개발하여 반격을 시도했다. 지금도 겨자 가스는 처음 사용된 벨기에의 이프레스(Ypres) 지방의 이름을 따서 이페라이트(Yperite)라고 불린다.

 

 

 

 

전쟁이 끝나고 황산 겨자보다도 훨씬 강력한 수포제인 질소 겨자(nitrogen mustard; Cl-CH2-CH2-CH2-N-CH2-CH2-Cl))가 1930년대에 알려졌고, 독일은 1941년에, 미국은 1943년에 화학무기로 생산, 비축하기 시작했다.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독일이 겨자 가스 무기를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1942년 초에 예일대학의 약리학자 굿먼(Louis S Goodman)과 길먼(Alfred Gilman)에게 질소 겨자의 약리작용을 연구하게 했다.
겨자 가스의 공격에서 살아 남은 병사들 중 백혈구 세포들이 감소하고, 골수와 임파조직이 망가지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었기에 그들은 이 독성을 이용하여 임파조직의 세포들이 증식하는 암을 치료할 가능성을 모색해 나아갔다. 
연구팀은 림프종(lymphoma)의 동물 모델에서 질소 겨자의 성분으로 만든 최초의 항암제 무스틴(mustine;-mechloroethamine;Mustargen짋;Bis(2-chlororthyl) methylamine)을 주사하여 그 효과를 확인했다. 치료 방법이 없던 혈액암에 새로운 치료제로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곧 소생 가능성이 없었던 말기 림프종 환자에게 처음으로 무스틴이 10일간 주사되었다.
10일이 지나자 환자의 증상은 뚜렷이 나아져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암은 재발되었고 두 달 만에 골수 독성 부작용으로 환자는 사망했다. 곧 67명의 환자들에게 임상 시험을 확대했는데 썩 만족할 만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골수 독성이 너무 커 약이라기보다는 아직은 독에 가까웠다.6) 1943년 굿먼은 솔트레이크 시티로 옮기고, 길맨은 입대하며 연구팀은 해체되었다.
이 모든 연구 과정은 군 당국의 감시하에 군 기밀로 취급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조차 차트에 “화합물 X 0.1mg/kg 혈관 주사함”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에서야 공개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탈리아 반도의 끝에서 비극이 터졌다.

 

 

 

 

 

 

바리 항의 참사

 

 

 

 

1943년 12월 3일, 독일 공군이 이탈리아 전선의 연합군 병참을 차단할 목적으로 영국군의 작전 지역인 나폴리 인근의 바리(Bari) 항을 공습했다. 급작스런 폭격으로 정박 중이던 38척의 선박들 중 17척이 침몰하고 8척이 파괴되고 항만시설들도 타격을 입었다.
피격된 선박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옮아 붙은 불길 때문에 피격되지 않은 선박들도 연이어 폭발하여 침몰하였는데 그중에는 미국의 수송선 존 하비(John Harvey)호도 있었다. 존 하비호는 사실 비밀스러운 화물을 운반하던 중이었는데 바로 겨자 가스였다. 이 선박이 폭발하면서 선원들은 전원 실종되었고 겨자 가스가 바다로 유출되어 해상에 떠 있는 기름과 혼합되었다.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선원들은 가스로 오염된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들을 구조했던 구조자들 그리고 병원 의료진들까지 자신도 모르게 겨자 가스가 피부에 닿았고 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상자가 수백 명에 달했다.
하지만 연합군 당국은 겨자 가스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고, 때문에 오염된 옷을 벗고 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겨자 가스의 피해를 방조한 셈이 되었다. 현장에 파견되었던 군의관 알렉산더(Stewart Alexander)는 환자들에게 임파 독성을 확인했지만 그 역시 본국에서 진행 중인 질소 겨자의 비밀 연구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다시 한 번 더 질소 겨자의 골수 및 임파 독성은 재확인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질소 겨자 프로그램을 맡았던 화학전 부서도 해체되었다. 하지만 부서의 책임자였던 로드(Cornelius Rhoads)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쌓은 지식과 기술을 본격적인 암 치료제 연구로 돌리기 위해 자선사업가인 슬로언(Alfred Sloan)과 캐터링(Charles Kettering)을 설득, 1948년에 슬로언-캐터링 연구소(Sloan-Kettering Institute;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의 전신)8)를 설립하였다.
1945년에서 1955년까지 2,000개 이상의 식물 추출물들이 스크리닝 되었다. 1955년에는 National Cancer Chemotherapy Program이 창설되어 70만 종 이상의 물질들을 탐색하여 30개 정도의 약물이 발견되었다.9~10)

 

암의 치료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부작용이 컸던 질소 겨자는 좀 더 순화된 약물들로 점차 탈바꿈하였다. 원조 격인 무스틴(1942년)에 이어 멜팔란(melphalan, 1953년), 클로람부실(chlorambucil, 1953년),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cyclophosphamide, 1957년) 등이 순차적으로 임상에 쓰여지게 되었다. 이들은 항암제들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데 모두가 질소 겨자,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겨자 가스의 후예들이다. 매운 겨자가 현대 항암치료 약물의 시대를 연 셈이다.

 

 

[출처]디아트리트 VOL.11, NO.2